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358

노동과 공부

직장에 다니면서부터 전에 비해 제법 많은 돈을 벌게 되었다. 하지만 실제로 내가 나 스스로를 위해 쓰는 돈은 취직하기 전에 비해서 별반 달라진 게 없다. 나는 책을 좋아하지만 책을 사는 데 많은 돈을 들일 필요가 없다. 정말 좋다고 생각하는 책들은 대학원에서 공부할 때 대부분 마련해두었다. 꼭 살 필요가 없고 빌려서 봐도 좋은 책들은 동네 도서관이나 직장 도서실에서 대여한다. 인터넷에서 PDF 파일을 구할 수 있는 경우도 있다. 글을 쓸 수 있는 공책과 펜은 그다지 비싸지 않고, 문서작업용 노트북도 저렴한 가격으로 마련해 둔 상태다. 옷도 그렇다. 대학시절 이후로 나의 체형은 크게 변하지 않아서 집에 입을 수 있는 옷들이 많다. 그래서 나는 굳이 새 옷을 사 입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가끔씩 직장에서..

일상 이야기 2015.12.05

과학 애호가

한때 나는 과학자가 되고 싶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수학과나 물리학과에 진학해서 수학자나 물리학자가 되거나, 수학교육과나 물리교육과에 진학해서 중학교나 고등학교에서 수학과 물리학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학창시절에 철학에 대한 열정이 열병처럼 나를 사로잡았고, 나는 그 열정을 따라 철학과로 진학했다. 지금도 가끔씩 나는 나의 선택을 후회하지만, 이미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다. 철학을 전공해서 과학의 의미를 연구하면서 이 땅에서 자리를 잡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나는 대학원에서 공부하면서 나의 역량이 부족함을 느꼈고, 결국 전공과는 다른 일을 하는 직장을 찾았다. 직장인인 나는 주중에 하루 8시간을 행정업무를 처리하는데 사용한다. 그것이 내가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행정업무..

일상 이야기 2015.11.29

황소걸음으로

다른 사람들이 나를 인정해 주는지와 독립적으로 지금껏 나는 나의 길을 걸어왔다. 내가 생각할 때 나는 다른 사람들의 칭찬과 격려를 받으면서 승리의 길을 걸어왔다기보다는, 나는 가치 있고 의미 있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관심이 없거나 별반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길을 묵묵하고 뚝심 있게 걸어왔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 나는 유태인의 삶, 19세기 노동자의 삶, 방랑자의 삶을 떠올린다. 나라를 잃고 종교적으로도 박해 받던 유태인들은 힘든 일상 속에서도 자신들 고유의 신앙과 지혜의 전통을 지켜나갔다. 나에게 철학을 계속 공부하는 것은 유태인들이 생업에 종사하면서도 신앙과 지혜를 지켜나갔던 것과 유사한 의미를 갖는다. 또 다른 비유는 19세기 노동자의 삶과 관련된다. 19세기 대다수의 노동자들은 고..

일상 이야기 2015.11.21

대구 생활에 적응하며

아침 6시 30분에 일어나서 씻고 아내와 함께 아침을 먹는다. 밥을 먹을 때도 있고, 토스트를 먹을 때도 있다. 7시 30분쯤 집을 나서 차를 몰고 대구1호선 진천역 공영주차장까지 간다. 운전시간은 25분쯤 걸린다. 지하철을 타고 칠성시장역까지 가는데 약 25분쯤 걸리는데, 그동안 책을 읽거나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검색을 한다. 역에서 내려 회사까지는 걸어서 15분, 사무실에 있는 내 자리에 앉으면 8시 40분쯤 된다. 컴퓨터를 켜고 커피 한 잔을 마시면 다시 직장에서의 하루가 시작된다. 9시 전까지 회사 수첩에 오늘 할 일들을 적는다. 일들을 하나씩 하다 보면 오전이 가고 오후가 간다. 대구로 이전한 이후 대다수의 직원들은 특별한 일이 있을 경우가 아니면 불필요한 야근을 하지 않는다. 회사에서 더 이상 ..

일상 이야기 2015.11.14

할 수 있는 만큼만

요 며칠 동안은 삶이 그다지 행복하지 않다는 생각 때문에 괴로웠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씻고 출근 준비를 한다. 사람들로 붐비는 지하철에서 글을 읽는 시간도 30분 남짓, 지하철에서 내려 회사에 도착하면 다시 직장인의 일상이 시작된다. 하루 내내 그날 처리해야 하는 일들에 시달리며 오전이 지나고 오후가 지난다. 퇴근시간 즈음이면 몸과 마음이 지쳐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피곤해서 글을 읽을 마음도 잘 나지 않는다. 집에 오면 잠시 기분이 좋아지지만, 수업을 준비해야 하고 번역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갑갑하다.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며 밤이 지나가면 다음날 아침 또다시 같은 생활이 반복된다. 그렇게 심리적으로 불편하게 시간을 보내다보니, 굳이 왜 나는 나 자신에게 이런저런 많은 의무들을 부여하고 ..

