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33살 아저씨

강형구 2014. 7. 13. 21:44

   나는 문득 10대와 20대의 불안과 우울을 기억해본다. 10대였던 내게는 과학을 더 깊이 이해하고 싶다는 열정이 있었으나, 그 열정이 바르고 깔끔한 모범적인 것은 아니었다. 주변 사람들이 나의 열정을 이해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서점과 도서관에서 잘 이해되지 않는 책들을 혼자 읽으며 야인으로서의 습성을 길렀다. 뿐만 아니라 나는 끊임없이 열등감에 시달렸다. 철학과 과학의 천재들과 나를 비교하며 나의 재능 없음을 한탄했다. 그렇게 끊임없이 스스로를 못살게 굴었다.

 

   20대의 나는 여전히 불안했다. 좋은 대학에는 입학했지만, 내가 소속되어 있는 철학과를 졸업해서 이 사회에서 무엇을 하며 먹고 살 수 있을지 잘 알 수가 없었다. 또한 나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었고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받고 싶었지만, 사랑이 무엇인지 어떻게 사랑을 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너무나 미숙하고 서툴렀다. 그런 미숙함과 서투름 때문에 상처를 많이 받았고,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다. 20대가 끝날 무렵에도 나는 과연 내가 무엇을 하면서 먹고 살지, 내가 과연 결혼을 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이제 나는 33살의 아저씨가 되었다. 우리나라의 대학생들과 초, , 고등학생들을 지원하는 공적인 행정 업무를 함으로써 매달 월급을 받고 있다. 비록 대기업에 다니는 직장인들만큼 많은 돈을 벌지는 못하지만, 나는 내가 하는 일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다. 직장을 다니는 틈틈이 대학원 수업도 들어, 이제 한 학기나 두 학기만 더 수강하면 박사과정을 수료하게 된다. 또한 올 해 531일에 드디어 결혼을 한 나는 대한민국의 공식적인 아저씨가 되었다. 결혼하기 전까지는 한 번도 반지를 낀 적이 없었지만, 지금 이 순간 내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는 은혜와의 사랑을 상징하는 소박한 반지가 끼워져 있다.

 

   나는 뛰어난 학자가 되지 못했고, 눈부시게 활약하는 직장인도 아니다. 그러나 조금씩 내게도 안정감이 찾아오고 있다. 내게는 아내인 은혜가 있고, 직장에는 아직 내가 할 일이 있으며, 내 곁에는 틈틈이 읽을 수 있는 책들이 있고 들을 수 있는 강의들이 있기 때문이다. 직장을 찾기 위해 고민할 필요가 없고, 짝을 찾기 위해 고민하고 방황할 필요도 없다. 관심 분야와 연구 주제도 거의 정해져 있어, 관련 분야를 꾸준히 공부하고 글을 쓰면 된다. 10대와 20대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안정감이다.

 

   때로는 이 낯선 안정감 때문에 불안하기도 하다. 이 안정감이 어느 순간 내가 예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사라져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미래에 대한 불안함 때문에 힘겨워하는 우리 사회의 10, 20대 젊은이들을 생각하면 조금 미안하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나 역시 지금껏 살아오며 순간순간을 정말 열심히 힘겹게 버텨왔지만, 나 못지않게 힘겨워 할 젊은이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내게도 이런 시절이 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직장을 갖고, 결혼을 하고, 별다른 고민 없이 공부를 하며 살아가고 있다. 직장 생활이 마냥 쉽지만은 않지만, 아내와 보내는 시간과 책 읽는 시간이 직장 생활의 힘겨움을 치유해준다. 그래서 매일 매일이 제법 살 만하다. 내게 주어진 이 선물과도 같은 시간을 아껴서 소중히 써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좀 더 행복하게, 가치 있게 살아가고 싶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할 일을 간단하게 정리해본다. 8월까지 라이헨바흐가 쓴 상대성이론과 선험적 지식초벌 번역을 수정할 것이다. 일찍 퇴근하는 날마다 집 근처 카페에서 수정 작업을 할 생각이다. 또한, 매번 실패하기는 하지만 아침에 일어나서 간단하게 운동을 할 계획이다. 무리하지 않고 체력을 유지할 정도의 운동만 적당히 할 생각이다. 그리고 내년에 중고차를 한 대 사면 문제 없이 몰고 다닐 수 있도록 운전 연습을 할 계획이다. 이제 은혜가 제법 운전을 잘하니까 은혜에게 배우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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