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내가 할 일

강형구 2015. 11. 1. 09:53

 

 

   서울에 있던 직장의 물품들이 지난 목요일과 금요일에 대구로 내려왔다. 직장의 대구 청사는 경북대학교와 대구공업고등학교 근처에 위치해 있다. 금요일에 대구 청사로 가보니, 달성군 현풍면에 있는 집에서 출발해서 직장까지 걸리는 시간은 1시간 20분 정도였다. 크게 부담스러운 시간은 아니다. 매일 오전 730분에 출근하면 된다. 저녁 8~9시쯤 퇴근하면 밤 11시 전에는 집에 도착할 것이다. 이제는 주말에 고속열차를 이용하지 않아 교통비가 절약될 것이다. 그러면 평소에 조금 더 여유 있게 생활할 수 있다.

 

   아내와 나는 요즘 아이를 갖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아내를 만나 사랑하고 결혼한 것은 나에게 너무 감사한 일이었다. 만약 우리에게 아이가 생긴다면 더없는 축복이라고 생각하고 정성을 다해 키울 것이다. 집에서 아내가 해주는 밥을 먹는 것도 소소한 기쁨이다. 우리는 적은 양의 음식에 만족하며, 어묵국이나 버섯구이도 감사하며 먹는다. 아파트 단지 지하에 있는 운동시설을 이용할 수 있게 된 것도 좋은 일이다. 30분 정도 뛰고, 15분 정도 근력 운동을 하면 1시간 안에 알차게 운동을 할 수 있다.

 

   K교수님과의 [시공간의 철학] 세미나는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지난 금요일 밤에는 교수님과 진공 개념에 대해서 토론했다. 아마 다음 주에는 공간에 대한 고전적인 논쟁을 주제로 얘기를 이어나가게 될 것 같다. 데인턴(Dainton)의 책을 다 읽은 다음에는 캐나다 웨스턴 온타리오 대학에 재직 중인 디살(Disalle)의 책을 읽을 예정이다. 디살은 역사학 전공자로서 서양과학의 시공간 개념 변천을 과학사적으로 분석한다. 나는 예전에 디살의 책을 제본하여 통독해본 경험이 있다. 디살은 논리경험주의에 관심이 있는 나에게 충분히 도움이 될 만한 저자다.

 

   서울 도심에서 주로 생활하다가 대구에 내려오게 되었다. 이곳은 대구에서도 남서쪽 끝에 위치한 달성군 현풍면이다. 대한민국이라는 한 사회의 중심에서 주변부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나는 내가 이렇게 사회의 주변부에 삶의 터전을 마련한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태어나서 삶을 영위하는 어떤 곳에서든 지적인 측면에서 재능 있는 사람이 나타나게 마련이다. 그런 사람이 사회의 중심에 있는 높은 수준의 교육기관에서 교육을 받고 재능을 개발한 다음, 다시 고향이나 다른 주변지역으로 돌아가 사회를 고르게 발전시키는 데 기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직장에서의 행정 업무는 나 아닌 다른 사람이라도 충분히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직장은 나에게는 매우 소중한 선물이기는 하나 나의 운명은 아니다. 만약 내가 20년이 지나도 이 직장에 남아 있다면, 그리고 그 긴 시간 동안 이곳에서 동료들과 함께 수많은 일들을 이루어냈다면, 그때는 아마도 이 직장을 나의 운명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학철학, 특히 논리경험주의에 대한 연구는 좀 다르다. 이것은 현재 나의 운명이다. 중학생 시절 물리학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꾼 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과학철학 연구는 나의 삶과 함께해 온 나의 역사.

 

   내게 어떠한 일이 있어도 나는 나의 아내와 가족들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내게 어떤 사소하고 자잘한 일들이 일어나도 나는 논리경험주의에 대한 연구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 연구는 나의 운명이다. 잘하느냐 못하느냐에 관계없이 내가 해야 하는 일이다. 어쩌면 이 연구를 하는 것이, 우리 사회에서 나라는 인간 개체가 탄생하게 된 이유일 수도 있을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나는 나의 운명에 주어진 이 각본을 덤덤하게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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