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아마추어 번역가의 생활

강형구 2016. 5. 1. 16:12

 

   우선 나는 전문 번역가가 아님을 밝혀둔다. 나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다만 나는 책 읽는 것을 좋아하고 영어로 된 책도 자주 읽는다. 그렇다고 내가 영어를 잘한다는 것은 아니다. 더 이상 영어 시험을 치지 않아도 될 나이가 된 나는, 영어로 쓰인 책을 마음 편하게 읽으면서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그냥 대충 이해하고 넘어간다. 정말 읽고 싶은 책이 영어로 쓰여 있는데 거듭 읽어도 잘 이해가 되지 않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의 내용을 우리말로 옮기기 시작했고, 그렇게 나의 아마추어 번역은 시작되었다. 우리말로 번역한 책들을 내 곁에 두고 거듭 읽어보고 싶었기에, 나의 번역은 결국은 나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

  

   아마추어로서 번역을 하면 돈을 거의 벌지 못한다. 내가 주로 접촉하는 출판사들은 대부분 번역 비용을 주지 않거나 아주 조금 주며, 번역한 책이 팔리는 것에 비례하여 사후적으로 일정 금액을 나에게 지불한다. 그런데 내가 번역하는 책들은 대중적인 책이 아니기에 거의 팔리지 않고, 판매 부수가 많지 않아 나는 돈을 거의 받지 못한다. 만약 번역을 노동으로 생각해서 계산해 본다면 노동의 원가에 비교해서 턱 없이 부족한 비용을 지급받는 셈이다. 그래서 돈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가급적 번역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나 나는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번역을 하는 것은 아니다. 공식적인 번역은 개인적으로 하는 번역에 비해 나에게 번역을 지속하게 만드는 계기를 제공해 준다. 그래서 공식적인 번역을 하는 것이다.

  

   또한 나는 번역을 잘 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얼핏 생각하면 이는 좀 이상한 태도일 수 있다. 기왕 번역을 하기로 했으면 잘 해야 하는 것 아닐까? 그런데 내 생각은 좀 다르다. 그냥 나는 내 능력껏 번역을 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내가 이해하는 만큼, 내가 관심 있는 만큼 번역을 한다. 그리고 번역을 길게 질질 끌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 너무 기간이 늘어져버리면 스스로 지쳐버린다. 완벽하게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어느 시점이 되면 번역의 결과물을 세상에 드러내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그것을 읽을 수 있으며, 훗날 더 뛰어난 번역이 나올 수 있다. 게다가 나는 원서 번역을 고집하지도 않는다. 나는 번역에서 중요한 것은 뜻이 통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독일어 원서는 가끔 참조만 하고 주로 영어로 된 책을 번역한다.

  

   물론 번역을 잘 하려고 치열하게 고민하는 것, 원서가 있을 경우 원서 중심으로 번역하려고 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내가 그러한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면? 사람들은 내가 너무 쉽게 번역에 관한 편리한 기준을 선택한다고 비판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그러한 비판이 충분히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아마추어라는 사실을 근거로 스스로를 변호한다. 저는 전문가가 아니라 아마추어입니다. 잘 하지 않고 그저 좋아할 따름이지요. 제가 번역한 것을 계기로 언젠가 정말 제대로 된 번역이 나올 수 있을 겁니다. 단지 저는 좀 더 공부를 하고 싶기 때문에, 저 스스로를 위해 번역을 하고 있는 겁니다. 이건 부수적인 설명입니다만, 실제로 저는 번역의 대가로 돈도 거의 못 받고 있답니다.

  

   그리고 나는 내가 대학과 대학원에서 전공한 학자인 한스 라이헨바흐의 책들을 번역한다. 다른 저자의 책들은 번역하지 않는다. 물론 내가 다른 저자들이 쓴 좋은 책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번역했을 때 더 많이 팔릴 책들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책들은 그저 읽어보고 필요하면 요약해보는 것으로 만족한다. 라이헨바흐의 주된 저서들을 우리말로 옮기고,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 라이헨바흐에 대해서 관심 있는 사람들이 필요할 때 읽을 수 있도록 한다면 그것은 좋은 일 아닐까? 다행히 라이헨바흐의 몇몇 저술들이 이미 우리말로 번역되어 있기에, 나는 이미 번역되어 있는 책들 이외의 책들을 번역하고 있다. 그저 공부하는 아마추어라는 자세로, 너무 큰 부담을 갖지 않은 채 말이다. 물론 나에게 작은 사명감 같은 것은 있지만, 그것을 크게 과장하고 싶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