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블랙 라이크 미(Black Like Me)]를 읽고

강형구 2016. 4. 13. 12:31

 

   몇 주 전 한 지인과 함께 점심식사를 했다. 평소에 책을 많이 읽으시고 말도 참 잘하시는 분이라 식사 시간이 매우 즐거웠다. 식사 도중 그분이 최근에 읽은 책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지인께서는 얼마 전 미국 출장 기간 동안에, 한 백인이 흑인으로 변해 직접 경험했던 내용들을 담은 책인 [블랙 라이크 미]를 읽으셨다고 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난 뒤, 예전과는 달리 미국의 거리에서 흑인들을 만나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어졌다고 했다. 이 책을 읽으며 아주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있었다고 말하시면서, 나 역시 꼭 이 책을 읽기를 추천해주셨다. 나는 괜찮다고 사양했지만 직접 이 책 한 권을 주문해서 나에게 선물까지 해 주셨다.

  

   선물로 받은 직후에는 이 책을 읽지 못했다. 다른 책을 읽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제 아버지 병원 때문에 부산에 다녀온 이후, 모처럼 시간이 남아 집에서 이 책을 여유롭게 읽을 수 있었다. 나에게도 이 책은 매우 놀라운 책이었다. 인종차별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던 한 백인이, 실제로 흑인들이 어떤 차별을 받고 있는지를 경험하기 위해 스스로 피부색을 바꾸어 6주 동안 직접 흑인으로 살아보았다는 상황은 아주 흥미로우면서도 대담한 것이었다. 그러나 나를 정말 놀라게 했던 것은 이 책의 문체(스타일)였다. 일기 형식으로 쓰인 이 책은 아주 개인적이고 솔직하게 자신이 경험한 여러 상황들을 서술하고 있었으며, 필자의 빼어난 문장력 탓에 레포트나 다큐멘터리보다는 하나의 문학 작품으로 읽혔다.

  

   이 책은, 인간이 인간으로서 경험할 수 있는 아주 부조리한 상황에서 느끼는 분노와 절망을 아름답고 섬세한 문장들로 표현하고 있다. 저자인 존 하워드 그리핀은 단지 피부색이 검다는 이유로 백인들과 흑인들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백인들이 자신에게 이유 없는 증오감과 우월함을 어떻게 드러냈는지 세밀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 책에서는 저자가 얼굴이 검게 변한 자신을 보면서 마치 타자를 보는듯한 낯섦과 당황스러움에 사로잡히게 되었던 시기부터, 조금씩 흑인들 사회에 동화되어 실제로 흑인이 되어 살아볼 수 있었던 과정들을 생생하게 살펴볼 수 있다.

  

   1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기간의 체험을 그리고 있기에 이 책은 자서전이라기보다는 에세이에 가깝다. 하지만 한 개인의 특성이 두드러지게 드러나기보다는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차별과 절망을 보편적으로 그려내고 있기에, 또한 이를 매우 섬세하고 그려내고 있기에, 이 책은 내게 에세이라기보다는 문학 작품과 같이 다가왔다. 또한 이 책이 갖고 있는 문장의 힘 덕택에 나는 새삼스럽게 책 읽는 즐거움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한 권의 책 속에 들어있는 일관성 있고 진실한 문장들이 얼마나 읽는 사람을 즐겁게 만들고 더 나아가 읽는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아무리 책이 아닌 매체들이 발전한다고 해도 결코 책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책이 없어지지 않는 이유는 책의 물질적 형태가 안정적이고 완고해서가 아니다. 책만이 담을 수 있는 정신의 깊이 때문이다.

  

   내가 속하지 않은 집단을 타자화시키고, 타자화된 집단에게 특정한 가상적 속성들을 부여해서 유무형의 폭력을 가하는 사례들은 우리의 일상에서도 빈번하게 찾아볼 수 있다. 남자와 여자, 금수저와 은수저, 여당과 야당, 정규직과 비정규직, 한국인과 비한국인 등과 같은 차이들은 은연중에 차별을 낳고 차별받는 자들에게 실질적인 고통을 준다. 이러한 고통은 명백히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것이기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타인을 동정하기보다는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타인이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다. 아마 이 책 [블랙 라이크 미]는 고전의 반열에 올라 많은 이들에게 널리 읽힐 것이다. 그것은 이 책의 문장이 신랄하고 비판적이기보다는, 진솔하고 섬세하며 결과적으로 독자에게 공감과 감동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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