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358

아마추어 번역가의 생활

우선 나는 전문 번역가가 아님을 밝혀둔다. 나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다만 나는 책 읽는 것을 좋아하고 영어로 된 책도 자주 읽는다. 그렇다고 내가 영어를 잘한다는 것은 아니다. 더 이상 영어 시험을 치지 않아도 될 나이가 된 나는, 영어로 쓰인 책을 마음 편하게 읽으면서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그냥 대충 이해하고 넘어간다. 정말 읽고 싶은 책이 영어로 쓰여 있는데 거듭 읽어도 잘 이해가 되지 않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의 내용을 우리말로 옮기기 시작했고, 그렇게 나의 아마추어 번역은 시작되었다. 우리말로 번역한 책들을 내 곁에 두고 거듭 읽어보고 싶었기에, 나의 번역은 결국은 나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 아마추어로서 번역을 하면 돈을 거의 벌지 못한다. 내가 주로 접촉하는 출판사들은 대부분..

일상 이야기 2016.05.01

토머스 쿤에 대한 단상

나는 미국의 과학사가이자 과학철학자였던 토머스 쿤(Thomas Kuhn, 1922-1996)에 대한 양면적인 감정을 갖고 있다. 나는 학부시절 조인래 교수님의 과학철학 수업을 계기로 그의 책 [과학혁명의 구조]를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2002년 또는 2003년). [구조]는 매우 매력적인 책이었지만, 책을 읽으면서도 나는 그의 책이 주장하는 바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그는 과학과 관련한 너무 크고 중요한 주제에 대해서 너무 허술한 방식으로 주장하고 있었고, 나는 그의 주장이 역사적인 주장인지 철학적인 주장인지를 잘 구분할 수 없었다. 나는 [구조]를 읽으면서 그의 책이 위험한 책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러한 위험한 책이 과학철학에서 그렇게나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것은..

일상 이야기 2016.04.29

번역에 대한 단상

돌이켜보면 나는 번역을 아주 오래 전부터 해왔다. 중학교에서 영어를 배울 때 선생님께서는 숙제로 영어 지문을 번역해서 제출하라고 하셨다. 그래서 집에 돌아와 두꺼운 사전을 옆에 끼고 지문 한 문장 한 문장을 번역했던 기억이 난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지문을 번역해서 제출하지 않았다. 하지만 영어 선생님께서 수업 때마다 학생 한 명을 지적해서 영어 교재 지문을 한 문장씩 읽고 해석해보라고 하셨기 때문에, 우리들은 수업에 대비하기 위해서 대략적으로라도 지문의 문장들이 어떤 뜻을 갖고 있는지 정리를 해 두어야 했다. 이렇듯 나는 나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아주 오래 전부터 영어 번역을 연습하고 있었다. 학부 4학년 때에는 졸업 논문을 쓰기 위해서 라이헨바흐가 쓴 교수자격논문(소책자)을 번역했다. 아주 학술..

일상 이야기 2016.04.24

이해함과 만족함에 대하여

요즘 아이들은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 무수히 많은 종류의 학원에 다닌다고 한다. 심지어 줄넘기를 가르쳐주는 학원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무척이나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내가 학생이던 시절 나는 학원에서 영어와 수학만 배웠다. 그나마 우리 집 형편이 괜찮은 편이었기 때문에 학원에 다니며 공부할 수 있었다. 학원에서 하루는 영어 하루는 수학을 가르쳤고, 하루의 수업 시간은 70분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매일 딱 70분만 학원에서 배웠다. 나머지 과목들은 학교 선생님들로부터 배웠고, 방과 후에는 교과서 및 관련 책들을 찾아서 읽었다. 나는 지금까지도 내가 많은 과목들을 학원에서 공부하지 않고 혼자 공부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혼자서 공부하려면 책을 거듭해서 읽어야 한다. 학교 수업 시간에 선생님께서 가..

일상 이야기 2016.04.20

세월호 침몰 후 2년

오늘은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하고 그 안에 타고 있던 고등학생들이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지 2년째 되는 날이다. 희생자에 대한 기억은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흐릿해지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각자의 삶을 지켜내기 위해 시시각각 눈앞에 펼쳐지는 현실과 싸워나가며 과거의 기억과 조금씩 더 멀어진다. 나 역시 그러했다. 세월호가 침몰했을 때의 당혹스러움, 절망감, 분노는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퍽 수그러들었다. 그동안 나는 내 앞가림하기 바빴고 내 가족들 챙기기에 바빴다. 그래서 나는 세월호 침몰이라는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난 지 2년째 되는 오늘을 기념해, 세월호 사건에 대한 한 명의 시민으로서 소회를 밝혀보고자 한다. 2014년에 세월호가 침몰했고, 세월호 침몰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한국장학재단 교육기부사업..

