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파리 여행기

강형구 2014. 6. 29. 21:52

 

   나는 이번에 프랑스 파리를 다녀오기 전까지 유럽 여행을 다녀온 적이 없었다. 대학 때 친구들을 보면 방학 때 유럽이나 동남아시아, 미국 등지에 여행을 다녀오곤 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여행에 크게 관심이 없었고, 여행을 다녀올 돈도 없었다. 부모님께 빌려서 다녀올 수도 있었지만, 나는 나중에 내가 돈을 벌어서 여행을 다녀오겠다고 생각하며 돈을 빌리지 않았다. 그렇게 대학 시절이 끝났다. 군 복무 시절에는 대학원에 갈 학비를 모아야 했기 때문에 여행을 가지 못했고, 대학원생 시절에는 워낙 가난했기 때문에 생활비 버는 데 바빠 여행 갈 생각조차 못했다. 학술대회 때문에 2박 3일 동안 중국 북경에 다녀온 것이 전부였다.

 

   신혼여행은 유럽으로 떠날 수 있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이유였다. 아내와 나는 정말 검소하게 결혼을 준비했지만, 결혼식장을 예약하는 것과 신혼여행을 가는 데는 비용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우리는 연애 초반기에 부산에 있는 온천장 부근에서 자주 만났기 때문에, 조금 비싸긴 해도 우리의 추억이 남아 있는 온천장으로 예식장을 잡았다. 신혼여행도 아내가 그토록 가고 싶어 하던 프랑스로 가기로 결정했다. 과학과 예술에 무척 관심을 갖고 있는 아내는 프랑스 파리에 있는 박물관과 과학관에 가고 싶어 했다. 오죽했으면 세계지도에 있는 프랑스에 형광펜으로 색칠을 해두었겠는가. 사실 나는 프랑스보다는 독일에 가고 싶었지만, 순순히 아내의 뜻을 따랐다.

 

   항공권은 인터파크에서 예약했다. 우리가 선택한 항공사는 핀에어(Finnair)였다. 결혼식 다음날 아침 일찍 공항철도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갔다. 오전 10시쯤 인천공항을 출발해서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까지 가는 데 대략 9시간 반 정도 걸렸다. 비행시간이 길었지만 영화도 보고 책도 읽고 하니까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헬싱키 공항에서 두 시간쯤 기다렸다가 파리행 비행기를 탔다. 샤를 드골 공항에 도착해서 에어프랑스 리무진을 타고 리용 역에서 내렸고, 지하철을 타고 생폴 역으로 갔다.

 

   생폴 역에서 내려 부킹닷컴(booking.com)에서 출력한 숙소 지도를 들고 찾아갔더니 도무지 숙소가 어디인지 알 수 없었다. 우리는 호텔이 아니라 파리 시내에 있는 일반 원룸을 10일 동안 대여했는데, 원룸 대여는 처음이라 어떻게 숙소 열쇠를 받아서 들어가는지 잘 몰랐다. 아내와 둘이서 끙끙대다 근처의 한 레스토랑에서 근무하는 한 젊은 남자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 남자는 매우 친절하게 직접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서 숙소 열쇠가 있는 장소를 알려주었고, 우리는 택시를 타고 그곳 금고에 있는 열쇠를 찾아 실제로 우리가 묵을 장소로 이동했다. 녹초가 된 우리는 숙소에 들어가자마자 샤워를 하고 곯아 떨어졌다.

 

   숙소는 매우 깔끔하고 편리했다. 12평 남짓한 원룸에는 전자렌지, 가스렌지, 냉장고 등 취사도구가 모두 구비되어 있었고, 욕실에는 작은 세탁기와 욕조도 있었다. 또한 파리에 온 것을 축하하는 화이트 와인도 한 병 있었다. 숙소에서 걸어서 5분도 안 되는 거리에 디아(Dia)라는 식료품 가게도 있었다. 우리는 거기서 과일, 야채, 빵, 고기 등등 필요한 모든 것들을 구할 수 있었다. 아내와 나는, 비록 처음 찾아갈 때는 몹시 애를 먹었지만, 정말 좋은 숙소를 예약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파리는 서울보다 규모가 작고 지하철 노선이 거미줄처럼 깔려 있어서, 지하철만 잘 타도 가고 싶은 어디로든 갈 수가 있다. 파리 중심가에 숙소를 얻은 우리는 걸어서도 웬만한 파리 명소를 돌아다닐 수 있었다. 첫 날에 우리는 파리 시청을 지나 중세 유적지인 생트 샤펠을 관람하고, 노트르담 대성당을 방문했다. 노트르담 성당의 웅장함과 성스러움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후 소르본 대학을 구경하고, 파리 시내의 대형 서점에서 책도 구경했다. 소르본 대학 앞에는 룩상부르그 공원이 있는데, 도심에 펼쳐진 오아시스 같은 곳이었다. 공원에서는 기악 협주 공연도 하고 있었다. 파리는 실로 역사와 자연이 어우러진 멋진 도시였다.

