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암중모색하는 사람처럼

강형구 2016. 2. 16. 23:25

 

   정확하게 누가 말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한 과학자는 덴마크의 물리학자 닐스 보어에 대해서 이렇게 평가했다. “보어는 암중모색하는 사람처럼 말하기를 즐겨했다.” 보어는 자신의 연구를 진행하기 위해서 항상 대화 상대자를 필요로 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상대와 이렇게 이야기하고 저렇게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이런저런 가능성들을 더듬어보며 생각을 조금씩 진행해 나갔다. 그의 이러한 태도는 하이젠베르크가 쓴 [부분과 전체]에 다소 극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 책에서 보어를 중심으로 한 물리학자들은 끊임없이 서로 대화하며 생각을 진행해나간다.

  

   나는 무엇보다도 보어의 이러한 암중모색하는 사람처럼말하는 것으로부터 큰 인상을 받았다. 이러한 말하기의 목적은 내가 옳은지 네가 옳은지, 내가 더 많이 아는지 네가 더 많은지 판가름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말하기는, 말하기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서로의 생각을 나누면서 조금씩 어떤 주제에 대해 좀 더 깊고 자세하게 알아가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또한 암중모색하는 사람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 이러한 태도에는 인간이 늘 진리에 직접 다가가지 못하고 오직 간접적으로만 진리를 추측할 수 있을 뿐이라는 겸손함도 담겨 있다. 어쩌면 지금도 우리는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어둠속에서 여러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조금씩 자신이 꿈꾸는 어디론가 발걸음을 이어나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와 같은 암중모색하는태도와 비슷한 태도를 아인슈타인의 글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는 물리학자들이 대개 세계 작동의 원리를 이해하고 자연을 통제하는 막강한 힘을 가진 지식인처럼 표현되곤 한다. 그런데 물리학자들에 대한 이러한 인상과는 상반되게, 아인슈타인의 글을 읽으면 물리학자의 사고는 거칠고 단순한 인간의 생각을 통해 다채롭게 생동하는 물리적 세계를 정합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집요한 탐구라는 느낌이 든다. 인간의 사고 능력이 위대해서 세계의 원리를 미세한 수준에까지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사고 능력은 풍부한 내용을 가진 다채로운 세계를 아주 제한적인 방식으로만 서술할 뿐이라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이론물리학의 기초가 고정불변하지 않기 때문에, 먼 훗날에 지금의 것과는 상이한 종류의 원리들로 이론물리학이 재구성될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나는 그의 이러한 생각에서 이론물리학의 허약함을 보기보다는 사고의 깊이와 겸손함을 보았다. 사람은 어떤 것을 더 잘 알아갈수록 자신의 앎이 갖고 있는 한계도 더 잘 알게 된다. 대화의 경우에도 내가 옳은지 네가 옳은지 각을 세워 다투기만 하는 대화보다는, 어떤 것을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솔직하고 정직하게 생각들이 오고 가는 대화가 더 기억에 남고 의미 있게 느껴진다. 물론 이러한 대화에서도 생각의 차이와 다툼은 당연히 있을 것이지만 말이다.

  

   요즘 우리 주변에서는, 이미 나는 누구편이고 너는 누구편인지 정해진 상황에서 대화를 오직 다툼의 도구로만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 안타깝다. 생각을 나누고 발전시키는 기능을 해야 하는 대화가, 상대에게 상처를 줌으로써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한 목적으로만 사용되지는 않는지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대화를 통해 생각과 입장이 자리 잡지 않는다면, 대체 사람들은 어떤 근거로 자신의 생각과 입장을 특정한 위치에 두는 것일까? 돈일까? 권력일까? 아니면 특정한 사람이나 사물에 대한 자신의 감정적인 선호일까? , 권력, 감정적인 선호를 근거로 사회에서 자신의 입장을 어떤 곳에 둔다는 것이 바람직한 일일까?

  

   [부분과 전체]를 쓴 하이젠베르크는 옛 동료들과 나누었던 아름답고 진지한 대화들을 일종의 감격에 젖어 회고했다고 한다. 나 또한 그와 같은 겸손하고 진지한 말과 글들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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