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고수에 대하여

강형구 2016. 1. 6. 23:40

 

   무술을 잘 하는 어떤 고수가 있다. 이 고수의 무공은 너무나 뛰어나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거리에 있는 많은 사람들을 순식간에 불구로 만들어버리거나 죽일 수 있다. 하지만 고수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런 행위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고수는 자신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 지금껏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스승 밑에서 10년 동안 수련했고, 수련을 마친 다음에는 무인들 사이에서만 알려져 있는 다른 고수들을 찾아 무예를 겨루었다.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고, 힘겹게 고비를 넘길 때마다 조금씩 더 강해졌다. 마침내 고수는 자신이 사는 나라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고수는 장군이 되거나 왕이 되지는 않았다. 남들 위에 올라서서 부리려는 욕심이 없었기에 그는 먹고 살아갈 방도를 따로 찾아야 했다. 그래서 그는 산에서 나무봇짐을 해다 시장에 팔았고, 틈틈이 약초를 캐어 팔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계속 무예를 수련했고, 무예에 대해서 명상했다. 글을 알았던 그는 자신의 생각을 조금씩 글로 남기기 시작했고, 몇 년이 지나자 무예에 대한 그의 사상은 한 권의 책으로 변했다.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지만 그는 계속 무예를 단련했고, 그의 무예는 점점 더 강해졌다. 그렇지만 그는 끝까지 자신의 강함을 다른 이들에게 과시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것이 헛된 일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위의 이야기는 실제로 있었던 일은 아니고, 내가 상상으로 꾸며낸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종류의 이야기를 지어내면서 흥미로움을 느낀다. , 이제 수학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보자. 수학이란 뭘까? 왜 수학이 이렇게 세상과 잘 들어맞는 것일까? 어떻게 인간은 수학적인 추론을 할 수 있는 것일까? 수학이 무예와 비슷한 것이라고 가정하자. 그리고 수학을 무예처럼 단련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리고 아주 조금 특이한 가정을 해보자. 이 사람은 학교에서 배우는 수학, 학교에서 평가하는 수학에는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 학교에서는 교과서에 있는 내용만을 가르친다. 하지만 이 사람은 교과서에는 없는 수학의 역사, 수학의 사상에 관심이 있다.

 

   무예는 높은 경지에 오를수록 심오해진다. 무예뿐만 아니라 운동도 마찬가지다. 노래도, 시도, 소설도, 그림도 그렇다. 하다 보니 계속 하게 되고, 조금 더 깊이를 느끼고 싶어 조금 더 들여다본다. 고수들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나 평가에는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일에 대해서 정확한 판단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고수들이 자신들에 대해서 과도하게 높게 평가하는 것도 아니다. 고수들은 자신들이 뛰어난 실력을 갖고 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그것은 그들이 끊임없이 연습하고 고민했기 때문이라는 것도 안다. 연습하고 고민하기 위해 특별한 재능이나 능력이 필요하지 않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바둑을 하나의 문화로 즐기는 사람들이 많고, 이 많은 사람들 중에서 뛰어난 고수가 나타난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공부를 잘하거나 돈이 많은 사람들은 아니다. 그냥 바둑을 좋아하는 사람들일 뿐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수학이나 철학을 하나의 문화로 즐기는 사람들이 많고, 이 많은 사람들 중에서 정말 뛰어난 고수가 나타난다. 이 사람들 모두가 공부를 잘하거나 돈이 많은 것은 아니다. 그냥 이들은 수학과 철학을 좋아할 뿐이다. 나는 이런 방식으로 하나의 문화 영역이 발전하고, 이 영역에서 제대로 된 고수가 나타나게 된다고 생각한다. 학문의 영역도 이런 방식으로 발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시험성적만으로 줄을 세우고, 오직 시험을 위해서만 공부하는 것이 당연시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학문적 고수가 나타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나의 경험으로는 한국 대학의 교수님들 천 명 중에 한 명 정도가 진정한 고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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