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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근현대철학 입문(01)

1. 머리말 나는 나의 책상이 단단하다고 경험한다. 하지만 물리학에 따르면 책상은 대부분 빈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의 경험과 물리학이 동시에 옳을 수 있는가? 세계에 대한 과학적 관점이 인간의 경험과 양립가능한가? 좀 더 어려운 질문을 던져보자. 세계에 대한 과학적 관점이 인간의 자유의지, 도덕적 책임, 종교와 양립가능한가? 물리적 세계에서 마음은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가? 실재의 궁극적인 본성은 무엇이며, 실재에 대한 인간 지식의 한계는 무엇인가? 이 강의에서 우리는 17세기부터 시작해서 20세기까지 이어지는, 실재와 지식에 대한 서양근현대철학의 사상(형이상학과 인식론)을 훑어볼 것이다. 이 시기의 철학 사조는 경험주의, 합리주의, 관념주의, 언어철학, 논리실증주의, 실존주의, 현상학, 포스트모더니..

평균의 위안

평균의 위안 사람이 모든 일을 잘 할 필요는 없다. 꼭 필요한 일들은 살아가면서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 할 수 있으면 된다. 경쟁심에 사로잡혀 잘 할 필요가 없는 일을 잘 하려고 하다보면 불필요한 시간과 감정을 낭비하게 될 지도 모른다. 이러한 불필요한 소모를 하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믿는 긍정적인 마음 자세가 필요하다. 내가 잘 못하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고, 다른 사람이 도움을 필요로 할 때 내가 도울 수 있다는 마음자세다. 아주 우연한 이유로 나는 초등학교 때 체육을 잘했고 공부도 잘했다. 나는 상대적으로 다른 친구들에 비해서 성장 속도가 빨랐기 때문에 키가 큰 편이었고, 큰 덩치 덕분에 달리기나 피구 같은 운동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신체적 성장 상태가 자연스럽게 공부하는..

일상 이야기 2014.08.24

과학철학에서 자연철학으로

과학철학에서 자연철학으로 사회적 존재인 인간은 생존을 위한 임무와 노동을 피할 수 없다. 내가 학교라는 조직에 속해 있을 때 나는 학교에서 내게 요구하는 임무인 공부를 수행했다. 군대에서 나는 통신소대장과 본부중대장이라는 내게 주어진 직책에 맞게 업무를 수행했다. 대학원에서는 수업에 참여하고 보고서를 제출했고 학위논문을 제출했다. 취업을 한 이후에는 내게 주어진 업무인 ‘한국 대학생 지식멘토링’ 사업을 지금까지 수행하고 있다. 나는 내가 나의 임무와 노동을 통해 사회적인 삶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 나는 노동자다. 나는 대학원 박사과정 1학기를 마치고 휴학하여 취직을 했다. 위기에 빠진 나의 가정을 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내 모든 것을 걸고 필사적으로 취직 준비를 했다. 취직을..

일상 이야기 2014.08.23

2014년 여름휴가

2014년 5월 31일에 나는 은혜와 결혼을 했다. 혼인신고는 신혼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6월 11일에 했다. 결혼을 하고 처음 맞는 여름휴가였다. 처음에는 우리 둘이서 여름휴가 일정을 맞추기 어려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은혜의 선임이 나의 휴가와 같은 시기에 휴가를 쓰는 바람에 은혜는 휴가를 쓰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출장 때문에 원래 계획했던 휴가를 그 다음 주로 미루게 되고, 은혜 역시 그 다음 주에 2일을 쉴 수 있게 되면서 서로의 일정이 들어맞았다. 나는 8월 1일 금요일에 경상남도로 출장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동대구역에서 은혜를 만나 서울로 올라왔다. 우리의 2014년 여름휴가는 8월 2일 토요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뒤늦게 서로의 휴가 일정이 들어맞았기 때문에 우리..

일상 이야기 2014.08.10

예술의 기능

예술의 기능 남성들보다는 여성들이, 더욱이 나이 어린 여성들보다는 나이 많은 여성들이 아주 잘 아는 사실이 있다. 세상과 삶이란, 젊은이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멋지고 그럴싸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머리 싸매고 고민할 필요가 없다. 젊은이들의 가슴을 울리는 사랑이라는 것도, 명예라는 것도, 신념과 의지라는 것도 다 세상을 많이 경험하지 못한 것에서 우러나는 법, 시간이 지나면 삶이라는 것은 생각했던 것보다는 더 단조롭고 덜 정의로운 것이며 그저 하루하루를 죽지 못해 살아간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네들은 젊은이들의 사랑을, 그 정열을 그 누구보다도 더 깊이 이해하고 사랑한다. 왜냐하면 세상의 많은 진정한 것들은 그런 환상과 열정 속에서 새롭게 탄생하기 때문이다. 그대들이 이해할 수 있겠는가..

