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2016년 음력 새해 연휴를 기억함

강형구 2016. 2. 10. 20:26

  

   5일 동안의 길었던 음력 새해 연휴가 저물어가고 있다. 직장이 작년에 대구로 이전한 이후, 명절 지내기가 부쩍 편해졌다. 나와 아내는 아내의 직장 근무 때문에 27일 밤에야 부모님이 계신 부산으로 내려갔다. 28일 설날 아침에는 부모님께 세배를 올린 후 조상님께 차례를 올렸다. 아버지의 증조부모 및 조부모께 차례를 올렸으니, 나에게는 고조부모 및 증조부모가 되시는 분들인 셈이었다. 나는 그분들의 얼굴을 뵌 적이 없지만, 이렇게 차례를 기회로 인사드리는 것은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례를 끝낸 후 좀 쉬다가, 집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가족 전체가 영화를 보러 갔다. 부모님께서는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검사외전]을 보러 가셨고, 며칠 전 이미 [검사외전]을 보았던 나와 아내는 [쿵푸팬더3] 한국어 더빙판을 보러 갔다. 한국어 더빙판이라 그런지 몰라도 어린 아이들이 극장에 가득했다. 아내는 재미가 없는지 영화를 보는 도중 간간이 졸았지만, 나는 동양의 정신이 서양의 그래픽 기법과 잘 버무려진 이 애니메이션을 매우 흥미롭게 보았다. 영화가 끝나고 나는 아내와 함께 집까지 천천히 걸어왔다. 집에 돌아오니 부모님께서도 영화 [검사외전]을 재미있게 보셨다고 했다.

  

   설날 저녁에는 누나와 매형, 조카 건호가 집으로 왔다. 차례 음식을 안주로 삼아 우리 가족들은 이야기꽃을 피웠다. 얼마 전 건강검진에서 위가 좋지 않다는 판정을 받으신 아버지는 아주 조금만 약주를 드셨고, 매형과 나는 소주 두 병과 이과두주 한 병을 나눠 마시며 지금껏 못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눴다. 나이가 들수록 나도 모르게 술을 자주 마시게 되는 나를 보면서, 나 역시 어쩔 수 없는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버지께서는 세월이 지나면서 점점 더 예전의 할아버지와 비슷하게 변하고 계신다. 누나 가족은 원래 설날 밤에 집으로 돌아갈 계획이었으나, 어느덧 시간이 늦어져 부모님 집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설날 이튿날 아침에는 우리 가족들이 모두 모여 김치국밥을 먹으며 해장을 했다. 아침 식사 후에 누나 가족은 부산 장전동에 있는 누나네 집으로 돌아갔고, 부모님과 우리 부부는 할머니를 뵙기 위해 경상북도 성주로 출발했다. 점심때쯤 우리는 성주 IC에 도착해서 큰고모, 큰고모부, 고모의 아들인 종찬이형, 형수님, 고모의 딸인 미영누나, 매형을 만났고, 할머니가 계신 요양병원에서 작은고모와 작은고모부를 만났다. 올해 95세이신 할머니께서는 여전히 건강해보이셨다. 치매 때문에 기억이 오락가락 하셔서 가족들의 이름을 모두 기억하지는 못하셨으나, 낯익은 얼굴과 낯선 얼굴은 대번에 구별하셨다. 할머니께서는 처음 보는 미영누나의 남편을 가리키시며 계속 그 이름을 물어보셨다.

  

   병원을 떠나오는 길은 늘 그랬듯 서글펐다. 온 가족들이 다 모였다며 즐거워하시던 할머니께서는 우리가 떠나려하자 시무룩해지셨다. 우리 가족들은 근처에 있는 우렁된장 쌈밥집에서 함께 식사를 했다. 가족이지만 명절 때만 가끔씩 얼굴을 보는 사이라, 서로 어색한 점도 있었고 궁금한 것들도 많았다. 식사가 끝나고 우리는 다시 각자의 집으로 흩어졌다. 부모님께서는 부산으로 돌아가셨고, 아내와 나는 우리의 집이 있는 대구 달성군 현풍면으로 돌아왔다. 집에 오니 몸은 편했지만 마음 한 편이 허전했다. 식구들끼리 모여 북적거리던 그 시간이 좋았기 때문이다.

  

   연휴 마지막 날인 오늘 아침에는 아내와 [엑소더스]라는 영화를 보았다. 모세가 히브리인들을 데리고 이집트를 탈출하는 내용을 담은,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였다. 영화를 본 후 우리는 진천역에 있는 생활온천에서 목욕 및 찜질을 하고 돌아왔다. 집에 와서 아내와 나는 이런저런 집안일들을 한 후, 부모님께서 싸주신 명절 음식을 먹으며 마지막 휴일의 저녁을 편안하게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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