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생긴 대로 사는 게 좋다. 생긴 대로 사는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그렇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옷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고 후줄근하게 입고 다녔다. 나이가 들면서 외모에 신경을 쓰게 될 법도 한데 그렇게 되지 않았다. 고등학교, 대학교, 군대, 직장에서 나는 그저 편한 옷차림으로 생활했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 나는 사람들의 눈에 띄는 세련되고 화려한 옷차림을 하는 법이 없다. 왜 그럴까 잠시 생각을 해보아도 별다른 답은 나오지 않는다. 그저 내가 이런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가보지.
화려하고 멋진 옷을 사는 게 내게 만족을 줄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소박하고 수수한 옷을 사는 게 나는 더 좋다. 비싸고 맛깔스러운 음식을 먹는 게 내게 만족을 줄까? 아니다. 나는 양이 많고 투박한 음식이 더 좋다. 내게 만족을 주는 것들은 예를 들어 이런 것들이다. 얼마 전 미국의 평생학습사이트에서 수학사 동영상 강의를 30달러 정도에 할인할 때 놓치지 않고 구입해서 너무나 만족스러웠다. 요즘은 책들이 대부분 PDF 파일들로도 나온다. 읽고 싶은 책의 PDF 파일을 구한 다음, 특정 부분만 출력해서 출퇴근 시간에 편하게 읽을 때 나는 행복함을 느낀다.
이 외에도 나를 드러내주는 취향들이 몇 가지 더 있다. 나는 스포츠에 거의 관심이 없고, TV를 거의 보지 않으며, 대신 영화들을 자주 찾아본다. 음악을 좋아하지만 클래식이나 팝보다는 약간 오래된 한국 가요를 좋아한다. 글 쓰는 것을 좋아하고, 글씨를 단정하고 깔끔하게 쓰는 것에 대한 집착 같은 게 있다. 나는 늘 내 주변의 사물들이 질서 있게 정리되어 있기를 바라는 편이다. 그리고 나는 평소에 좋은 책, 좋은 글들을 많이 읽으려고 노력한다. 나는 내가 교양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나라는 사람을 특징짓는 또 하나 중요한 특성은, 사람들 사이에서 두드러지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나는 회사에서 조용히 내 할 일을 하는 캐릭터다. 회사에도 여론이라는 게 있고 여론을 이끄는 몇몇 사람들이 있지만, 나는 그런 사람들과는 친하게 어울리지 않는다. 나는 나와 비슷하게 책 읽고 글 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과 친하게 지낸다. 서로 말이 잘 통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친절하고 믿을만한 태도를 보이기 위해서 노력한다. 그것이 타인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좀 독특한 사람일 수는 있어도, 사람들이 말하는 ‘존재감’을 크게 드러내는 사람은 아니다. 속상한 일이 있어도 참고, 정말 아니다 싶지 않은 이상은 다른 사람들의 뜻에 맞추고, 업무적으로 꼭 해야 하는 일들을 반드시 해내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나는 나의 일을 통해서 사회에 기여하고 급여를 받는다. 물론 직장에서 동료들은 중요하지만, 나는 동료들보다는 내가 하는 일이 어떤 사회적 가치와 의의를 갖는지를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애쓴다.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해보자. 나의 일은 우리 사회의 시민들에게 도움을 주는 일이다. 그리고 이 일을 통해 나는 사회적인 생존 의의를 얻는다. 그런데 이 일을 하기 위해서는 당신과의 협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비록 개인적인 면에서 당신이 그다지 내 마음에 들지 않아도, 나의 일을 진행시키고 완성하기 위해서 당신과 협력한다. 당신에게 겸손한 태도를 취하고, 나의 입장에서 조금의 불편함과 다소의 불리함을 받아들이는 것은 무엇보다도 이 일을 진행해나가기 위한 것이다.
하루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행복해진다. 내게는 읽고 생각할 수 있는 많은 글들이 있으니까. 즐길 수 있는 많은 음악들이 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모든 것들을 함께 즐길 수 있는 나의 아내가 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여유로운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