일상 이야기 2015.11.07

우리의 미래가 불안하다

오래 전 삼국 중의 백제가 무너졌을 때를 상상해본다. 무너지고 있는 백제 왕조에도 조직이, 신하들이, 군사들이 있었을 것이다. 백제의 신하들과 군사들이 자신들의 왕국이 무너지기를 바라고 있었을까?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풍전등화의 처지에 직면한 조국의 현실을 참담해하며, 이제는 기록으로만 남아 있는 조국의 옛 영광을 떠올리며, 적군과의 마지막 싸움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마지막 싸움에 참여한 백제 군사들 중 열에 아홉은 패배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적과의 싸움에 임하고 장렬히 전사했을 것이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시절에 나는 나라가 위기에 처할 것이라는 걱정을 하지는 않았다. 그 시절 나는 고등학생이었고 대학생이었기 때문에, 사회에 대해 잘 모르고 현실감각이 부족해서 그런 걱정을 하지 못했는지도 모..

일상 이야기 2015.11.05

내가 할 일

서울에 있던 직장의 물품들이 지난 목요일과 금요일에 대구로 내려왔다. 직장의 대구 청사는 경북대학교와 대구공업고등학교 근처에 위치해 있다. 금요일에 대구 청사로 가보니, 달성군 현풍면에 있는 집에서 출발해서 직장까지 걸리는 시간은 1시간 20분 정도였다. 크게 부담스러운 시간은 아니다. 매일 오전 7시 30분에 출근하면 된다. 저녁 8시~9시쯤 퇴근하면 밤 11시 전에는 집에 도착할 것이다. 이제는 주말에 고속열차를 이용하지 않아 교통비가 절약될 것이다. 그러면 평소에 조금 더 여유 있게 생활할 수 있다. 아내와 나는 요즘 아이를 갖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아내를 만나 사랑하고 결혼한 것은 나에게 너무 감사한 일이었다. 만약 우리에게 아이가 생긴다면 더없는 축복이라고 생각하고 정성을 다해 키울 것이다. ..

일상 이야기 2015.11.01

시간이 필요한 일

나는 요즘 영국의 철학자 배리 데인턴(Barry Dainton)이 쓴 [시간과 공간(Time and Space)]이라는 책을 매주 한 장씩 요약정리하고 있다. 물론 자발적으로 이런 요약정리를 하는 것은 아니다. 박사과정 수료를 위해 추가로 6학점을 더 수강해야 하기 때문에, 매주 책의 일정한 분량을 요약정리하고 이 내용을 토대로 교수님과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다. 나는 직장에서의 일이 끝나고 남는 대부분의 시간을 이러한 요약정리를 위해 쓴다. 현재 이 책의 절반쯤 진도가 나갔다. 12월까지는 책 전체를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내년 2월까지 또 다른 책을 한 권 더 읽고 정리하면 박사과정 학점 이수는 끝날 것으로 기대한다. 내년 2월 이후에는 이와 같은 요약정리 작업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아마 그렇지..

일상 이야기 2015.10.25

만족과 여유

사람은 생긴 대로 사는 게 좋다. 생긴 대로 사는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그렇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옷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고 후줄근하게 입고 다녔다. 나이가 들면서 외모에 신경을 쓰게 될 법도 한데 그렇게 되지 않았다. 고등학교, 대학교, 군대, 직장에서 나는 그저 편한 옷차림으로 생활했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 나는 사람들의 눈에 띄는 세련되고 화려한 옷차림을 하는 법이 없다. 왜 그럴까 잠시 생각을 해보아도 별다른 답은 나오지 않는다. 그저 내가 이런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가보지. 화려하고 멋진 옷을 사는 게 내게 만족을 줄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소박하고 수수한 옷을 사는 게 나는 더 좋다. 비싸고 맛깔스러운 음식을 먹는 게 내게 만족을 줄까? 아니다. 나는 양이 많..

일상 이야기 2015.10.24

번역에 대한 단상

나는 영어를 뛰어나게 잘하는 편은 아니다. 주로 나는 영어를 한글로 옮기는 작업을 하기 때문에, 순수하게 문법능력이나 어휘능력의 측면에서 볼 때 나보다 영어를 잘 번역할 수 있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철학과 과학에 대해서 어느 정도 식견을 갖추고 있다. 특히 과학철학의 한 사조인 논리경험주의에 대해서는 배경지식도 많이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해도 역시 깊은 편이다. 따라서 적어도 논리경험주의에 관한 영어책들을 한글로 옮기는 것에서 나는 강점을 갖고 있다. 글을 읽는 것은 글을 쓰는 것보다 훨씬 편하다. 그런데 번역이란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생각을 우리말로 옮기는 작업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글쓰기보다 더 어렵고 힘들다. 번역은 진도 역시 늦은 작업이다. 다른 나라 ..

일상 이야기 2015.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