일상 이야기 2016.04.16

[블랙 라이크 미(Black Like Me)]를 읽고

몇 주 전 한 지인과 함께 점심식사를 했다. 평소에 책을 많이 읽으시고 말도 참 잘하시는 분이라 식사 시간이 매우 즐거웠다. 식사 도중 그분이 최근에 읽은 책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지인께서는 얼마 전 미국 출장 기간 동안에, 한 백인이 흑인으로 변해 직접 경험했던 내용들을 담은 책인 [블랙 라이크 미]를 읽으셨다고 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난 뒤, 예전과는 달리 미국의 거리에서 흑인들을 만나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어졌다고 했다. 이 책을 읽으며 아주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있었다고 말하시면서, 나 역시 꼭 이 책을 읽기를 추천해주셨다. 나는 괜찮다고 사양했지만 직접 이 책 한 권을 주문해서 나에게 선물까지 해 주셨다. 선물로 받은 직후에는 이 책을 읽지 못했다. 다른 책을 읽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

일상 이야기 2016.04.13

새벽의 고요함을 감사함

새벽에 깨어난 아내로부터 좋은 소식을 들었다. 전날 새벽 1시쯤 잠들어 잠이 부족한 상태였지만, 깨어난 후에는 감사함과 기쁨에 사로잡혀 잠이 오지 않았다. 아내의 손을 잡고 감사 기도를 드리며 눈물을 흘렸다. 기도를 드린 후 나의 방에서 음악을 들으며 고요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지금 나를 감싸고 있는 새벽의 고요함은 하늘이 주신 소중한 선물인 듯하다. 여전히 내 마음 속에는 사악한 생각들이 많아, 과연 내가 최근의 슬픈 소식들 사이에서 찾아온 이 기쁜 소식을 누릴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 되돌아보게 된다. 악을 악으로 갚아서는 안 된다. 선행을 베풀고, 용서하며, 인내하라. 늘 부모님께서 내게 해주시던 말이다. 너무 교과서 같고 소박하게 여겨지는 충고이지만, 사람들 속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다 보니 왜 이런 ..

일상 이야기 2016.04.02

철학적 전통 아래에서

만약 누군가가 나에게 “당신의 정체성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아마 “나는 철학적 전통 아래에 속하는 사람이다”라고 답할 것이다. 만약 그가 나에게 “그렇다면 당신은 철학자인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그렇지는 않다. 그러나 철학자라는 직업을 갖지 않고서도 철학적 전통에 속할 수는 있다”라고 답할 것이다. 그가 다시 이렇게 물을 것이다. “당신은 어떤 과정을 통해서 철학적 전통 아래에 속하게 되었는가?” 이에 대해 나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나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철학을 배웠고, 이를 입증하는 학위를 갖고 있다. 고등교육기관에서 얻은 학위는 내가 공식적으로 철학적 전통에 속하고 있음을 확인해준다.” 만약 내가 조선시대에 태어나 서당이나 서원, 성균관과 같은 조선왕조의 교육기관을 거치며 유학을 ..

일상 이야기 2016.03.27

내게 행복을 주는 시간

여유가 있을 때 가끔씩 나는 복잡하게 돌아가는 세상에 대한 감상에 잠기곤 한다. 감상에 잠길 때마다 이런저런 생각들이 떠오르며 날 즐겁게 해준다. 올해가 2016년이다. 이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지구 위에서 무수히 많은 일들이 일어났겠지. 나도 벌써 이 세상에서 30년이 넘게 살았다. 지금까지 나름대로 세상이 제시하는 질서에 맞게 착실하게 살려고 노력해왔다. 살아오면서 사회 전체의 구조와 질서 앞에서 나라는 개인의 무력함과 보잘 것 없음을 자주 느꼈다. 나는 내가 남들에 비해 두드러지게 잘 하는 것이 없다는 것도 잘 알게 되었다. 나란 개인은 안중에도 없는 듯 세상이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 이것은 내게는 늘 일종의 경이로움을 준다. 내게 행복을 주는 시간의 특징이 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인정..

일상 이야기 2016.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