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360

예술의 기능

예술의 기능 남성들보다는 여성들이, 더욱이 나이 어린 여성들보다는 나이 많은 여성들이 아주 잘 아는 사실이 있다. 세상과 삶이란, 젊은이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멋지고 그럴싸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머리 싸매고 고민할 필요가 없다. 젊은이들의 가슴을 울리는 사랑이라는 것도, 명예라는 것도, 신념과 의지라는 것도 다 세상을 많이 경험하지 못한 것에서 우러나는 법, 시간이 지나면 삶이라는 것은 생각했던 것보다는 더 단조롭고 덜 정의로운 것이며 그저 하루하루를 죽지 못해 살아간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네들은 젊은이들의 사랑을, 그 정열을 그 누구보다도 더 깊이 이해하고 사랑한다. 왜냐하면 세상의 많은 진정한 것들은 그런 환상과 열정 속에서 새롭게 탄생하기 때문이다. 그대들이 이해할 수 있겠는가..

일상 이야기 2014.08.07

문화적 전통에 편입하기

예전에 나의 아버지께서는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시면서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흔드시며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다. “너도 나이가 들면 트로트가 좋아지게 될 거다.” 하지만 아버지의 예언은 실현되지 않았다. 나는 30대인 지금도 여전히 내가 중·고등학교 시절 즐겨듣던 김현철과 이소라, 조규찬의 노래를 좋아하고, 대학 시절 자주 듣던 넬이나 클래지콰이, 이한철의 노래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민중가요나 김광석의 노래는 나보다 전 세대의 선배들이 즐겨 듣고 불렀다. 오히려 나에게는 영국 그룹 라디오헤드의 크립(Creep)이 들려줬던 우울하고 몽환적인 가락이 익숙하다. 나의 경우 오래 전부터 익숙해진 음악적 감수성을 바꾸기는 힘들었다. 물론 나는 대학 입학 후 주변에서 음악적 감수성뿐만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을..

일상 이야기 2014.07.27

호기심을 가진 일반 시민

몇 주 전부터 시작한 은혜의 잔기침이 가시질 않아, 구미에 장모님을 뵈러 갔다가 근처에 진료를 잘하는 한의원이 있다 해서 은혜와 함께 들렀다. 한의원의 이름은 ‘송정코끼리한의원’이었고, 한의사 선생님은 중간 정도의 키에 다소 마른 편이었고 인상이 밝고 선했다. 의사 선생님은 은혜의 체질이 ‘소양인’이라고 했다. 모든 일에 적극적인 은혜는 평소에 기력을 외부로 많이 발산하는 편이라 목에 습기가 없어져 기침을 한다는 진단이었다. 나는 그 설명이 제법 그럴듯하다고 생각했다. 은혜는 의도적인 운동을 거의 하지 않고 평소에 땀도 거의 흘리지 않는다. 하지만 세상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에 관심이 많고, 특히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는 온 정력을 쏟는다. 게다가 음식을 많이 먹지 않는다. 그렇기에 특별히 운동을 하지..

일상 이야기 2014.07.20

33살 아저씨

나는 문득 10대와 20대의 불안과 우울을 기억해본다. 10대였던 내게는 과학을 더 깊이 이해하고 싶다는 열정이 있었으나, 그 열정이 바르고 깔끔한 모범적인 것은 아니었다. 주변 사람들이 나의 열정을 이해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서점과 도서관에서 잘 이해되지 않는 책들을 혼자 읽으며 야인으로서의 습성을 길렀다. 뿐만 아니라 나는 끊임없이 열등감에 시달렸다. 철학과 과학의 천재들과 나를 비교하며 나의 재능 없음을 한탄했다. 그렇게 끊임없이 스스로를 못살게 굴었다. 20대의 나는 여전히 불안했다. 좋은 대학에는 입학했지만, 내가 소속되어 있는 철학과를 졸업해서 이 사회에서 무엇을 하며 먹고 살 수 있을지 잘 알 수가 없었다. 또한 나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었고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받고 싶었지만, 사랑이 ..

일상 이야기 2014.07.13

파리 여행기

나는 이번에 프랑스 파리를 다녀오기 전까지 유럽 여행을 다녀온 적이 없었다. 대학 때 친구들을 보면 방학 때 유럽이나 동남아시아, 미국 등지에 여행을 다녀오곤 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여행에 크게 관심이 없었고, 여행을 다녀올 돈도 없었다. 부모님께 빌려서 다녀올 수도 있었지만, 나는 나중에 내가 돈을 벌어서 여행을 다녀오겠다고 생각하며 돈을 빌리지 않았다. 그렇게 대학 시절이 끝났다. 군 복무 시절에는 대학원에 갈 학비를 모아야 했기 때문에 여행을 가지 못했고, 대학원생 시절에는 워낙 가난했기 때문에 생활비 버는 데 바빠 여행 갈 생각조차 못했다. 학술대회 때문에 2박 3일 동안 중국 북경에 다녀온 것이 전부였다. 신혼여행은 유럽으로 떠날 수 있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이유였다. 아내와 나는 정말 검소..

