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황소걸음으로

강형구 2015. 11. 21. 21:40

 

 

   다른 사람들이 나를 인정해 주는지와 독립적으로 지금껏 나는 나의 길을 걸어왔다. 내가 생각할 때 나는 다른 사람들의 칭찬과 격려를 받으면서 승리의 길을 걸어왔다기보다는, 나는 가치 있고 의미 있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관심이 없거나 별반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길을 묵묵하고 뚝심 있게 걸어왔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 나는 유태인의 삶, 19세기 노동자의 삶, 방랑자의 삶을 떠올린다. 나라를 잃고 종교적으로도 박해 받던 유태인들은 힘든 일상 속에서도 자신들 고유의 신앙과 지혜의 전통을 지켜나갔다. 나에게 철학을 계속 공부하는 것은 유태인들이 생업에 종사하면서도 신앙과 지혜를 지켜나갔던 것과 유사한 의미를 갖는다.

 

   또 다른 비유는 19세기 노동자의 삶과 관련된다. 19세기 대다수의 노동자들은 고통스럽게 노동하면서 끈질기게 매일의 생활을 이어나갔다. 이러한 삶의 유형은 나에게도 적용된다. 나 역시 하루하루를 살아가기 위해서 매일 고통스럽게 노동한다. 물론 제3자의 입장에서는 대부분의 시간을 책상에 앉아 모니터를 보며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행정사무가 무엇이 그리 힘든가 하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오히려 나는 육체적으로 노동하는 것을 더 마음 편하게 여긴다. 그리고 독서하고 사색하는 사람들이 대개 그러하듯, 나는 혼자서 조용히 시간을 보내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부대껴야 하는 조직 생활 자체가 매우 부담스럽다.

 

   방랑자의 비유는 아인슈타인으로부터 빌려온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한 에세이에서 자기 스스로를 떠돌이 혹은 방랑자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세상 사람들과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어 그들 속에 소속되지 않는 삶, 얽매임을 거부하고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삶이 방랑자의 삶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나의 경우에는 일부러 방랑자의 삶을 선택하지는 않았다. 내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삶이 다른 사람들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달랐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내 생각을 동화시키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에 조금씩 자연스럽게 방랑자가 된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다른 사람들과도 무리 없이 제법 잘 어울리는 방랑자가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직장, , 그 밖의 물질적인 것들은 나를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서 꾸미는 것들이다. 그리고 나는 그것들이 나의 본질적인 측면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할 때 나에게 가장 본질적인 것은 나의 아내와 내가 추구하는 학문 연구다. 나는 나의 가족들을 사랑하지만, 나의 가족들이 내 삶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 내 삶을 함께 하는 나와는 다른 사람은 바로 나의 아내다. 그래서 아내가 나에게 본질적이다. 그리고 나는 내 삶이 이룰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성과가 학문 연구에서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학문 연구는 내 삶의 정체성에서 가장 핵심적이다.

 

   그래서, 조금 이상하게 생각될지는 몰라도, 공부하는 것이 내게는 종교와 비슷한 의미를 갖는다. 나는 목사나 법사처럼 전적으로 종교에 헌신하지는 않지만, 다른 생업을 갖고 있으면서도 신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신자라고 볼 수 있다. 믿음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믿음을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처럼, 나 역시 생각하고 글 쓰는 것을 매우 소중하게 생각한다. 세속적인 성공 여부와 별개로, 그것이 나의 정체성과 직결되어 있고 나를 행복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일상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동과 공부  (0) 2015.12.05
과학 애호가  (0) 2015.11.29
대구 생활에 적응하며  (0) 2015.11.14
할 수 있는 만큼만  (0) 2015.11.07
우리의 미래가 불안하다  (0) 2015.1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