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새벽의 고요함을 감사함

강형구 2016. 4. 2. 06:33

 

   새벽에 깨어난 아내로부터 좋은 소식을 들었다. 전날 새벽 1시쯤 잠들어 잠이 부족한 상태였지만, 깨어난 후에는 감사함과 기쁨에 사로잡혀 잠이 오지 않았다. 아내의 손을 잡고 감사 기도를 드리며 눈물을 흘렸다. 기도를 드린 후 나의 방에서 음악을 들으며 고요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지금 나를 감싸고 있는 새벽의 고요함은 하늘이 주신 소중한 선물인 듯하다. 여전히 내 마음 속에는 사악한 생각들이 많아, 과연 내가 최근의 슬픈 소식들 사이에서 찾아온 이 기쁜 소식을 누릴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 되돌아보게 된다.

  

   악을 악으로 갚아서는 안 된다. 선행을 베풀고, 용서하며, 인내하라. 늘 부모님께서 내게 해주시던 말이다. 너무 교과서 같고 소박하게 여겨지는 충고이지만, 사람들 속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다 보니 왜 이런 충고들이 생겨나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사람이 살아가면서 느끼는 주된 분노는 일로부터 비롯된다기보다는 인간의 비열함과 비정함으로부터 비롯된다. 그러나 이런 분노를 분노로써 대항하고자 하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 역시 조금씩 내가 적대하고자 하는 사람과 비슷하게 변한다. 그렇기에, 자신의 인격과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상대방을 용서하고 인내할 필요가 있다. 용서하고 인내함으로써 동화되지 않고 지나쳐갈 수 있다는 것, 요즘 들어서야 이러한 용서와 인내의 현명함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악과 분노는 세상에 오래 남아 있지 못할 것이다. 선과 사랑, 희생과 봉사가 세상에 오래 머무르며 다른 생명들의 삶을 지지할 것이다. 내가 나의 전공인 철학에 감사하는 것은 나의 철학적 활동을 세상에 대한 일종의 봉사로 생각할 수 있어서다. 봉사활동은 그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고 그저 베풀고자 하는 마음으로 즐겁게 하는 데 그 의의가 있다. 이미 직장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나는 자신의 부귀와 영화를 얻으려고 철학을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누군가 해야 했지만 아직 행해지지 않은 일, 꼭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사소하고 귀찮게 생각되는 일을 하려고 한다. 사상은 자국어로 옮겨지고 자국어로 쓰여야 그 땅에 뿌리를 내린다. 왜 서양의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이 그토록 토속어 사용을 강조했겠는가?

  

   학교에서는 철학적이고 역사적인 맥락 속에서 자연과학을 교육하고, 이러한 교육 속에서 육성된 철학적인 과학자가 뛰어난 과학적 업적을 이루어내는 것. 과학자가 철학적이고 역사적인 고찰을 하는 것이 전혀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고, 오히려 그것이 대가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음을 의미하는 문화. 사실 이러한 문화는 이미 서양의 역사 속에서 여러 번 등장해서 그 빛을 발휘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 르네 데카르트, 아이작 뉴튼, 칼 가우스, 에른스트 마흐, 앙리 푸앵카레,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닐스 보어 등와 같은 사람들이 바로 이러한 철학적 과학자들이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철학이나 과학철학이 발전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뛰어난 철학적 과학자가 탄생해서 세계의 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것이다.

  

   나는 일본을 좋아하지 않는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한 것을 생각할 때마다 마음속에서 분노가 일어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양의 과학문화를 자기 고유의 것으로 소화해냈다는 점에서 우리는 일본을 본받아야 한다. 일본처럼 서양의 자연과학 사상을 자신의 언어로 옮기고, 자신의 언어를 사용해서 자연을 이해하고 탐구하는 문화를 형성해야 한다. 때때로 나는 왜 내가 이토록 자연과학의 철학적이고 역사적인 이해에 집착하는지 스스로 질문하곤 한다. 그건 아마도 내가 이러한 이해에 조금이나마 기여하는 것을 내 목숨이 가진 사명으로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왜 나는 그것을 나의 사명으로 생각하는 것일까? 이 물음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나 스스로가 이런 사람일 뿐이라고 대답하는 수밖에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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