일상 이야기 2014.08.07

문화적 전통에 편입하기

예전에 나의 아버지께서는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시면서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흔드시며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다. “너도 나이가 들면 트로트가 좋아지게 될 거다.” 하지만 아버지의 예언은 실현되지 않았다. 나는 30대인 지금도 여전히 내가 중·고등학교 시절 즐겨듣던 김현철과 이소라, 조규찬의 노래를 좋아하고, 대학 시절 자주 듣던 넬이나 클래지콰이, 이한철의 노래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민중가요나 김광석의 노래는 나보다 전 세대의 선배들이 즐겨 듣고 불렀다. 오히려 나에게는 영국 그룹 라디오헤드의 크립(Creep)이 들려줬던 우울하고 몽환적인 가락이 익숙하다. 나의 경우 오래 전부터 익숙해진 음악적 감수성을 바꾸기는 힘들었다. 물론 나는 대학 입학 후 주변에서 음악적 감수성뿐만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을..

일상 이야기 2014.07.27

호기심을 가진 일반 시민

몇 주 전부터 시작한 은혜의 잔기침이 가시질 않아, 구미에 장모님을 뵈러 갔다가 근처에 진료를 잘하는 한의원이 있다 해서 은혜와 함께 들렀다. 한의원의 이름은 ‘송정코끼리한의원’이었고, 한의사 선생님은 중간 정도의 키에 다소 마른 편이었고 인상이 밝고 선했다. 의사 선생님은 은혜의 체질이 ‘소양인’이라고 했다. 모든 일에 적극적인 은혜는 평소에 기력을 외부로 많이 발산하는 편이라 목에 습기가 없어져 기침을 한다는 진단이었다. 나는 그 설명이 제법 그럴듯하다고 생각했다. 은혜는 의도적인 운동을 거의 하지 않고 평소에 땀도 거의 흘리지 않는다. 하지만 세상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에 관심이 많고, 특히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는 온 정력을 쏟는다. 게다가 음식을 많이 먹지 않는다. 그렇기에 특별히 운동을 하지..

일상 이야기 2014.07.20

33살 아저씨

나는 문득 10대와 20대의 불안과 우울을 기억해본다. 10대였던 내게는 과학을 더 깊이 이해하고 싶다는 열정이 있었으나, 그 열정이 바르고 깔끔한 모범적인 것은 아니었다. 주변 사람들이 나의 열정을 이해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서점과 도서관에서 잘 이해되지 않는 책들을 혼자 읽으며 야인으로서의 습성을 길렀다. 뿐만 아니라 나는 끊임없이 열등감에 시달렸다. 철학과 과학의 천재들과 나를 비교하며 나의 재능 없음을 한탄했다. 그렇게 끊임없이 스스로를 못살게 굴었다. 20대의 나는 여전히 불안했다. 좋은 대학에는 입학했지만, 내가 소속되어 있는 철학과를 졸업해서 이 사회에서 무엇을 하며 먹고 살 수 있을지 잘 알 수가 없었다. 또한 나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었고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받고 싶었지만, 사랑이 ..

일상 이야기 2014.07.13

파리 여행기

나는 이번에 프랑스 파리를 다녀오기 전까지 유럽 여행을 다녀온 적이 없었다. 대학 때 친구들을 보면 방학 때 유럽이나 동남아시아, 미국 등지에 여행을 다녀오곤 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여행에 크게 관심이 없었고, 여행을 다녀올 돈도 없었다. 부모님께 빌려서 다녀올 수도 있었지만, 나는 나중에 내가 돈을 벌어서 여행을 다녀오겠다고 생각하며 돈을 빌리지 않았다. 그렇게 대학 시절이 끝났다. 군 복무 시절에는 대학원에 갈 학비를 모아야 했기 때문에 여행을 가지 못했고, 대학원생 시절에는 워낙 가난했기 때문에 생활비 버는 데 바빠 여행 갈 생각조차 못했다. 학술대회 때문에 2박 3일 동안 중국 북경에 다녀온 것이 전부였다. 신혼여행은 유럽으로 떠날 수 있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이유였다. 아내와 나는 정말 검소..

일상 이야기 2014.06.29

결혼서약서

결혼서약서 나 강형구는 손은혜와 결혼함에 앞서 아래의 세 가지를 반드시 지킬 것을 서약합니다. 첫째, 늘 은혜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키겠습니다. 기쁘거나 슬프거나, 날씨가 화창하거나 비가 내리거나, 사업이 번창하거나 힘들거나 관계없이 은혜가 가장 가까이에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둘째, 늘 은혜와 함께 행복을 나누겠습니다.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은혜와 함께 먹고, 좋은 소식이 있으면 은혜에게 들려주고, 재미있는 책이 있으면 은혜와 함께 보겠습니다. 이 세상 속에서 누릴 수 있는 많은 행복들을 은혜와 함께 누리겠습니다. 셋째, 늘 은혜를 소중한 사람으로 대하겠습니다. 가장 친하고 가까운 사람들 사이에서 의외로 마음에 오래 남는 상처들이 생기곤 합니다. 저는 세상에서 저와 가장 친하고 가까운..

일상 이야기 2014.0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