 

   둘째 날에는 프랑스의 과학박물관인 라빌레뜨를 방문했다. 데카르트, 푸리에, 라플라스, 쿠르노 등과 같은 쟁쟁한 과학자들을 배출한 나라답게 라빌레뜨는 규모도 매우 컸고 전시 기획이 매우 잘 되어 있었다. 또한 인상적이었던 것은 라빌레뜨 지하에 있는 과학도서관이었다. 라빌레뜨는 한국의 과학관과는 달리 전시를 위한 공간이라기보다는 시민들을 위한 과학 문화 공간이었다. 과학도서관을 이용하고 싶은 시민들은 굳이 입장권을 구매하지 않고서도 과학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었다. 과학관에서 근무하고 있는 아내는 신이 나서 열심히 사진을 찍고 기록을 남겼다. 나도 덩달아서 흥미롭게 과학관을 구경했다.

 

   셋째 날과 넷째 날에는 루브르 박물관, 오랑주리 미술관을 관람했다. 루브르 박물관에는 고대, 중세, 근대의 무수한 유적들과 예술 작품들이 집적되어 있다. 한 작품씩 천천히 감상하다 보면 시간이 훌쩍훌쩍 가버린다. 루브르 박물관 근처에는 맛집이 많기로 유명한데, 특히 ‘베로도다’라는 프랑스 전통 비스트로에 가서 정말 멋진 점심을 먹었던 게 아직도 기억난다. 마침 우리가 파리에 갔을 때는 흐린 날이 없이 날씨가 화창했다. 여름에 파리는 밤 10시가 지나도 해가 지지 않는다. 우리는 걸어서 루브르 박물관까지 갔다가, 좀 지친다 싶으면 밖으로 나와 센강 근처를 산책했다. 저녁이 되어도 부담스럽지 않게 시내를 거닐 수 있었다.

 

   우리는 파리의 상징인 에펠탑에도 방문했다. 오전 9시가 좀 넘은 시각에 방문했는데도 관광객들의 줄이 매우 길었다. 아내와 나는 에스컬레이터를 타지 않고 직접 걸어 올라가는 줄에 서서 그나마 기다리는 시간을 줄일 수 있었다. 에펠탑 중앙에서 바라본 파리 시내는 무척 아름다웠다. 로댕 박물관도 박물관 건물보다는 정원이 더 아름답고 아늑하게 꾸며져 있었다. 오르세 미술관은 현대 회화 작품들 위주의 전시를 하고 있었고, 건물도 매우 현대적인 느낌이 들었다. 이렇듯 아내와 나는 문화 유적지 중심으로, 특히 미술관과 박물관 중심으로 파리 곳곳을 돌아다녔다. 우리는 많은 곳을 둘러보아야 한다는 부담 없이, 돌아다니다 조금 피곤하다 싶으면 다시 숙소로 돌아와 느긋하게 쉬었다.

 

   여행 막바지가 되자 우리는 가족들에게 줄 선물을 사기 위해 라파예트 백화점을 방문했다. 백화점은 여성관과 남성관으로 구분되어 있었고, 아내는 프랑스에 온 기념으로 근사한 신발을 하나 샀다. 가족들 선물을 하나씩 챙기다보니 우리가 파리에서 쓴 생활비보다 배는 더 많은 돈을 썼다. 그래도 괜찮았다. 선물을 사고 난 다음에는 반드시 백화점 지하에 가서 세금을 환급받을 수 있는 서류를 발급받아야 한다. 우리는 깜박하고 여권을 들고 가지 않았기에, 아내가 선물을 사는 동안 나 혼자 숙소에 가서 여권을 챙겨왔던 기억이 난다. 여행 동안 유효한 유일한 신분증이 여권이기 때문에 여권을 늘 잘 챙기고 있어야 한다.

 

   파리에 있는 동안 아내와 함께 한식당을 여러 번 방문했다. ‘메종 드 마레’라는 한식당이었는데, 특히 김치찌개 맛이 일품이었다. 나는 매일 스테이크를 먹어도 상관없었지만, 워낙 한국 음식에 익숙한 아내는 기름지고 느끼한 프랑스 음식을 견디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파리에서 아내와 나는 화이트 와인을 자주 마셨다. 하루 일정을 마치고 돌아와 씻은 다음 편한 마음으로 와인 한 잔을 마시면 전신이 금방 노곤해졌다. 그렇게 편안하고 느긋한 아내와의 신혼여행은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었다.

 

   한국에 돌아오기 위해 짐을 챙기던 날에는 약간 서글펐다. 환한 햇살 속에 아내와 함께 센강을 걷던 시간이, 라빌레뜨와 루브르에서 멋진 전시를 보고 감탄하던 시간이, 생트샤펠과 노트르담 성당에서 보았던 성스러운 스테인드글라스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괜찮다. 언젠가 아내와 함께 꼭 파리로 돌아가 그 아름다운 거리를 다시 거닐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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