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과학적 문화에 대한 단상

강형구 2014. 2. 5. 08:30

 

20090108일 목요일 맑음

 

과학적 문화에 대한 단상

 

 

   에른스트 마흐(Ernst Mach)의 책을 읽고 있다. 역학의 과학(The Science of Mechanics)과 대중강연집(Popular Scientific Lectures)을 보고 있는데, 과학자로서의 마흐의 내공이 느껴진다. 과학철학을 하기 위해서는 과학을 잘 이해해야 하는데, 이른바 표준적인 교과서로 과학을 습득하면 과학 그 자체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가지기가 힘들다.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과학적 지식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에 대한 역사적 관점을 가져야만 한다. 그런 역사적 관점을 가지지 못하면 지금 우리의 과학적 상(image)이 실제 그대로이거나 아니면 완전한 허구라는 왜곡된 관점에 도달하기 쉽다.    “표준적인 교과서(standard textbook)”라는 개념은 꽤 문제가 많다. 우리는 초등학교에서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교과서를 가지고 과학을 배운다. 현재 나와 있는 과학 교과서들을 보면, 해당 과목의 영역을 나누고 그 영역에 대해서 설명하는 식으로 내용이 구성되어 있다. 설명에 일관성과 논리성이 포함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저자가 그 과목 내용에 대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정확히 꿰뚫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어떤 것을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그것의 기원(origin), 발전(development), 의미(meaning), 적용(application)에 능통하다는 것을 뜻한다. 과학은 사실적이고 논증적인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그것의 기원, 발전, 의미를 깊이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것을 잘 적용하면 그 분야에서의 전문가로 인정받기가 쉽다.

 

   그러나 우리가 잘 적용할 수 있게 된다고 해서 그것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지식을 잘 적용할 수 있는 인재를 육성하는 것은 그 인재에 대한 아주 직접적인 사용(usage)을 염두에 둔 행위다. 물론 단기적이고 효용적인 측면에서 보았을 때 그런 실용적 목적을 위한 교육이 쉽게 효과를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까지 행해진 우리나라의 과학교육의 결과를 살펴보면, 과학이란 어렵고 외울 것이 많은 학문이라는 인식이 팽배하고 과학의 기원, 발전, 의미에 관심을 갖고 자발적으로(voluntarily) 과학을 공부하는 사람을 찾기가 힘들다. 그것은 과학 또한 인간의 문화가 힘들고 격렬하게 얻어낸 하나의 이야기 구조라는 것을, 그 이야기 구조는 우리의 인식적 능력에 의해 구성되고(constructed) 유지된다(maintained)는 것을 사람들이 잘 모르기 때문이다.

 

   효용성(efficiency)을 위한 교육이 단기간의 성과를 얻는 데 탁월하다고 하더라도, 장기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과학을 좋아하고 자발적인 관심을 갖고 공부하는 사람의 수가 늘지 않는다면 과학 문화의 수준을 전반적으로 향상시키기가 매우 힘들다. 그런데 그런 사람의 수를 늘리기 위해서는 과학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그 사람이 자신이 이해하고 있는 과학을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transfer)하고 교육(educate)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과학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 이에 대한 해답은 이미 살펴보았다. 과학의 기원, 발전, 의미, 적용 모두에 대해서 능숙한(proficient) 사람이다. 우리나라의 과학도들은 대개 과학적 지식을 적용하는 데 있어서는 세계 다른 나라의 과학도들에 비교해서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하지만 다른 세 가지 요소들에 대해서 생각하면 이야기는 크게 달라진다.

 

