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중력파 검출에 대한 단상

강형구 2016. 2. 12. 22:59

 

   요 며칠 새 중력파가 검출되었다는 소식에 세상이 술렁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소식을 듣고 감탄하고 있다. 나는 중력파의 검출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이 검출이 앞으로 무엇을 의미할 수 있는지에 대한 단순명료한 설명이 천체물리학 전문가에 의해 우리말로 제시되기를 기대한다. 솔직히 나는 중력파 검출 소식을 들었을 때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그 이유를 아래에서 이야기해보겠다.

  

   아인슈타인에 의하면, 중력의 효과와 관성력의 효과는 구분되지 않는다. 관성력은 질량을 가진 한 물체가 운동 상태를 유지하려는 힘이다. 이 힘은 가속 운동이 있을 경우에 발생한다. 관성력 효과가 중력 효과와 동일하다 함은, 질량을 가진 물체가 다른 물체를 대상으로 가속 운동 효과를 유발함을 뜻한다.

  

   이에 더해, 상대성원리에 따르면 관측자의 운동 상태와는 무관하게 관측자가 기술하는 자연의 법칙은 동일해야 한다. 중력 아래에 있는 물체를 기준계로 삼으면, 해당 기준계의 관측자는 자신이 정지해 있다고 판단한다. 마찬가지로, 어떤 물체가 균일한 가속 운동을 하고 있을 경우, 이 물체 위에 위치한 관측자는 자신이 정지해 있다고 판단한다. 그런데 균일한 가속 운동을 하는 계에서 측정 도구로 공간의 곡률을 측정하면 곡률은 0이 아니다. 가속 운동의 효과를 중력의 효과와 구분할 수 없다면, 질량 위에 있어 중력의 영향 아래에 있는 관측자 역시 공간 곡률이 0이 아님을 확인할 것이다.

  

   질량이 커질수록 해당 질량으로부터 유발되는 가속 효과는 커진다. 이것은 뉴턴의 보편중력법칙 이래로 잘 입증된 경험적 사실이다. 그렇다면 질량이 커질수록 질량 주변의 공간 곡률도 커질 것이다. 또한, 질량으로부터 멀어질수록 해당 질량으로부터 유발되는 가속 효과는 작아진다. 이는 질량 주변의 곡률이 갖는 절댓값이 질량으로부터 멀어질수록 줄어듦을 뜻한다. 뉴턴이 보편중력법칙으로 질량을 가진 물체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기술했다면, 상대성이론 이후에는 물체들이 자신들의 질량을 통해 주변 공간의 곡률을 변화시킴으로써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으로 물체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기술할 수 있다.

  

   뉴턴의 그림에서는 공간, 물체, 중력이 각각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아인슈타인의 그림에서는 이 세 가지 요소가 상호 의존적으로 변화하여, 물체의 질량으로부터 공간 곡률이 생성되고 이 곡률이 다른 질량에게 영향을 미친다. 만약 질량이 아주 큰 물체가 순식간에 사라지거나, 갑자기 전에 비해 질량의 크기가 엄청나게 커진다면, 이에 따라 공간 곡률에 큰 변화가 생길 것이다. 그리고 이 곡률 변화는 공간에서 진행되는 다른 물리적 과정들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내가 알기로는 이러한 곡률 변화가 바로 중력파다. 그런데 엄밀하게 말해, 질량의 변화는 끊임없이 발생하므로 공간 곡률의 변화는 늘 일어나고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중력파는 늘 발생하고 있다. 다만 그 크기가 너무나 작아 감지될 수 없을 뿐이다.

  

   이렇듯 중력파의 개념 자체는 일반 상대성이론이 등장하고 난 뒤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것이었다. 대개 수성의 근일점 운동, 빛의 휘어짐 현상 등도 일반 상대성이론을 입증한다고 한다. 그것은 수성의 운동, 빛의 운동이 태양 근처의 0이 아닌 공간 곡률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공간 곡률의 급격한 변화로부터 비롯되는 중력파의 존재 여부를 직접 검출하게 된다면, 이는 수성 운동과 빛의 운동을 통한 간접적 확인과는 달리 일반 상대성이론을 직접적으로 입증하는 효과를 낳는다. 그래서 중력파의 검출은 일반 상대성이론을 직접적으로 입증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하지만 이러한 중력파의 검출이 그렇게나 중요한 일일까? 나는 중력파 검출에 대해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이 다소 과장되었다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중력파의 검출은 일반 상대성이론에 대한 강력한 입증 증거이기는 하지만, 이미 일반 상대성이론은 여러 다른 증거들을 통해 거시 세계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장 신빙성 있는 이론임이 밝혀져 있다. , 이는 일반 상대성이론에 대한 다양하고 풍부한 입증 증거들 중에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중력파 검출이 일반 상대성이론에 대한 가장 강력한 입증 증거라는 것을 부정하기는 어렵긴 하다. 그러나 중력파 검출은 오래 전부터 예견된 일이었기 때문에, 적어도 아주 놀라운 것은 아니다.

  

   둘째, 중력파 검출은 반증 실험이 아니며, 중력파를 활용한 실용적인 탐구 역시 요원해 보인다. 빛의 운동을 통해 빛의 매질인 에테르를 기준으로 한 절대운동을 탐지하려 했던 마이컬슨-몰리 실험은 일종의 반증 실험이었다. , 이 실험을 계기로 에테르와 절대운동 개념이 파기되고, 대신 상대성원리와 광속일정의 원리가 물리학 이론의 새로운 기초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중력파 검출은 이와 같은 반증 실험이 아니기 때문에, 이 실험을 통해서 물리학에 큰 변화가 일어날 것 같지는 않다. 또한, 중력파는 중력처럼 쉽게 관측할 수 있는 현상도 아니며 전자기력처럼 우리가 쉽게 통제할 수 있는 현상도 아니다. 우리가 갖은 노력을 통해 중력파를 검출했다고 해도, 급격한 공간 곡률 변화를 우리가 직접 인위적으로 통제하는 것은 아주 어려울 것이며 얼마간은 이를 실현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중력파 검출이 사소한 과학적 발견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다만, 물리학의 역사를 감안할 때 이 발견이 과연 물리학의 역사를 바꾸었던 다른 발견들과 동등한 수준에 속하는 발견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싶을 뿐이다. 대개 물리학사에서 중요하다고 평가되는 발견들은 기존의 이론에 반하거나, 기존의 이론으로는 도저히 설명이 되지 않는 현상들이었기 때문이다. 비교적 최근의 예로, 물리학자 벨이 제시한 부등식의 실험을 생각해보자. 벨은 아인슈타인의 국소성 가정이 옳다고 가정하고 실험적인 측정을 통해 검증 가능한 부등식을 도출해냈고, 이에 대한 실험은 결과적으로는 아인슈타인의 국소성 가정이 그릇됨을 보여주었다. 또한 이 실험은 이른바 양자얽힘 현상을 실험하고 통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아마 내가 물리학의 아마추어이기 때문에, 혹은 물리학을 잘 알지 못해서 이렇게 생각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적인 정직성은 단점이기보다는 장점이 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또한 이렇게 솔직하게 나의 견해를 표현함으로써, 나의 무지 혹은 오판을 정정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게 된다면 이 또한 좋은 일이겠다. 뿐만 아니라, 나의 글이 중력장 검출의 과학적 의의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이 조금만 더 곰곰이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나의 글은 충분한 가치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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