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할 수 있는 만큼만

강형구 2015. 11. 7. 17:22

 

   요 며칠 동안은 삶이 그다지 행복하지 않다는 생각 때문에 괴로웠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씻고 출근 준비를 한다. 사람들로 붐비는 지하철에서 글을 읽는 시간도 30분 남짓, 지하철에서 내려 회사에 도착하면 다시 직장인의 일상이 시작된다. 하루 내내 그날 처리해야 하는 일들에 시달리며 오전이 지나고 오후가 지난다. 퇴근시간 즈음이면 몸과 마음이 지쳐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피곤해서 글을 읽을 마음도 잘 나지 않는다. 집에 오면 잠시 기분이 좋아지지만, 수업을 준비해야 하고 번역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갑갑하다.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며 밤이 지나가면 다음날 아침 또다시 같은 생활이 반복된다.

 

   그렇게 심리적으로 불편하게 시간을 보내다보니, 굳이 왜 나는 나 자신에게 이런저런 많은 의무들을 부여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장인인 내가 주중에 꼭 해야 하는 일은 직장일 아닌가. 퇴근하고 난 다음에는 아무런 일을 하지 않더라도 괜찮지 않은가. 왜 퇴근하고 난 후에는 글을 읽거나 번역을 해야 하나. 반드시 해야 하는 일도 아닌데. 왜 나는 그렇게 기를 쓰고 매일 꾸준히 운동을 하려고 했을까. 나는 군것질을 많이 하는 사람도 아니고, 밥도 정량대로 먹고, 직장에서는 가급적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걸어 다니지 않는가. 운동을 하지 않아도 기본 체격은 유지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말자.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서 만족하는 법을 배우자.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할 때 꼭 글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졸리면 졸고 딴 생각을 하고 싶으면 딴 생각을 하자. 일도 너무 완벽하게 하려고 애쓰지 말자. 착실하고 성실하게 노력을 하되, 오늘 못한 일은 내일 해도 괜찮다고 생각하자. 퇴근하고 집에 올 때는 오늘 할 일 다 했으니 남은 시간 동안 마음 편하게 쉬겠다고 생각하자. 책을 읽어야 하는 것도, 운동을 해야 하는 것도, 번역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마음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하자.

 

   특히 공부와 번역을 무리하게 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인 [시간과 공간]에 집중하고, 매주 이 책의 한 장을 읽고 요약하는 것에 만족한다. 이 책이 끝나면 다른 책인 [시공간의 이해]를 매주 한 장씩 읽고 요약한다. 그 작업이 끝나면 매주 일정한 양을 정해서 [원자와 우주]를 번역한다. 언제까지 끝내겠다는 계획을 세우지 말고, 매주 할 수 있는 만큼만 조금씩 해나간다. 출판사에서 번역 원고를 언제 주냐고 재촉이 온다고 해서 크게 걱정하지는 말자. 재촉이 오면 미안하다고 하고, 그래도 정 안되겠으면 못하겠다고 하자. 번역을 하기로 결정했으니 우선 번역을 진행하고, 번역이 끝나면 논문자격시험 준비를 한다.

 

   세상에는 대단한 사람들이 많은데, 나는 나 자신이 그런 대단한 사람은 아니라는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런 대단한 사람들을 비교대상으로 삼지 않으면 마음은 편해진다. 그렇다고 해서 나라는 사람의 특색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나는 여유가 생기면 나도 모르게 글을 읽고, 과학 강의를 보고, 산책을 하고, 글을 쓰는 사람이니까. 나는 나라는 사람에 맞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나에게 맞는 방식으로 하면 된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얼마 전에 30달러를 주고 산 전체 24강의 수학사 강의를 다 보지 못했다. 매일 하나씩 보면 한 달 안에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번에 K-MOOC에서 이종필 교수님의 [일반인을 위한 일반상대성이론] 강의를 수강신청 했는데, 이것도 꾸준히 들어야겠다. 출퇴근 시간에는 이루마의 피아노 연주곡을 들어야지. 예전에 CD에 복사해놓은 게 있다. 집에서는 마음 편하게 쉬어야겠다. 책 내용 정리하는 일은 주중이 아니라 주말에 하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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