   과학의 기원과 발전을 제대로 알아야지만 과학의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그런데 과학의 기원과 발전은 과학사와 과학철학이 협동해서 밝혀내야 하는 것이다. 이른바 서양과학이라는 것은 동양에서 자생적으로 형성된 학문이 아니다. 그 학문에서 사용하고 있는 개념, 논리, 방법은 우리의 문화와 본질적으로 이질적인 것이었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과학적 개념과 방법은 근대화 이후에 서구와 일본 혹은 중국으로부터 급하게 받아들인 것이다. 과학적 개념, 논리, 방법에 대해 우리 스스로가 심도 있는 논의를 한 기간은 50년도 채 되지 않는다. 과학의 역사를 꼼꼼하게 따져야 하고, 과학적 개념에 대한 철학적 분석을 통해 그 개념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이렇게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통해 과학을 제대로 이해한 학자들이 과학을 교육해야 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과학사와 과학철학에 대한 관심과 호응이 다소 높아진 것이 사실이지만, 아직까지 과학계가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바라보는 시선이 따뜻한 것은 아니다. 과학철학은 과학이 실질적으로 행한 작업에 사후적으로 의미를 덧붙이는 것일 뿐이며, 그런 의미에서 과학철학이 실질적인 과학적 활동이나 교육에 유의미하게 적용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과학자들이 많다. 또한 과학사가 과학교육에 있어 유용한 참고자료를 제공할 수는 있겠으나, 과학사 그 자체가 과학적 교육 내용의 핵심적인 부분을 변경하거나 수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과학자들은 드물다. 이는 우리가 과학이라는 학문 분야의 개념적이고 이론적 부분을 주도하지 못하는 상황 때문이기도 하다. 외국의 최신 이론을 이해하고, 수용하고,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바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우리가 과학이라는 학문 영역에 있어 외국을 뒤따라 갈 수만은 없다. 체력과 끈기를 기르기 위해서는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오랜 시간의 노력이 필요한 것처럼, 우리가 과학이라는 인식적 영역에 있어서 높은 수준에 이르기 위해서는 과학이라는 문화 전반에 역사와 철학의 개념을 도입해야 한다. 과학사를 탐구하는 작업, 과학적 개념과 논리를 철학적으로 분석하는 작업은 과학적 문화(scientific culture)라는 좀 더 큰 범주에 소화되어야 하고 과학적 활동 그 자체에 영향을 미쳐야 한다. 과학자들은 스스럼없이 자신들이 사용하는 개념의 의미에 대해 심도 있게 논의할 수 있어야 하고, 과학사가나 과학철학자들은 과학자들이 충분히 납득할 수 있고 유용한 참고를 얻을 수 있을 정도로 과학과 연계될 수 있는 실질적인 논의를 해야 한다.

 

   푸앵카레(Henri Poincaré)나 마흐(Ernst Mach)는 철학적 과학자다. 그 둘을 철학자로 이름붙일 수 있겠지만, 그들이 자신의 철학적 사상을 끌어낸 원천은 과학이었고 그들은 과학의 세부 분야에서 실질적인 업적(푸앵카레는 수학과 물리학에서, 마흐는 물리학에서)을 남겼다. 한 문화의 과학 문화의 수준을 측정하는 가장 유용한 기준은 그 문화가 제대로 된 철학적 과학자를 탄생시켰느냐의 여부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철학적 과학자라 이름붙일 만한 뛰어난 학자들이 있지만, 여전히 그 역사적이고 철학적인 깊이에 있어 세계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인물이 나오지는 않았다. 많은 철학적 과학자들이 각자 자신이 과학을 바라보는 관점을 가지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고, 일반인들은 자신들 각자가 좋아하는 과학자가 각기 다를 수 있어야 하고, 전문가와 비전문가들의 많은 토론과 논쟁의 문화 속에서 진정 위대한 과학자가 탄생하는 것이다.

 

   과학이라는 이야기에 역사와 깊이, 흥미로움과 다채로움을 입혀야 한다. 마흐의 책 역학의 과학은 마흐가 (다분히 경험주의적인) 진화론적 심리학의 관점에서, 그의 시대까지 역학이 발전해 온 역사와 역학적 개념들을 비판적으로 분석(critical analyzation)하는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 마흐가 제대로 역학을 이해하고 있음을 잘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마흐와는 다른 관점에서 역학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완전무결한 학문이란 있을 수 없고, 스스로를 완전무결하다고 주장하는 학문은 그러한 주장 그 하나만으로도 불완전하고 미성숙하며 자기중심적인 학문이다. 자기 스스로를 비판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으려면 단순한 논리가 아닌 역사와 맥락을, 논리적 타당성이 아닌 맥락적 타당성을 서술에 도입해야 한다. 마흐의 책을 읽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언제 마흐나 푸앵카레 정도의 철학적 물리학자가 탄생할지, 그런 과학자들이 등장하기 위해서 우리의 과학 문화가 얼마나 질적 성장을 이루어야 할지, 그런 질적 성장을 위해서 과학뿐만 아니라 과학사와 과학철학이 얼마나 노력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본다.

 

 

 

 

'일상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체성에 대한 단상  (0) 2014.05.12
자신과 멀리 떨어져서  (0) 2014.02.06
물리학자와 철학자  (0) 2014.02.01
좀 늦은 2014년 계획  (0) 2014.01.26
설득하기  (0) 2014.0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