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작업장에서

강형구 2016. 1. 30. 22:06

 

   올해로 내 나이 서른다섯이다. 서른다섯이 많은 나이는 아닐 것이다. 이 정도 나이라면, 앞으로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이것저것 새로운 일들을 배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서른다섯은 삶에서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이 이것저것 생긴 나이이기도 하다. 다시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갈 수 없기에, 왜 내가 수학과나 물리학과가 아닌 철학과로 진학했는지 뒤늦게 후회해도 소용없다. 왜 나는 공군장교가 아닌 육군장교의 길을 택했을까? 왜 나는 곧장 취업하지 않고 대학원에 진학했을까? 대학원 시절, 대체 무엇을 바라고 나는 매일 필사적으로 책들에 매달렸을까?

  

   지나간 나의 삶은 돌이킬 수 없게끔 흘러가버렸고, 그 과거의 삶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서른다섯이면 누구든 한창 일을 할 나이다. 이제 공부하거나 준비하거나 연습할 나이는 지났다. 과거의 삶 속에서 내가 늘 가장 높은 등급의 조직에 속해 왔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수준이 높든 낮든, 서른다섯이면 어떤 조직에서든 자신의 능력에 맞게 일을 해나가야 한다. 세계 최고 수준의 요리사와 지방 변두리의 한 작은 가게에서 일하는 요리사 모두 매일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음식을 만든다. 그들은 자신들이 만든 음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먹이고 그 대가로 매일을 살아간다. 나도 마찬가지다. 일을 잘 하든 못 하든, 나 역시 내 능력만큼 하는 일들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그 대가로 매일을 살아간다.

  

   직업뿐만 아니라 학문에서도 마찬가지다. 학부에서는 잘 모르는 것들을 배웠다면, 대학원 특히 석사과정을 지난 박사과정 단계에서는 해당 학문 분야에서 자신의 역량에 맞게 기여하게 된다. 역량이 높은 경우라면 멋진 논문을 쓰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나처럼 역량이 그다지 높지 않은 경우라면, 좋은 논문들을 읽고 정리하거나 좋은 책을 우리말로 번역하는 작업을 하게 될 것이다. 영어 혹은 한글로 쓰인 해당 분야의 글들을 읽고 이해하고 정리하는 데 어느 정도 숙달이 되어 있기 때문에, 박사과정 이상의 단계에서 학문은 공부라기보다는 작업에 가까워진다. 예를 들어, 하루의 모든 시간을 연구에 투자할 수 있다면, 하루에 2개 정도의 논문을 읽고 꼼꼼하게 정리할 수 있으며, 한 장 분량 정도의 연구논문을 쓸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대학이나 다른 기관에서 강의를 하는 경우라면, 하루 중 상당한 시간을 강의를 준비하고 진행하는 데 사용할 것이다. 만약 대학에서 조교 업무를 맡게 되었다면, 조교 활동을 하기 위해서도 일정한 시간을 사용하게 될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별도의 직장을 가진 상황에서 연구를 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연구할 수 있는 시간은 출근하기 전의 자투리 시간, 출퇴근 시간, 퇴근하고 난 후의 자투리 시간뿐이다. 자투리 시간에 나는 대개 정리 작업과 번역 작업을 한다. 시간과 공간의 철학과 관련한 책 내용을 정리하는 일, 번역하는 일 모두 대부분의 경우 투자한 시간에 비례해서 결과가 도출되는 정직한 작업이다. 둘 다 꼼수를 쓸 수 없는 일이기에, 내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노력했는지에 따라 업무 성과는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정리 작업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노동 혹은 작업이다. 정리해야 할 논문 혹은 책을 출력해서 여러 번 읽는다. 읽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최종적으로 글을 세밀하게 읽어가며 출력한 종이의 여백에 글 내용을 나의 문장으로 재정리해 나간다. 이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재정리를 해야만 나중에 최종적으로 해당 글을 전체적으로 정리할 수 있다. 여백에 손 글씨로 정리하는 것 자체가 정신적이고 육체적인 노동이며, 그 성과는 투자한 시간과 노력에 비례한다. 번역 작업이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노동임을 굳이 상세하게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책상과 노트북이 있는 나의 작은 방을 나의 공부방이 아닌 나의 작업장이라고 부른다. 나는 유능하거나 뛰어난 업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나는 나의 능력에 맞게 내가 할 일을 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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