일상 이야기 2014.06.29

결혼서약서

결혼서약서 나 강형구는 손은혜와 결혼함에 앞서 아래의 세 가지를 반드시 지킬 것을 서약합니다. 첫째, 늘 은혜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키겠습니다. 기쁘거나 슬프거나, 날씨가 화창하거나 비가 내리거나, 사업이 번창하거나 힘들거나 관계없이 은혜가 가장 가까이에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둘째, 늘 은혜와 함께 행복을 나누겠습니다.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은혜와 함께 먹고, 좋은 소식이 있으면 은혜에게 들려주고, 재미있는 책이 있으면 은혜와 함께 보겠습니다. 이 세상 속에서 누릴 수 있는 많은 행복들을 은혜와 함께 누리겠습니다. 셋째, 늘 은혜를 소중한 사람으로 대하겠습니다. 가장 친하고 가까운 사람들 사이에서 의외로 마음에 오래 남는 상처들이 생기곤 합니다. 저는 세상에서 저와 가장 친하고 가까운..

일상 이야기 2014.05.25

정체성에 대한 단상

2014년 5월 31일에 나는 결혼을 한다. 올해 내 나이 서른 세 살,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드디어 결혼을 한다. 결혼을 한다는 것이 아직도 잘 실감이 나지 않지만, 그래도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나 스스로 택한 길이고, 결코 후회는 없으며, 나는 나의 결혼이 내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기적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은혜와는 내가 스물 일곱일 때에 처음 만났다. 은혜를 처음 만났을 때 은혜는 서울대학교에 교환학생으로 와 있었고, 우리는 자하연 벤치에 앉아서 음료수를 마시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그 때 우리는 같이 식사도 했다. 둘이서 서울대입구역 근처에 있는 한정식 집에서 비빔밥을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 처음 만났을 때는 은혜의 진가를 잘 몰랐다. 지금 나는 은혜가 얼마나 좋은 ..

일상 이야기 2014.05.12

자신과 멀리 떨어져서

2009년 01월 14일 수요일 맑음 자신과 멀리 떨어져서 내 삶의 목표는 해석이다. 나의 해석은 해석에 대한 해석이 아니다. 해석에 대한 해석이란, 상위의 층위에서 모든 담론들과 해석들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고 가치를 따지는 작업을 말한다. 라깡의 정신분석학, 데리다의 해체철학은 해석에 대한 해석에 속한다. 물론 이런 메타-해석들도 해석이란 의미에서 고유의 스타일을 가진다. 그러나 비평가의 입장은 창조자의 입장과 같을 수 없다. 창조자는 비평가의 작업을 무시하지는 않지만, 비평이라는 것이 창조와 본질적인 관계가 없다는 것은 공공연히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작품을 다루는 비평가의 태도와 비평을 대하는 창조자의 태도는 분명 다를 수밖에 없다. 창조하는 사람은 늘 비평을 넘어선다...

일상 이야기 2014.02.06

과학적 문화에 대한 단상

2009년 01월 08일 목요일 맑음 과학적 문화에 대한 단상 에른스트 마흐(Ernst Mach)의 책을 읽고 있다. 『역학의 과학(The Science of Mechanics)』과 대중강연집(Popular Scientific Lectures)을 보고 있는데, 과학자로서의 마흐의 내공이 느껴진다. 과학철학을 하기 위해서는 과학을 잘 이해해야 하는데, 이른바 표준적인 교과서로 과학을 습득하면 과학 그 자체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가지기가 힘들다.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과학적 지식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에 대한 역사적 관점을 가져야만 한다. 그런 역사적 관점을 가지지 못하면 지금 우리의 과학적 상(image)이 실제 그대로이거나 아니면 완전한 허구라는 왜곡된 관점에 도달하기 쉽다. “표준적인 교과서(stan..

일상 이야기 2014.02.05

물리학자와 철학자

물리학의 역사를 재구성하여 물리학의 의미를 재해석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가장 합당한 사람은 아마도 본인 스스로 물리학 이론을 통해 물리학의 역사를 새롭게 직접 쓴 사람일 것이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은 그럴만한 자격을 갖고 있는 이론물리학자다. 음력 설 명절을 맞아서 집에 온 나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 책들이 꽂혀 있는 서재 주변을 걷던 중에 예전에 제본했었던 [Albert Einstein : Philosopher-Scientist]를 나도 모르게 다시 꺼내들어, 책의 처음 부분에 있는 아인슈타인의 자전적 회고 부분을 다시 한 번 훑어보았다. 아마도 아인슈타인은 매우 예외적인 부류의 물리학자에 속할 것이기에, 아인슈타인을 물리학자의 일반적인 전형으로 간주하..

일상 이야기 2014.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