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글 쓰는 사람 03

강형구 2016. 1. 23. 20:03

 

   어떤 일을 하기 위해서는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글을 쓰기 위해서는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다. 글을 쓴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한 편에는 나라는 사람의 삶과 그 삶 속에서 일어나는 생각들이 있고, 다른 한 편에는 그 생각들을 글로 표현하는 작업이 있다. 수많은 생각들 속에서 어떤 생각들을 글로 표현하는 게 좋을까? 그러한 표현이 과연 어떤 가치를 가질 수 있을까? 그런데 이런 고민들에 계속 빠져 있으면 쓰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질지 모른다. 그래서 글쓰기의 기본적인 원칙 중 하나는 일단 무엇이든 써라는 것이다. 그래야만 글쓰기가 원활히 시작될 수 있다.

  

   직장에서 행정업무를 하다 보면 글을 쓸 때가 많다. 행정업무용 글은 업무처리를 위한 글이라, 이런 종류의 글이 줄 수 있는 감흥에는 한계가 있다. 퇴근을 한 후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올 때면, 나는 대개 나의 전공인 과학철학에 대한 글을 20분 정도 읽는다. 지하철역에서 내려 자동차를 운전해 집으로 올 때는 운전을 해야 하기 때문에 글을 읽지 못한다. 집에 와서 밥을 먹고 몸을 씻으면 조금 여유가 생기고, 이 여유를 틈타 나는 간단한 글들을 쓴다. 글을 쓰며 하루 동안 나에게 있었던 일들을 되돌아보기도 하고, 그것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했던 특정한 주제에 대해 글을 써보기도 한다.

  

   요즘과 같은 시대에 글쓰기는 다분히 정적인 활동으로 비쳐질 것이다. 텔레비전을 틀면 영상과 음향효과가 다채로워 금세 사람들의 흥미를 사로잡는다. 스포츠는 역동적이라 사람들로 하여금 쉽게 흥미를 느낄 수 있게 한다. 물론 우리 시대에는 매우 역동적인 글쓰기도 있다. 그것은 SNS에서의 글쓰기다. 짤막하게 글을 써서 인터넷에 올리면 그에 대한 반응들이 실시간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개인적인 글쓰기는 즉각적인 반응을 전제로 진행되는 SNS에서의 글쓰기와는 좀 다르다. 아무리 사소한 주제라고 하더라도, 그 주제에 대해서 나름대로 고민한 다음, 개인적인 고독 속에서 일정한 시간을 들여 쓰는 글이 개인적인 글쓰기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떤 사람이 철학에 대해서 계속 글을 쓰면, 그 사람은 철학적인 글쓰기 화자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다. 만약 또 다른 사람이 여행에 대해서 계속 글을 쓴다면, 그 사람 역시 여행기를 쓰는 글쓰기 화자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다. 누구든 자발적으로 계속 글을 쓴다면, 그는 글을 통해 펼쳐지는 문장들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서 놀이를 즐길 수 있다. 20세기적인 비유를 들어서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디아블로나 리니지 같은 온라인 게임의 세계 속에 한 명의 플레이어가 되어 활동하는 것처럼, 글을 쓰는 사람은 언어와 문장의 세계 속에서 한 명의 플레이어가 되어 자신이 원하는 종류의 활동을 하며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방금 제시한 이 비유는 제법 참신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매일 인터넷이라는 기술이 제공하는 특정한 질서의 세계에 접속하는 것처럼, 우리가 글을 쓰면 언어의 세계 속에 접속해서 그 세계에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물론 우리는 평소에 수동적인 수신자로서 언어의 세계에서 수많은 정보들을 접하고, 그러한 정보들에 의해 세뇌되거나 통제되어 활동한다. 하지만 우리가 최소한 일정한 시간의 생각을 통해, 일정한 분량의 문장들을 통해 글을 읽는 사람이 아닌 글 쓰는 사람으로서 언어의 세계에 접속하게 되면, 이 세계에서 우리의 위치는 조금씩 달라진다.

  

   글쓰기 경험치를 쌓으면 쌓을수록 글쓰기 화자로서의 정체성이 조금씩 분명해지고, 문장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능력이 조금씩 발전한다. 나는 지금 이 순간, 한국말을 쓰는 글쓰기 화자로서 언어의 세계에 접속해 있는 동시대 사람들을 상상하며 묘한 흥미와 호기심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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