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평범함을 받아들이는 것

강형구 2016. 2. 27. 20:20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들어간 내게 가장 적응하기 힘들었던 것은 나보다 뛰어난 주변 친구들에 대해 느껴지던 열등감이었다. 내 곁에 있는 친구들은 운동을 하던 공부를 하던 나보다 더 쉽고 빠르게 잘했다. 반면 나는 이해와 적응이 느렸고, 무엇이든 그것의 의미를 되풀이해서 곱씹어보아야 했다. 나는 일반적인 교과서 수준의 내용을 이해하고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버거웠으나, 똑똑한 나의 친구들은 심화문제들을 쓱쓱 잘 풀었고 아주 잘하는 친구들은 대학 수준의 내용으로 진도를 넘어갔다. 고등학교 때 나는 깨달았다. 나는 평범함의 영역에서 좀 더 많은 내용들을 기억하고 이해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속하는 곳이 월등함의 영역은 아니다.

  

   나는 나의 평범함을 조금씩 받아들여야 했다. 나는 다른 아이들보다 발육이 빨랐던 편이라 초등학교 때 또래 아이들에 비해서 키가 컸다. 하지만 중학교 졸업할 무렵이 되니 나보다 퍽 작던 아이들이 나의 키를 따라잡았다. 키가 따라잡히면서 덩달아 내가 갖고 있던 다른 것들도 비범함의 영역에서 평범함의 영역으로 들어갔다. 평범함을 인정한 나의 앞에는 두 가지의 선택지가 있었다. 하나는 세상사의 모든 영역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세상사의 영역들 중 특정한 영역을 선택하고, 그 영역에서 아주 일관되고 꾸준한 노력을 해서 조금의 비범함이나마 유지하는 것이었다. 나는 후자의 선택지를 선택했다. 특정한 일을 평범한 수준 이상으로 잘 할 수 있도록 비정상적인 정도로 집중적인 노력을 했던 것이다.

  

   나는 나의 집중적인 노력을 투자하는 영역을 공부로 선택했다. 시험을 위한 공부는 아니었다. 시험을 위해서만 공부하면 시험이 끝나는 중간 중간에 동기부여가 사라져버려 일관성 있게 공부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나에게는 별다른 실질적인 이유 없이 그저 책을 읽고 생각하는 것이 즐거웠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나는 공부를 나의 취미로 삼았다. 내게 공부는 투자한 노력에 비례해서 성과를 얻을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영역이었다. 시험을 위한 공부는 사회에서 인정을 받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따라야하는 하나의 의무였다. 나는 우리 사회가 제시하는 시험의 규칙을 충실히 따랐지만, 공부의 근본적인 목적은 다름 아닌 즐거움이라는 것을 항상 잊지 않으려고 애썼다.

  

   공부는 나라는 평범한 재능을 가진 사람의 전략적 선택이었고, 나는 나의 선택에 책임을 지고 지금까지 일관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리고 나의 선택에는 여러 가지 희생들이 따랐다. 책 읽는데 집중적인 노력을 투자해 온 나는 당구를 못치고, 스키나 보드를 탈 줄도 모르며, 화투나 카드놀이도 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나누는 이야깃거리들도 잘 모른다. 지금껏 겪어온 경험의 영역도 극히 제한되어 있다. 나는 스스로가 유쾌한 대화상대자가 되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물론 나는 내가 지금까지 공부해 온 주제에 대해서 진지하게 토론을 할 준비가 되어있다. 그러나 나와 대화하는 사람들은 내가 일관되고 착실하게 공부하는 진지한 사람임을 알 수는 있겠지만, 나로부터 번뜩이는 기지나 빠른 두뇌회전을 찾아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나는 나의 평범함을 오래 전에 받아들였다. 이러한 받아들임의 과정에서 자존심도 적지 않게 상했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각자 자신에게 맞는 능력과 역할이 있다. 그러한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자신에게 맞는 현실적인 목표를 세우고 실천할 수 있다. 나는 공부 이외의 일은 무엇을 하든 아주 못하지만 않으면 괜찮다는 태도를 갖고 살아간다. 굳이 다른 사람들에게 지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도 않는다. 다만 나는 내게 맡겨진 공적인 책임은 충실히 이행하고자 애쓴다. 그것은 내가 해야 하는 일이고, 나는 그 일로 나의 사회적 생존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그와 더불어 나는, 적어도 내가 선택하여 노력하고 있는 영역에서만큼은 우리 사회에 평범한 수준 이상의 기여를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나는 나의 이런 소박한 바람이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에게도 허용되리라 믿고 있다.

 

'일상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삶의 전략에 대하여  (0) 2016.03.09
작품이 아닌 기록  (0) 2016.03.01
암중모색하는 사람처럼  (0) 2016.02.16
중력파 검출에 대한 단상  (0) 2016.02.12
2016년 음력 새해 연휴를 기억함  (0) 2016.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