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번역에 대한 단상

강형구 2016. 4. 24. 08:37

 

   돌이켜보면 나는 번역을 아주 오래 전부터 해왔다. 중학교에서 영어를 배울 때 선생님께서는 숙제로 영어 지문을 번역해서 제출하라고 하셨다. 그래서 집에 돌아와 두꺼운 사전을 옆에 끼고 지문 한 문장 한 문장을 번역했던 기억이 난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지문을 번역해서 제출하지 않았다. 하지만 영어 선생님께서 수업 때마다 학생 한 명을 지적해서 영어 교재 지문을 한 문장씩 읽고 해석해보라고 하셨기 때문에, 우리들은 수업에 대비하기 위해서 대략적으로라도 지문의 문장들이 어떤 뜻을 갖고 있는지 정리를 해 두어야 했다. 이렇듯 나는 나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아주 오래 전부터 영어 번역을 연습하고 있었다.

  

   학부 4학년 때에는 졸업 논문을 쓰기 위해서 라이헨바흐가 쓴 교수자격논문(소책자)을 번역했다. 아주 학술적이고 제법 긴 분량의 글을 번역한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의 독일어 원본을 번역하지는 못했다. 내가 독일어에 충분히 익숙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라이헨바흐의 두 번째 부인이었던 마리아가 번역한 영어본이 있었기 때문이다. 라이헨바흐의 책을 번역하면서 번역이란 시간이 많이 필요한 작업이라는 것, 번역을 하면서 해당 외국어뿐만 아니라 우리말에 대해서도 고민을 많이 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번역자의 역량이 중요함을 절실하게 깨달았다. 아무래도 직역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부분적으로 의역을 하게 되는데, 번역자가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하면 엉터리 의역이 나오게 된다.

  

   군 복무를 하면서 틈틈이 라이헨바흐의 책 일부를 번역했고, 대학원에 들어가서는 집중적으로 영어로 된 글들을 요약 정리하는 훈련을 했다. 이렇듯 오래 전부터 꾸준하게 번역을 해왔기 때문에 현재 내가 아마추어 번역가로서 활동을 하고 있지 않나 싶다. 아마추어 번역가로서의 생활은 제법 할 만하다. 번역으로 생계를 유지한다면 번역에 대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을 수 있겠지만, 나는 취미 삼아 번역을 하기 때문에 스스로 즐기면서 번역을 한다. 물론 내가 번역하는 책들은 아주 소규모로 출판되기 때문에 번역을 통해 내가 얻는 수입은 거의 없다. 그러나 돈을 벌기 위해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공부를 위해 시작한 일이기에, 처음부터 나는 번역 수입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취미 생활로서의 번역에 대해 관심이 있는 분들을 위해, 내가 지금까지 나름대로 체득한 번역 방법을 알려드리고자 한다. 우선 번역하고자 하는 책이나 논문을 여러 번 읽는다. 여러 번 읽으면서 내용을 요약 정리하면 좋지만 요약이 필수 사항인 것은 아니다. 어차피 모든 문장들을 일일이 번역할 것이기 때문에 요약이 불필요하게 생각될 수도 있다. 여러 번 읽은 후에는 번역 기간(2~3개월)을 정하고, 주별로 어느 정도의 분량을 번역할지 계산해본다. 너무 바쁘게 일정을 잡으면 심적 부담이 커져서 번역을 즐기지 못한다. 번역의 결과물 기준으로, 하루에 A4 용지 반 페이지에서 한 페이지 정도를 번역하는 것은 크게 부담이 되지 않을 것이다. 이는 대략 30~1시간 정도 걸리는 일이다.

  

   아주 긴 문장이 있을 때 번역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우선 긴 문장의 내용을 있는 그대로, 문법에 상관없이 우리말로 옮긴다. 그렇게 번역된 부분적인 우리말 내용들을 이리 저리 조합해서 읽을 수 있는 우리말 문장으로 바꾼다. 또한 한 문장을 번역하는 데 너무 오랫동안 고민하지 않는다. 읽을 수 있는 문장으로 번역했다고 생각하면 다음 문장으로 넘어간다. 나중에 다시 고칠 수 있는 기회가 있기 때문에 크게 미련을 가지지 않아도 된다. 번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치지 않고 집중해서 꾸준히 하는 것이다. 그렇게 꾸준히 하다 보면, 매일 1시간씩 투자해 2개월 정도 만에 자그마한 책 한 권을 번역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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