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평가에 대한 단상

강형구 2015. 12. 26. 12:34

 

   나의 개인적인 평가가 다른 사람들의 평가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를 들어, 나는 현재 상영되고 있는 영화들 중에 대호를 가장 높이 평가하고 있으며, 이 영화가 올해 나온 영화들 중 가장 뛰어난 영화들의 집단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흥행 순위를 보면 대호1226일 현재 3위 안에도 들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히말라야대호둘 다 관람한 주변 사람들에게 둘 중 어떤 영화가 더 괜찮았냐고 물어보면, 대부분의 경우 대호가 더 재미있었다고 답했다.

 

   물론 나는 여기서 소수의 사례들을 가지고 성급하게 일반화하고 싶지는 않다. 그저 나는 나의 개인적인 평가가 다른 사람들의 평가와 엇갈리는 현상에 대해 좀 더 생각해보고 싶을 뿐이다. 나에게는 어느 정도 평가에 자신이 있는 영역들이 있다. 예를 들어, 나는 학부시절 이후 계속 철학을 공부해왔고, 특히 서양의 현대철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나는 서양의 철학에 대해 나름대로의 평가 기준을 갖고 있다. 그런 내 입장에서, 요즘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는 강신주씨의 철학은 지금껏 읽어보지도 않았고 크게 관심도 없다. 나는 강신주씨의 철학에 그다지 깊이가 없을 것이라 지레 짐작한다.

 

   이와 같은 나의 판단은 매우 직관적인 것이다. 지금까지 나의 철학 공부 경험을 바탕으로 제한된 정보를 기초로 직관적인 평가를 내린 것이고, 이러한 평가를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 일정한 분량의 글을 쓰거나 논쟁에 참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불필요하게 나의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강신주씨의 철학이 인기를 얻고 있는 사회적 현상이 안타깝기는 하다. 나는 강신주씨보다는 김상봉 선생님 같은 분들이 좀더 대중적인 인기를 끌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철학 분야에 대해서 내가 나름 수준 높은 평가를 할 수 있다고 자부하는 것과 비슷하게, 나는 수학이나 물리학 분야에 대해서도 어떤 저자가 좋은 저자이고 어떤 강의가 좋은 강의인지를 평가할 수 있는 기본 소양이 나에게 있다고 자부한다. 왜냐하면 나는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책들과 강의들을 꾸준히 접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학과 물리학 분야의 저자들에 대한 나의 평가가 다른 사람들의 평가와 일치할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나는 물리학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고, 여러 강의록들을 출판하였으며, 자신의 홈페이지에 자신의 강의록을 무료로 공개했을 뿐만 아니라, 인터넷으로 누구나 자신의 강의를 볼 수 있도록 하신 인하대학교 물리학과 차동우 교수님을 매우 높게 평가한다.

 

   다른 사람들 역시 나만큼 차교수님을 높게 평가할까? 좀 더 구체적으로, 차교수님의 강의를 직접 수강한 인하대학교 학생들 역시 차교수님에게 높은 점수를 주었을까? 나는 반드시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차교수님의 강의에서 큰 감명을 받은 학생들도 있을 것이고, 반대로 차교수님의 강의를 어렵거나 지루하게 느꼈던 학생들도 있을 것이다. 나는 이러한 개인들의 평가에 대해 왈가왈부하고 싶지는 않다. 누구에게나 어떤 문제나 대상에 대해 자기 나름의 기준으로 평가할 수 있는 자유와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철학, 수학, 물리학의 영역을 넘어 문화나 경제, 정치로 판단 영역이 확장되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이 영역에서는 내가 나의 판단에 약간의 전문성조차 부여하기 어렵다. 물론 내 개인적인 취향은 이 영역들에도 분명히 있다. 나는 대호를 좋아하고, ‘임금피크제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지지하며, ‘자유·민주·평등·정의를 위해 일하는 정치인들을 응원한다. 하지만 이런 개인적인 취향이 올바른지, 보편적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잘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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