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우리의 미래가 불안하다

강형구 2015. 11. 5. 00:06

 

 

   오래 전 삼국 중의 백제가 무너졌을 때를 상상해본다. 무너지고 있는 백제 왕조에도 조직이, 신하들이, 군사들이 있었을 것이다. 백제의 신하들과 군사들이 자신들의 왕국이 무너지기를 바라고 있었을까?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풍전등화의 처지에 직면한 조국의 현실을 참담해하며, 이제는 기록으로만 남아 있는 조국의 옛 영광을 떠올리며, 적군과의 마지막 싸움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마지막 싸움에 참여한 백제 군사들 중 열에 아홉은 패배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적과의 싸움에 임하고 장렬히 전사했을 것이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시절에 나는 나라가 위기에 처할 것이라는 걱정을 하지는 않았다. 그 시절 나는 고등학생이었고 대학생이었기 때문에, 사회에 대해 잘 모르고 현실감각이 부족해서 그런 걱정을 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참여정부시절 나는 육군장교로 복무했는데, 그 시절 나는 복무를 하면서 군대뿐만 아니라 정부조직 전체가 조금씩 합리적으로 변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참여정부 시절에는 원칙, 대의, 논리, 토론, 설득이 힘과 권력보다 우선이었다. 그때는 아무리 대통령의 주장이라고 해도, 원칙에 맞지 않고 국민이 반대하고 대통령 본인이 토론과 논리를 통해 설득되면 자신의 입장을 수정하거나 철회했다.

 

   물론 그 시절에도 모든 현안들에 관해 원칙과 논리에 기초한 정책적 판단과 실행이 이루어졌던 것은 아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체결이나 이라크 파병 등과 같은 정부의 결정은 국민들의 숱한 반대를 무릅쓰고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렇지만 정책을 결정했던 사람들 역시 이러한 결정이 다수 국민들의 희생을 감수하면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인정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원칙과 논리에 기초해서 업무를 진행하고, 옳다고 생각하면 옳다고 말하고 그르다고 생각하면 그르다고 말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정부조직은 태생적으로 중도 혹은 보수적인 성격을 띠게 마련이지만, 그 시절에는 진보적인 사람들이 정부를 자유롭게 비판하면서도 서로 평화롭게 공존하는 분위기였다.

 

   실용정부가 들어서면서 분위기는 달라졌다. 이전까지 정부의 정책 결정 과정에서 원칙, 대의, 논리, 토론, 설득이 우선이었다면, 이제는 정책을 뒷받침하는 논리가 대부분의 경우 힘과 권력을 합리화하는 역할을 맡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는 충분히 가능한 것이었다. 정부는 국가 운영을 주도하며 나라 안을 순환하는 자원과 자본을 통제하는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나라를 골고루 발전시키며 힘없고 취약한 사람들을 지원하기도 하지만, 그와 더불어 정부는 다수 국민의 반대를 무릅쓰고 특정한 정책적 판단과 결정을 추진해나갈 수 있는 강제력 또한 갖고 있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청소년들을 비롯한 우리 사회 대부분의 구성원들이 힘과 권력은 모든 것을 합리화 한다는 주장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나는 정부 산하기관의 직원으로서 기본적으로 보수적인 입장을 갖고 있다. 하지만 학계 및 국민 다수의 충분한 의견수렴이 더 필요하다는 문제제기가 충분히 이루어진 상황에서, 교육부는 제대로 된 행정절차도 거치지 않은 채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하고 있다. 어쩌면 교과서 국정화는 본질적인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나 역시 학창시절 한국사 국정교과서로 공부했기 때문이다.

 

   정작 중요한 문제는 원칙과 논리보다 힘과 권력이 앞서는 분위기가 보편화되는 것이다. 힘과 권력이 앞서면 정책의 일관성이 없어지고 예측할 수 없는 변동이 빈번해져, 자원이 불필요하게 낭비되고 사회가 전반적으로 허약해지기 때문이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나라의 안위를 걱정하며 불안해하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무너지고 있는 나라에 속한 신하이자 군사로서 느끼는 이 불안감이 근거 없는 것이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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