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이해함과 만족함에 대하여

강형구 2016. 4. 20. 23:11

 

   요즘 아이들은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 무수히 많은 종류의 학원에 다닌다고 한다. 심지어 줄넘기를 가르쳐주는 학원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무척이나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내가 학생이던 시절 나는 학원에서 영어와 수학만 배웠다. 그나마 우리 집 형편이 괜찮은 편이었기 때문에 학원에 다니며 공부할 수 있었다. 학원에서 하루는 영어 하루는 수학을 가르쳤고, 하루의 수업 시간은 70분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매일 딱 70분만 학원에서 배웠다. 나머지 과목들은 학교 선생님들로부터 배웠고, 방과 후에는 교과서 및 관련 책들을 찾아서 읽었다.

  

   나는 지금까지도 내가 많은 과목들을 학원에서 공부하지 않고 혼자 공부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혼자서 공부하려면 책을 거듭해서 읽어야 한다. 학교 수업 시간에 선생님께서 가르쳐주는 것을 듣고 단번에 이해하기란 매우 어렵다. 수업이 끝나고 혼자 공부할 때는 교과서를 거듭해서 읽거나, 교과서가 읽기 어려우면 이에 관련된 더 재미있고 쉬운 책을 찾아서 읽는다. 책을 읽고 생각하면서 공부하면, 스스로 납득이 되고 만족이 될 때까지 읽고 생각하는 버릇이 생긴다. 이와 더불어 판단의 독립성이 생긴다. 직접 읽고 생각하니까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이 진짜이고 가짜인지 판별하는 능력이 생기는 것이다.

  

   그런 내게 불행인지 다행인지 잘 구분이 되지 않는 일이 일어났다. 고등학교에서 수학과 과학을 배우는데 그것들이 나에게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좀 더 정확히 말해, 책에 있는 내용들만으로는 전혀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냥 외우고 넘어갈 수도 있었지만 도무지 그렇게 할 수가 없었던 나는, 내가 찾아볼 수 있는 다른 책들을 뒤적거리면서 수학과 과학을 좀 더 잘 이해하고자 했다. 그렇다면 왜 수학과 과학이었을까? 그것은 수학과 과학이 자연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를 따라 등산을 자주 다녔던 나는 산에서 볼 수 있는 다채로운 자연 현상이 신비스러웠고, 자연을 탐구해보고 싶었다.

  

   자연을 탐구해보고 싶어 수학과 과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나,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만으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아 자연과학 관련 서적들을 뒤적이게 된 나는, 책들 속에서 과학의 역사와 사상을 만났다. 과학의 역사와 사상을 공부하니 과학이 좀 더 잘 이해가 된다는 생각이 들었고 만족스러웠다. 나는 특히 과학철학자 한스 라이헨바흐의 글을 읽으며 몹시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우리말로 옮겨진 라이헨바흐의 책이 얼마 되지 않았고, 그의 사상 자체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나는 라이헨바흐의 사상을 더 잘 이해하고 싶었다. 그렇게 되면 과학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나는 교과서의 내용만으로는 만족을 하지 못했을까? 왜 나는 좀 더 깊은 분석을 필요로 했을까? 게다가 나는 왜 철학적분석을 필요로 했을까? 물론 나는 철학적 분석이 좀 더 과학을 깊이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고 대답하겠지만, 그 때의 깊이가 다른 사람들도 공감할 수 있는 깊이일지는 확신하기 어렵다. 내가 이해하고 만족스러움을 느끼는 글에서 다른 사람들이 어려움과 불만족을 느낄 가능성은 아주 높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잘못도, 다른 사람들의 잘못도 아니다. 그저 세상을 살아가는 각자의 몫이 다를 뿐이다.

  

   과학을 깊고 일관성 있게 이해하게 해주는 철학, 그것이 내가 원하는 철학이다. 그리고 나는 나 자신이 과학을 깊고 일관성 있게 이해하기 원한다. 그래서 나는 한스 라이헨바흐를 비롯한 논리경험주의의 과학철학을 공부한다. 다른 이유는 없다. 만약 나의 과학철학 공부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유용할 수 있다면, 그 유용성은 크게 두 가지가 될 것이다. 첫째, 과학 비전공자들이 과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둘째, 과학 전공자들이 과학을 좀 더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나는 처음부터 철학만을 위한 철학을 나의 목표로 삼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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