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과학 애호가

강형구 2015. 11. 29. 00:16

 

  

   한때 나는 과학자가 되고 싶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수학과나 물리학과에 진학해서 수학자나 물리학자가 되거나, 수학교육과나 물리교육과에 진학해서 중학교나 고등학교에서 수학과 물리학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학창시절에 철학에 대한 열정이 열병처럼 나를 사로잡았고, 나는 그 열정을 따라 철학과로 진학했다. 지금도 가끔씩 나는 나의 선택을 후회하지만, 이미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다. 철학을 전공해서 과학의 의미를 연구하면서 이 땅에서 자리를 잡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나는 대학원에서 공부하면서 나의 역량이 부족함을 느꼈고, 결국 전공과는 다른 일을 하는 직장을 찾았다.

 

   직장인인 나는 주중에 하루 8시간을 행정업무를 처리하는데 사용한다. 그것이 내가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행정업무를 하면 과학과 철학에 대해서 생각할 시간이 거의 없다. 그렇지만 직장인인 내가 과학 애호가로서의 삶을 살 수는 있다. 업무 시간 이외의 시간을 과학에 대해서 생각하고, 과학에 관련된 글을 읽고 쓰면서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내가 과학 애호가로서 살아가는 것을 막지는 못할 것이다. 그것은 내가 민주사회의 시민으로서 누릴 수 있는 충분한 권리이기 때문이다. 나와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이 별로 없어도 어쩔 수 없다. 취향은 타인에게 강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애호가라는 개념을 좋아한다. 애호가는 전문가가 아니다. 그래서 해당 분야에서 뛰어날 필요가 없다. 나는 철학을 공부하거나 자연과학을 공부하면서 뛰어나야한다는 부담을 자주 느꼈는데, 애호가가 되면 그런 부담을 느낄 필요가 없어서 좋았다. 뛰어나지 않은 사람도 어떤 분야에 관심을 갖고 좋아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나는 수학과 물리학 애호가다. 수학과 물리학을 잘하지는 않지만 관심이 있다. 덧붙여 나는 철학 애호가이기도 하다. 나는 내가 철학 전문가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나는 내가 철학이라는 학문에서조차도 특별한 재능을 갖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수학과 물리학을 좋아하는 감정은 나에게서 매우 강렬하다. 이 강렬함은 다른 대상들에게서는 찾을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직장을 다니고 있지만, 직장에서의 일이나 인간관계가 나에게 이런 강렬한 감정을 불러일으키지는 않는다. 만약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에서 그만두게 된다면, 아마도 나는 지금의 직장에서와 비슷한 종류의 일을 하는 다른 직장을 찾게 될 것이고 새로운 직장에서 일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직장 역시도 수학이나 물리학만큼 나를 매혹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애호가로서 갖는 이러한 강렬한 감정이 나라는 사람을 특징짓는 것은 분명하지만, 나 역시 내가 왜 이러는지는 잘 모른다.

 

   아직 나는 박사과정을 정식으로 수료하지는 못했다. 아마도 내년 상반기까지는 의무적으로 글을 읽고 정리를 해야만 정식 수료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때까지만 내가 읽고 싶은 글들은 잠시 제쳐두고 반드시 읽어야 하는 글들을 읽자. 나는 가끔씩 이렇게 생각한다. 굳이 박사학위를 받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 그냥 애호가로 남아도 되지 않을까. 애호가로서 박사과정을 수료한 것만으로도 제법 많이 공부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애호가로 남는다고 해도 영어로 된 글이나 독일어로 된 글들을 읽는 연습은 꾸준히 할 것이다. 그래야지만 알짜배기 글들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어로 된 글들의 양과 수준에는 한계가 있다.

 

   그리고 나는 내가 관심을 두는 분야 이외의 다른 것들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기도 하고 잘 알지도 못한다. 그게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평범한 사람이다. 평범한 사람이 여러 분야에 대한 깊은 식견을 가지는 것은 힘든 일이다. 나는 그저 평범한 직장인이자 자연과학 애호가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생각이 나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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