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독서하는 시간

강형구 2016. 5. 20. 17:44

 

   요즘에는 라이헨바흐의 [원자와 우주] 번역을 끝내고 난 후 잠시 쉬어간다는 생각으로 여유 시간에 번역 대신 독서를 한다. 피터 고드프리스미스가 지은 [이론과 실재]를 읽었고, 신광복·천현득 선배가 지은 [과학이란 무엇인가]를 읽었다. 지금은 토머스 쿤이 지은 [코페르니쿠스 혁명](정동욱 선배 번역)을 읽고 있다. [이론과 실재]는 실재론적 경험주의(혹은 경험주의적 실재론)를 옹호하는 저자의 생각을 읽을 수 있어서 좋았지만, 번역된 문장들이 깔끔하지 못한 경우가 더러 있어 다소 아쉬웠다. [과학이란 무엇인가]는 과학방법론과 과학적 설명에 대한 기존의 과학철학적 논의를 아주 간결하고 명료하게 정리해 놓은 책이어서 아주 만족스러웠다.

  

   [코페르니쿠스 혁명]을 읽으면서 이 책이 아주 좋은 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책과 쿤의 이후 저작 [과학혁명의 구조]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는데, 내가 예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두 책 사이에 더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 같다. 기술적인 측면에서 [코페르니쿠스 혁명][과학혁명의 구조]보다 더 어렵지만 이 책이 결코 전문가만을 위한 책은 아니다. 서양의 천문학 연구 전통을 생생하게 체험해보고 싶은 사람에게 이 책은 아주 훌륭한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내용의 풍부함과 상세함, 내용을 서술함에 있어 기본적으로 전제되어 있는 역사적인 관점 등이 이 책을 매력적으로 만든다. 반면 그의 [구조]는 성급한 일반화와 과감하고 거친 주장으로 나에게 의심과 거부감을 일으켰던 기억이 있다.

  

   주중에 독서할 수 있는 시간은 별로 없다. 나는 출근하거나 퇴근할 때 편도 기준으로 지하철을 대략 25분 정도 이용하며 주로 그 시간 동안 책을 읽는다. 퇴근해서 집에 도착하면 아내와 함께 보내느라 독서를 거의 하지 못한다. 매일 아침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출근하기 전까지 독서를 하려고 애쓰지만 그게 마음대로 잘 되지는 않는다.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새벽에 일어나 독서를 하거나 글을 쓴다. 나는 개인적으로 독서하는 시간을 텔레비전을 보거나 영화를 보는 시간보다 더 좋아한다. 문장들만이 줄 수 있는 깊이가 있고 나는 그 깊이에 큰 만족감을 느낀다. 나는 나의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기를 바라지는 않지만, 아이들에게 독서하는 습관만은 꼭 물려주고 싶다. 독서를 즐기는 버릇을 들이게 해주고 싶다.

  

   주말이 되면 그나마 시간이 좀 난다. 그런데 집에 있으면 주말에도 책을 잘 안 읽게 된다. 아내와 더불어 텔레비전을 많이 보고, 주중에 밀린 여러 집안일들을 하기 때문이다. 나는 주말에 시간을 내어 인근에 있는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었으면 하고 바라는데, 아내가 임신한 이후로는 그것이 쉽지 않은 일이 되어버렸다. 물론 핑계를 대기 시작하면 끝없이 스스로를 합리화시킬 수 있다. 집이든 도서관이든 굳건한 의지로 계속 독서를 해나갈 수 있어야 하는데, 그걸 아직 내가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한 것 같다. 반드시 이번 주말에는 열심히 독서를 하리라 다짐해본다. [코페르니쿠스 혁명]을 읽고 난 다음에는, 출판사에서 근무하고 있는 친구가 선물해주었던 [문화과학과 자연과학](하인리히 리케르트 지음)이라는 책을 읽을 것이다. 나는 정말 독서를 즐기고 독서에 빠져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반면 뛰어난 지성, 똑똑한 사람이 되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다.

  

   요즘 한 젊은 여성에 대한 이유 없는 살인 때문에 세상이 흉흉하다. 나는 그 이유가 무엇일까 짐작해본다. 인터넷을 하거나 SNS를 하는 시간을 조금만 줄이고, 책을 읽고 생각하며 스스로에 대해서 반성해보는 시간을 갖는다면 이런 일이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병폐인 패거리문화가 익명의 온라인 세계에서 더 병적으로 변질되고 있는 건 아닐까? 악은 인내로써 견디는 것이 아니라 선으로써 대항하고 제압해야 한다. 그리고 악을 제압하기 위해서는 말로 된 비판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불의에 맞설 수 있는 용기와 힘, 민첩성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