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물리학자와 철학자

강형구 2014. 2. 1. 21:03

 

   물리학의 역사를 재구성하여 물리학의 의미를 재해석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가장 합당한 사람은 아마도 본인 스스로 물리학 이론을 통해 물리학의 역사를 새롭게 직접 쓴 사람일 것이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은 그럴만한 자격을 갖고 있는 이론물리학자다. 음력 설 명절을 맞아서 집에 온 나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 책들이 꽂혀 있는 서재 주변을 걷던 중에 예전에 제본했었던 [Albert Einstein : Philosopher-Scientist]를 나도 모르게 다시 꺼내들어, 책의 처음 부분에 있는 아인슈타인의 자전적 회고 부분을 다시 한 번 훑어보았다.

  

   아마도 아인슈타인은 매우 예외적인 부류의 물리학자에 속할 것이기에, 아인슈타인을 물리학자의 일반적인 전형으로 간주하는 것은 무리가 있을 것이다. 아인슈타인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그가 물리학의 역사를 전반적으로 꿰뚫고 있으며 그가 물리학의 어떤 측면을 특별히 주목했는지 스스로 분명히 의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인슈타인은 물리학의 역사가이자 철학자로서 당시의 물리학에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본인이 어떤 개념들에 착안했었는지를 밝히고 있다. 나는 아마도 역사상 위대한 이론물리학자들은 늘 어느 정도는 물리학의 역사가이자 철학자였을 것이라고 추측해본다.

 

    그러나 물리학자는 온전한 역사가이자 철학자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물리학자의 시선은 늘 물리학의 미래를 향해 있지, 이미 이룩된 물리학의 의미를 정밀하게 분석하는 것이 자신의 주된 목표는 아니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은 입자의 역학에서 장의 역학으로 물리학의 기초가 이동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여전히 원자 이하의 세계에 대한 이론적인 설명 역시 장의 역학을 통해 구축될 수 있으리라고 희망한다. 특정한 세계상에 대한 형이상학적 믿음, 이 믿음을 근거로 이론물리학자는 자신의 이론적 작업을 지속해나갈 수 있다.

  

   아인슈타인은 감각 경험을 뛰어넘는 추상적인 성격의 수학적 추론을 통해 더 일반적인 장 이론을 추구하고자 했다. 하지만 전문적인 철학자이자 분석자로서의 라이헨바흐(Hans Reichenbach, 1891~1953)는 물리학의 다른 측면을 주목했다. 라이헨바흐에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경험과 상호작용하는 물리학 이론에는 우리가 이전까지는 알지 못했던 임의적이고 규약적인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 분명한 사례였다. 고전물리학에서 은연중에 ‘세계 속의 사실’이라고 간주한 동시성의 개념, 합동의 개념 등은 사실 경험적으로 입증될 수 있는 사실이 아니라 임의적인 규약이었고, 이 규약을 좀 더 경험에 적합하게 설정함으로써 이전과는 판이하게 다른 종류의 물리학을 도출할 수 있었다고 라이헨바흐는 보았다.

  

   전문적인 철학자로서 라이헨바흐는 물리학에서의 ‘규약’들이 어떻게 경험과 상호작용하는지, ‘규약’의 설정과는 무관하게 물리적 세계에서 적용되는 가장 일반적인 물리학 원리들은 무엇인지, 물리학의 언어에 적용되는 논리학의 특성은 무엇인지 등에 관한 분석 작업을 했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 그가 얻은 결론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고전물리학에서 상대성이론으로의 이행은 비가역적이다. 동시성의 개념, 합동의 개념을 규약으로 간주할 경우, 이전까지의 절대적 동시성의 개념과 합동 개념은 유지될 수 없다.

  

   상대적인 가속 운동하는 계를 포함할 경우, 그 계의 물리적 기하학은 오직 빛만으로는 결정될 수 없으며 물질 입자를 이용하여 실제로 측정을 해야 한다. 이러한 일반적인 계에서도 ‘인과성’의 원리는 유지되나, 양자역학에서는 ‘인과적 변칙성’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이를 피하는 방법으로 2가 논리가 아닌 3가 논리를 사용할 수 있지만, 양자역학에서는 더 이상 고전물리학이나 상대성이론에서처럼 물리학을 ‘완전하게’(측정하지 않은 물리적 개체에도 특정한 물리량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

  

   이는 미래의 물리학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기본적인 지침을 제공할 수 있다. 물리학을 수립하는 데 있어서 경험적 사실과 규약적 정의를 구분하라. 그리고 최대한 이론을 단순화 시킬 수 있는 규약적 정의가 어떤 것일 수 있는지를 고민하라. 또한 물리학 이론을 수립할 경우, 해당 물리학에 적용되는 논리학을 2가 논리가 아니라 3가 논리 혹은 그 이상의 진리치를 가진 논리로 수립하는 것을 고려하라. 과연 물리학자인 아인슈타인의 제안이 건설적일까 아니면 철학자인 라이헨바흐의 제안이 건설적일까? 나로서는 아직까지 이 물음에 대해서 확실하게 답변할 수 없다.

 

 

'일상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신과 멀리 떨어져서  (0) 2014.02.06
과학적 문화에 대한 단상  (0) 2014.02.05
좀 늦은 2014년 계획  (0) 2014.01.26
설득하기  (0) 2014.01.19
당번 근무를 하며  (0) 2013.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