일상 이야기

아버지, 조카 건호, 아버지가 되는 일

강형구 2016. 5. 7. 10:49


   얼마 전 아버지께서 내시경으로 위암을 절제하는 수술을 하셨다
. 올해 3월쯤 아버지께서 위암에 걸리셨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매우 놀랐다. 평소에 너무나 건강하게 생활하셨던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처음에 외과 의사로부터 진료를 받았을 때 우리는 위의 3분의 1 가량을 절제해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으나, 아주 초기인 위암이라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내과 의사에게도 진료를 의뢰해보았다. 다행히 위암이 위벽 안쪽까지 전이되지는 않아 위 점막만 절제해도 되는 상황이었고, 이는 내시경으로도 충분히 수술할 수 있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수술은 성공적으로 잘 끝났고, 수술 후 시간이 꽤 지난 지금은 식사도 문제없이 잘 하고 계신다. 참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56일이 임시 공휴일로 지정되면서 아내와 나는 부모님이 계신 부산에 내려가기로 했다. 부산에는 부모님뿐만 아니라 누나와 매형, 조카인 건호와 세영이가 살고 있다. 55일 아침 일찍 아내와 나는 부산으로 향해서 오전 8시쯤 부산의 부모님 댁에 도착했다. 이날 점심 때 우리 가족은 부산시 기장군의 철마라는 마을로 고기를 먹으러 갔다. 위암 판정을 받으셨던 아버지께서 보험사로부터 보험금을 상당액 받으셨고, 그 기념으로 고기를 사신 것이다. 우리 가족 모두는 배부르게 고기를 먹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이번 주 일요일인 58일에 영남일보에서 주최하는 하프 마라톤대회에 나가는데, 매형은 마라톤 풀코스를 3번이나 완주한 경험이 있다고 했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매형을 다시 보게 되었다.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려면 엄청난 인내력과 끈기가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누나의 첫째 아이인 조카 건호는 부모님에게는 첫 손자였다. 그래서 그런지 부모님께서는 건호를 아주 정성스럽게 돌봐주셨다. 건호는 가족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건강하게 자랐고, 지금은 말도 제법 잘 하며 귀여움을 부리고 있다. 누나 부부는 맞벌이를 하고 있기에 누나 집 근처에 사시는 부모님은 건호를 키우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셨다. 특히 아버지께서는 어린 아기였던 건호를 돌보시면서 아기를 편안하게 안아주는 법, 아기를 잘 재우는 법을 습득하셨다. 아버지께서는 종종 건호를 데리고 부산 변두리에 있는 가족 농장에 가신다. 어린 시절 농사를 지으셨던 아버지께서는 농장에서 상추, 깻잎, 도라지 등을 키우시면서 기쁨을 느끼신다. 건호는 외할아버지와 함께 땅을 일구는 것을 배우고 땅과 풀의 냄새에 익숙해진다.

  

   갓난아기였던 건호가 무럭무럭 자라나는 모습을 보면서, 나 역시 세월이 빨리 흘러감을 새삼스럽게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건호의 얼굴에는 누나의 얼굴도 있고 어머니의 얼굴도 있다. 건호도 세상을 살아가면서 여러 어려움들을 겪을 것이다. 학교에서는 가끔씩 친구들과 다툴 것이고, 공부 때문에 고민을 할 것이며, 좋아하는 여자아이에 대한 생각 때문에 며칠 동안 설렐 것이다. 군대에 입대하면 엄격한 규율 아래에서 상급자에게 복종하는 법을 배울 것이며, 성격이 못된 선임을 만나 호되게 고생할 수도 있다. 아버지와 내가 그랬듯 건호 역시 그런 힘든 과정들을 겪어내며 어른이 되어, 자기 몫의 일을 하며 이 세상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56일에는 아내가 대구탕을 먹고 싶어 해서 우리는 다시 철마 마을에서 점심으로 대구탕을 먹고 왔다. 식사 후에는 누나 집으로 가서 시간을 보내다 저녁 식사를 한 후 명륜동 부모님 댁으로 돌아왔다. 일요일에 마라톤 대회에 나가야 하는 나는, 식사 후에 온천천 공원에서 가볍게 달리기 연습을 했다. 오늘(57) 아침 일찍 아내와 나는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현풍으로 돌아왔다. 요즘 아내는 식사를 잘 하지 못한다. 임신을 한 지 두 달쯤 되어 입덧이 심하기 때문이다. 올해 겨울이면 나도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될 것이다. 아들일지 딸일지 아직 알 수 없지만, 나는 우리 사이에 태어날 아이를 두려움 반 기대 반으로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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