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아버지와의 산행

강형구 2016. 1. 3. 15:38

 

   어제는 오래간만에 아버지와 함께 등산을 했다. 어제 아버지와 나는 집에서 아침식사를 한 후 등산복을 입고 점심 도시락을 챙겨 범어사로 갔다. 우리는 부산 지하철 1호선 범어사역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범어사까지 올라간 후, 적당한 속도로 금정산 최고봉인 고당봉까지 걸어 올라갔다. 어린 시절부터 부산에서 살고 금정산 등산을 자주 다녀본 나였지만, 고당봉에 직접 오르는 것은 처음이었다. 다행히 날씨가 맑고 따뜻해서 등산하는 데 큰 불편함이 없었다. 우리는 오전 10시쯤 범어사에서 출발했고 고당봉에 도착하니 오전 1130분이었다. 고당봉에서 아버지와 나는 다른 등산객에게 부탁해서 함께 사진을 찍었다. 이 사진은 아마도 나와 아버지에게 소중한 추억이 되리라.

 

   돌이켜보면 나는 아버지와의 산행을 통해 조금씩 산을 좋아하게 됐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아버지는 다소 우량아였던 나를 운동시키기 위해 온천장에 있는 금강공원에 매일 아침 데리고 가셨다. 금강공원까지 빠른 걸음으로 가면 사람들이 너른 공터에서 음악을 틀고 체조를 하고 있었고, 아버지와 나는 그 옆에 자리를 잡고 간단하게 몸을 푼 다음 집으로 돌아왔다. 처음에는 마지못해 아버지를 따라갔지만, 나는 조금씩 공기가 맑고 다채로운 자연을 접할 수 있는 산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래서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부터는 친한 친구들이랑 주말마다 금정산에 올라갔다. 금강공원 입구에서 금정산 자락에 있는 조그만 약수터까지 한 시간 반 정도 걸렸는데, 친구들과 함께 숨이 턱까지 찰 정도로 빠르게 약수터에 올라 시원하게 물 한 바가지를 마셨던 기억이 난다.

 

   내가 살았던 명륜동에서 출발해서 금강공원 입구를 지나 케이블카 정류소가 있는 휴정암까지 가파른 길을 타고 올라간 다음, 금정산성 동문에서 북문으로 이어지는 긴 길을 따라 걸어 범어사로 내려오는 길은 내가 좋아하던 등산로였다. 족히 4시간 반이 걸리는 이 등산로를 따라 걸으면서 나는 이런 저런 많은 생각들을 했다. 중학교 때는 친구들과 함께 걸었고, 공부 때문에 방황을 했던 고등학교 때와 대학교 때는 혼자 많이 걸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아무 생각 없이 걷다보면 고민들이 조금씩 정리되고 다시 힘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려가는 길에는 범어사에 들러 불상들의 처연한 표정을 보고 기도드리며 마음을 정리하기도 했다. 실컷 땀을 흘리며 등산한 다음에는 온천장에 있는 목욕탕에 가서 몸을 씻었다. 집에 돌아와서는 쓰러지듯 잠이 들어 저녁때까지 잤다.

 

   어제 아버지와 산행하며 서로 많은 얘기를 했다. 특히 아버지께서는 경상북도 성주에서 농사를 짓다가 할아버지에게 등을 떠밀려 부산으로 오신 다음, 여러 시행착오들을 겪으면서 의류도매업을 해왔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경쟁업체가 근처에 있는 고객들을 가로채면 멀리 있는 군이나 면 단위 영업장들에 직접 찾아가서 물건을 팔며 버티셨다고 한다. 직원들에게 각자의 매출 실적에 비례하는 인센티브를 주자 예상했던 것보다 2배 이상의 판매성과를 거두었다는 이야기도 흥미롭게 들었다. 국제통화기금 지원 당시 회사가 부도를 맞았는데, 그 위기 속에서 어떻게 대처했는지도 말씀해주셨다. IMF 이후로 아버지의 영업 실적은 연이은 적자였다. 나는 장년시절 아버지께서 얼마나 활기차고 열심히 일하셨는지, IMF 이후 어떻게 우리 집안의 분위기가 조금씩 변해갔는지 생생하게 기억한다.

 

   “너는 나의 분신이지만 네 삶을 내가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 자립적으로 살아야 한다.” 어린 시절 나는 아버지보다 키가 크고 싶었고, 무엇이든 아버지에게 지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나의 경쟁자이자 방패막이가 되어주셨던 나의 아버지를 기억한다. 여전히 나는 세상과 삶이 두렵지만, 나 역시 나의 아버지 못지않은 한 명의 아버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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