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자신과 멀리 떨어져서

강형구 2014. 2. 6. 08:08

 

20090114일 수요일 맑음

 

자신과 멀리 떨어져서

 

 

    내 삶의 목표는 해석이다. 나의 해석은 해석에 대한 해석이 아니다. 해석에 대한 해석이란, 상위의 층위에서 모든 담론들과 해석들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고 가치를 따지는 작업을 말한다. 라깡의 정신분석학, 데리다의 해체철학은 해석에 대한 해석에 속한다. 물론 이런 메타-해석들도 해석이란 의미에서 고유의 스타일을 가진다. 그러나 비평가의 입장은 창조자의 입장과 같을 수 없다. 창조자는 비평가의 작업을 무시하지는 않지만, 비평이라는 것이 창조와 본질적인 관계가 없다는 것은 공공연히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작품을 다루는 비평가의 태도와 비평을 대하는 창조자의 태도는 분명 다를 수밖에 없다. 창조하는 사람은 늘 비평을 넘어선다. 그 넘어가는 발자국은 비평이 포함할 수 없는 테두리 저 바깥에 있다. 창조에 대한 추적은 비평의 숙명이다.

 

    내가 나 자신을 해석하려는 경우가 있다고 하더라도 나는 내가 나 자신을 온전히 해석할 수 있다고 믿지도 않고, 그런 경우 오히려 내 안의 또 다른 숨은 의도가 없는지 의심해 볼 일이다. 나의 모든 언어적 표현은 그 표현의 대상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궁극적으로는 바로 나 자신의 삶에 대한 표현이다. 내가 세계를 해석하는 방식, 세계와 맞서는 나의 태도, 세계를 변형시키고 굴복시키려는 나의 의지가 곧 나의 언어다. 나는 세계에 대한 해석 장치다. 나는 나 자신만의 스타일을 가진다. 스타일은 타자와 공유할 수 있는 무엇인가가 아니다. 스타일이란 내가 세계와 맞설 때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것이다. 내 삶 자체가 하나의 스타일이라 할 수 있으며, 나는 이 스타일을 글 속에 표현하기 위해서 글쓰기 그 자체를 내 삶의 일부로 만든다. 도공이 도자기로, 화가가 그림으로 자신의 삶을 표현하듯 나는 글로 나의 삶을 표현한다.

 

    과학적 탐구에 대한 특정한 종류의 해석 방식을 만들어내는 게 내 해석 방식의 목표다. 이는 단순히 과학적 지식에 대한 비판적 작업을 의미하지만은 않는다. 과학적 지식에 대한 철학적 탐구 작업은 과학 활동이라는 작업 그 자체와 호흡, 깊이, 성격이 다르다. 그런데 과학 활동과 과학철학적 활동은 둘 다 세계 안에서 인간으로서 존재하는 데 기여하며, 또한 둘이 서로 완전히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과학철학과 과학은 세계에서 존재 영역을 사이에 두고 서로 다툰다. 과학 그 자체가 강성한 경우 과학철학은 그저 과학의 들러리에 불과하다는 폄하를 받는다. 과학철학이 왕성한 경우 과학 활동은 그저 특정한 철학적 사유를 뒷받침하는 사례에 불과하게 된다.

 

    과학철학적 사유 스타일, 과학철학적 존재 스타일을 세계에 확산시키는 것이 내 해석 활동의 목표다. 생명은 자기의 존재 의의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생명체에게 회의란 병적인 사치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생명은 그저 소멸할 뿐이며, 그런 자신의 소멸에 대해서 어떤 원한도 품지 않는다. 나 또한 마찬가지로, 내 삶의 스타일을 위해서 나는 노력할 뿐 이 세계가 나를 얼마나 받아들이고 얼마나 높이 평가하는지에 대해서는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그것을 묵묵히 받아들일 뿐이다. 물론 나는 악착같이 살아남으려고 애쓴다. 그러나 그 결과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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