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써야하기 때문에

강형구 2015. 12. 27. 21:59

 

   오늘은 아내가 휴일 근무를 하는 날이었다. 아침에 아내를 직장에 데려다주고 나는 동네에 있는 달성도서관으로 갔다. 도서관에서 공책에 글을 좀 쓰고 있으려니까 함께 공부하는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나는 도서관을 나서 근처에 있는 현풍초등학교 운동장을 천천히 걸으며 선생님과 함께 한 시간이 넘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날씨가 사뭇 쌀쌀했다. 매주 누군가와 과학과 철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이것은 나에게 좋은 일이다. 영화에 대해, 음식에 대해, 혹은 다른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역시 나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는 참 좋은 일이 되리라.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나의 오랜 습관이다. 학창시절에는 도서관에 나의 또래들이 많았고,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도 많았다. 그런데 지금은 도서관 열람실에 가면 대부분 나보다 나이가 어린 친구들이 책상에 앉아 있다. 나는 예전보다는 나의 읽을거리에 덜 매달린다. 이제는 읽는 것이 내게는 생각하기 위한 수단 비슷한 것이 되었다. 조용히 생각하기 위해서 글을 읽다보면 생각 때문에 글을 그저 스쳐지나가는 경우가 잦아졌다. 예전에는 내가 읽고 있는 것을 제대로,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 기를 쓰고 글 자체에 매달렸다. 이렇듯 시간이 지나면서 읽는다는 것이 나에게 갖는 의미도 조금씩 달라진다.

 

   그런데 글을 쓴다는 것의 의미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내게 비슷하다. 나는 늘 나 자신을 어떤 방식으로든 표현하고 싶었고, 그런 욕구가 들 때 글은 중요한 표현 수단이 되었다. 나는 정답을 찾기 위해서, 논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자발적으로 글을 쓰지 않았다. 물론 그런 글들을 쓴 적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것들은 내 마음에서 스스로 우러나와 쓴 글들은 아니었다. 아무도 읽어주지 않아도, 누구도 좋아해주지 않아도, 그저 나를 표현하고 싶어서 솔직하게 글을 쓰는 활동이 나와 같은 사람에게는 꼭 필요했다. 그것이 내 삶을 지속해나갈 수 있게 했다.

 

   가끔씩 나는 철학을 열정적으로 탐구했던 예전의 나 자신을 떠올리곤 한다. 화이트헤드의 책을 공책에 손으로 베껴 쓴 적도 있었고, 아인슈타인과 러셀의 몇몇 글들을 직접 타이핑해서 한글파일로 옮겼던 적도 있다. 니체의 글들을 좋아해서 학기와 방학 가릴 것 없이 매일 학교 도서관에 가서 한글로 번역된 니체의 전집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던 적도 있다. 물론 지금도 나는 글 읽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 하지만 지금은 열정의 대상이 조금 달라졌다. 이제는 책 속에서 진리를 찾기 위해서 책에 매달리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나 자신의 삶을 좀 더 잘 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하기 위해 책을 일종의 방편으로 삼는다.

 

   도서관에는 문제집을 열심히 푸는 고등학생들도 있고,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들도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소설들을 몇 권씩 빌려 열심히 읽는 친구도 있다. 자료실에는 뭔지 모를 두꺼운 책을 펴고 열심히 들여다보시는 연세 지긋한 노인분도 계신다. 도서관 복도에서는 어린 아이들이 지들끼리 장난을 치고 논다. 가끔씩 도서관 직원이 정수기 쪽으로 와서 따뜻한 커피 물을 받아갈 때도 있다. 나도 이들 사이에 끼어 도서관 풍경의 한 자리를 담당한다. 아마도 나는 이들에게, 한글 혹은 영어로 된 글들을 조용히 읽으며 이따금씩 밖으로 나가 커피를 마시며 생각에 잠기곤 하는 한 명의 아저씨로 비칠지 모른다.

 

   누군가가 내게 당신은 왜 글을 쓰냐고 묻는다면, 아마 나는 다음과 같이 대답할 것 같다. 그냥 쓰고 싶어서 씁니다. 써야만 살 것 같아서 쓰죠. 다른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지금 내 나이에 좀 더 똑똑해지는 게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글로 다른 사람들을 앞서거나 이기고 싶은 생각도 없어요. 그냥 쓰고 싶어서, 글을 쓰면 위로가 되고 재미가 있으니까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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