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내게 행복을 주는 시간

강형구 2016. 3. 19. 16:11

 

   여유가 있을 때 가끔씩 나는 복잡하게 돌아가는 세상에 대한 감상에 잠기곤 한다. 감상에 잠길 때마다 이런저런 생각들이 떠오르며 날 즐겁게 해준다. 올해가 2016년이다. 이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지구 위에서 무수히 많은 일들이 일어났겠지. 나도 벌써 이 세상에서 30년이 넘게 살았다. 지금까지 나름대로 세상이 제시하는 질서에 맞게 착실하게 살려고 노력해왔다. 살아오면서 사회 전체의 구조와 질서 앞에서 나라는 개인의 무력함과 보잘 것 없음을 자주 느꼈다. 나는 내가 남들에 비해 두드러지게 잘 하는 것이 없다는 것도 잘 알게 되었다. 나란 개인은 안중에도 없는 듯 세상이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 이것은 내게는 늘 일종의 경이로움을 준다.

  

   내게 행복을 주는 시간의 특징이 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인정을 받는 것, 재물이나 권력으로 다른 사람들을 통제하는 것은 내게 전혀 행복함을 주지 않는다. 우리 사회를 발전시키는 일은 어느 정도 내게 행복함을 줄 수 있겠지만, 그런 거창한 사업에서 내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싶은 욕심은 없다. 그저 그런 사업에 참여하는 일원으로서 조금의 힘이나마 보탤 수 있으면 만족한다. 정작 내가 행복을 느끼는 시간은 음악을 들으면서 아무런 부담 없이 상념에 잠기는 시간이고, 그 어떤 의무감도 없이 좋은 글들을 읽으면서 자유롭게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다. 음악을 들으며 생각에 잠겨 있다가 쓰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글을 쓰는 것, 그것만으로 나는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세상 속의 수많은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하거나, 역사 속에서 등장했다 사라졌던 수많은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나 역시 그런 많은 사람들 중에 평범한 한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공부를 좋아했던 내가 아무런 학문적 야심을 갖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고등학교 때 나보다 뛰어난 친구들을 알게 되면서 나는 나의 평범함을 깨달았고, 대학과 대학원에서 그런 깨달음은 확신이 되었다. 군대와 회사 생활을 하면서 사회와 조직 속에서의 개인이 얼마나 미약한 존재인지도 알게 되었다. 학문으로 먹고 사는 일을 포기한 이후, 내게 공부라는 것은 다름 아닌 내 삶의 행복을 위한 방편이 되었다. 위대한 학자가 되기 위해서 혹은 위대한 이론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공부하는 게 아니라, 그저 좀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 공부한다.

  

   학문의 영역에서 최고가 되고자 하는 욕심이 없기 때문에 마음이 편해지고 공부하는 방향도 분명해졌다. 나는 모든 것을 다 알려고 하지 않는다. 내가 마음이 가는 주제에 집중하는 것이 나의 능력에 맞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과학철학이라는 하나의 학문 영역 안에도 아주 다양한 논의들이 있다. 이런 논의들 모두를 따라가는 것은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래서 나는 논리경험주의라는 하나의 주제를 잡아, 이 주제에 대해서 깊이 공부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깊이 공부하지만 최고가 되려고 하지는 않기에, 나는 무엇인가 새롭고 독창적인 이야깃거리를 내놓으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그저 나는 깊고 정확하게 아는 것을 목표로 삼을 뿐이다.

  

   마흔, 쉰이 넘어서도 음악을 좋아하고 책 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한다면, 아마도 나는 내 또래와는 약간 다른 종류의 아저씨가 될지 모른다. 그러나 단지 독특한 사람일 뿐, 비범한 사람이지는 않으리라. 비범하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비범한 척을 하지도 않을 것이다. 또한 내가 번역하는 책들이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을지라도 크게 실망하지는 않으리라. 나의 아이들에게 아빠가 번역한 책들이라고 자랑할 수 있기만 하면 된다. 소수의 몇몇 사람들은 내가 번역한 책들을 보고 아주 조금의 감명을 받을 수 있겠지.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나는 나 스스로 공부하기 위해서 번역하는 것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많은 독자들을 기대하지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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