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글 쓰는 사람 01

강형구 2016. 1. 17. 21:04

 

   나의 기억으로는 2016년 현재 우리나라에 약 4,500만 명 정도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1945년 광복 직후에 한반도 전체에 약 2,000만 명 정도의 사람들이 살았다면, 남한만 따져도 총 인구 규모는 두 배가 넘도록 커진 셈이다. 나는 한반도 남단에 거주하는 4,500만 명 중의 한 명으로서, 대한민국 사회의 한 조직에서 일하면서 일상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다. 나는 우리나라의 근대화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이후인 1982년에 태어나 나의 아버지 세대에 비해 월등하게 풍부한 문화적 혜택을 받으며 자랐다. 나는 서양식 교육제도 아래에서 초중등 교육과정을 거쳐 고등교육 과정을 마쳤다.

 

   내가 거쳐 온 교육과정은 일반적인 성격이 강했다. 나는 책을 읽고 기억하고 시험문제를 푸는 것에는 어느 정도 익숙하였지만, 그 어떤 과목에서도 월등하게 뛰어나지는 않았다. 나는 소설책 읽는 것을 좋아했다. 소설책을 읽기 위해서 특별한 능력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고, 소설책에 나오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나에게는 삶에 대한 통찰을 주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나는 수학과 과학도 좋아했지만, 수학과 과학에 관한 교양도서들을 읽는 것을 좋아했지 아주 어려운 수학 문제나 과학 문제를 직접 풀어내어 다른 또래들을 이기고 싶다는 야심을 갖지는 않았다. 나는 그저 수학과 과학을 일반적인 수준에서 잘 이해하고 싶었다. 나에게는 문학이든 과학이든 이해가 주된 목적이었다. 어떤 분야에서 월등해지는 것이 목표인 적은 없었다.

 

   수학능력시험을 통해서 대학에 입학하는 제도가 나에게는 잘 맞았다. 나는 꾸준한 반복연습을 통해 문제 푸는 기술을 익혔고, 제법 좋은 성적을 거뒀다. 나는 서울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지만, 여전히 내가 어떤 분야에 대해 아주 뛰어난 능력을 가졌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대학에서는 법학, 의학처럼 전통이 오래되고 전문적인 분과를 가르치기도 하고, 물리학이나 전기공학과 같이 전문성이 요구되는 과목을 가르치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전공한 것은 오랜 전통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세속적인 의미에서의 전문성은 갖추지 못한 학문인 철학이었다. 물론 철학은 심오한 학문이지만, 철학이 전문적이고 실용적인 기술을 가르치는 학문은 아니었다. 철학은 누구나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주제들에 대한 일반적인 수준의 탐구를 진행한다.

 

   나는 대학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그저 대학이 제시하는 졸업기준을 충족시킬 수 있었을 뿐이다. 그래도 꼴찌는 하지 않았다는 것이 늘 나에게는 위안이 되었다. 나는 일반 병사가 아니라 육군 학사장교로 군복무를 했는데, 장교 교육과정에서도 결과는 비슷했다. 초급 군사교육 반에서 나는 중간 정도의 성적을 거두고 통신병과를 부여받아 장교가 되었다. 대전에 있는 육군통신학교에서 진행된 후반기 교육에서도 나는 중간 정도의 성적을 거두었다. 11사단 통신대대에서 복무할 때도 나는 늘 중간 정도의 근무평정을 받았다. 치열하게 동료들과 경쟁해서 최고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늘 나로서는 잘 이해할 수 없는 태도였다. 물론 나 역시 이런 태도가 여러 측면에서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만, 내게 적합한 태도는 아니었다.

 

   대학원에서의 성적도 마찬가지다. 나는 성실하게 공부했지만 무리해서 밤새 공부했던 적은 없었고, 나쁘지는 않지만 아주 뛰어나지도 않은 성적을 얻었다. 회사 입사 성적도 마찬가지였을 것이고, 입사 이후의 근무평정도 똑같다. 나는 뒤처지지도 않고 앞서나가지도 않는, 늘 어중간한 위치에 머물러 있는 사람으로 살아왔다. 이런 평범한 내가 아주 오래 전부터 지금까지 붙잡고 있는 하나의 모험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철학 공부다. 그러나 나의 철학 공부에 내가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아니다. 나의 철학에는 나라는 사람의 됨됨이가 반영될 것이다. 나 자신이 시대와 역사의 산물이기 때문에 나의 철학 역시도 시대와 역사의 산물이며, 나의 철학에는 나라는 개인이 갖는 역량의 한계 역시 반영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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