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연구 이야기

배리 데인튼, [시간과 공간] 요약 정리 03: 블록 우주

강형구 2016. 3. 18. 07:12

 

3: 블록 우주

(The Block Universe)

 

3.1. 흐름 없는 시간

    맥태거트의 다음과 같은 통찰에 현대의 철학자들은 동의한다. , 우리의 세계는 블록과 같은 4차원 앙상블(집합체)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현대의 B-이론가들이 맥태거트와 다른 점은, 맥태거트는 시간의 존재를 부정한 반면, 이들은 시간이 흐른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도 시간의 존재를 부정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에 따르면 시간은 흐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저자는 3, 4장을 통해 위와 같은 시간에 대한 블록 관점을 검토해보고자 한다.

     

   B-이론은 여러 측면에서 이상하고 반직관적이다. 따라서 B-이론의 지지자들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임무에 직면한다. 첫째, 시간에 대한 일상적 믿음이 잘못되었음을 보이고 이에 대한 근거를 제시한다(소극적negative 임무). 둘째, 시간과 변화에 대한 명료한 설명을 제시하고, 이 설명이 참일 수 있다는 것을 보인다(적극적positive 임무).

 

3.2. 흐름과 경험

    시간에 대한 자연적(일상적natural) 관점이란 다음과 같다. 오직 현재만이 실재한다. 미래는 존재하지 않고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과거는 고정되어 있지만 실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자연적 관점B-이론과 양립불가능한 것일까? B-이론가들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경험의 현존

    사물이 과거, 현재 또는 미래에 있는 것은 그것이 어떻게 보이는지에 대해서 어떤 차이도 불러일으키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사물을 지각할 때 그 지각 대상이 현존한다고는 할 수 없을지라도 우리가 갖는 감각 경험은 현존한다는 것을 한정(confinement) 원리라고 부르기로 하자. 하지만 이 원리로부터 과거나 미래가 실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이 도출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왜 우리는 현재의 경험만이 진정으로 느껴진다고 느끼는 것일까? 왜 경험은 오직 현재에만 발생하는 것처럼 느끼는 것일까?

  

   다음과 같은 가상적인 상황을 생각해보자. 실제로 공간에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이들 각각은 충분히 멀리 떨어져 있고, 각각의 사람들 위에는 아주 좁은 범위만 비추는 형광등이 있다. 따라서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외롭고 혼자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사람들이 혼자라고 느끼는 것은 사람들 위에 설치되어 있는 형광등의 묘한 특성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직접적인 의식의 시간적 구간이 짧기 때문에 우리는 시간에서 현재만이 현존한다고 느끼게 되는 것일 수 있다.

 

흐름을 경험하기

    그렇다면 B-이론가의 입장에서 시간이 흐른다고 느끼는 일상적인 경험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는 우리의 기억이 축적되는 방식과 관련되어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예를 들어 우리는 1025분에 1015분에서의 기억을 갖고 있으며, 지각과 기억을 결합하기 때문에, 마치 시간이 흐른다고 느끼는 것이다. 예를 들어 Korsakoff 신드롬을 앓는 경우, 수 분 이내에 벌어진 모든 일들을 망각한다. 따라서 이 경우에는 시간이 흐른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기억의 특성은 우리가 미래를 비확정적이고 열려 있는 것으로 느끼는 것 역시 설명해준다. 과거 사건들에 대한 기억은 상세하지만, 미래에 대해서 우리는 그와 같은 상세한 기억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B-이론가들 역시 경험의 현존에 대해서 설명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3.3. B-세계에서의 A-참됨

    과거, 현재, 미래 사이에 객관적 차이가 있다고 보는 근거가 있을까? 우선, 세계에 대한 어떤 주장을 참인 것으로 만드는 것을 참됨 생성자(truth-maker)”라고 하자. “명량해전은 과거에 일어났다는 분명 참인 주장이다. 그리고 이 주장은 시제가 있는 A-사실이다. 이 주장의 참됨 생성자는 무엇일까? 만약 모든 참인 A-주장들의 참됨 생성자가 A-사실이면, 우리는 결국 A-세계에 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대한 B-이론가들의 대응은 무엇인가?

  

   ‘오래된 비시제 이론이란 다음과 같다. A-진술들은 그 의미에 있어서 B-진술들과 동등하므로, 참됨 생성자로 A-사실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오직 B-사실들만이 필요할 뿐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오래된 B-시제 이론은 실패했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왜냐하면 A-진술들은 의미의 손실 없이 B-진술들로 번역될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A-진술들은 시간에 따라 변하는 진리값을 갖고, B-진술들은 시간 불변의 진리값을 갖는다.

  

   ‘새로운 비시제 이론에서는 A-주장들이 비시제적인 B-참됨 생성자를 가질 수 있다고 본다. 이에 대한 예로, 멜러(Mellor)의 입장을 살펴보자. 우선 멜러는 믿음, 믿음에 대한 진술, 믿음을 진술하기 위해 사용된 문장, 믿음의 내용인 명제를 구분한다. A-믿음의 진리값은 달라지는 반면 B-믿음의 진리값은 동일한 것처럼 여겨진다. 그리고 A-믿음을 참으로 만드는 B-사실은 하나가 아니라 여럿인 것처럼 보인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형(type)과 사례(token)의 구분을 도입할 수 있다. 이 구분에 따르면, A-믿음 유형은 서로 다른 시간에 서로 다른 진리값을 갖는다. 그러나 A-믿음 사례는 특정한 시간에 그러한 믿음을 갖고 있는 사람을 지시한다. 그리고 그러한 믿음을 갖고 있다는 것은 B-사실이므로, 언제나 적용되는 사실이다. A-믿음 사례가 언제 참이 되는지를 비시제적인 B-용어들로 기술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기술은 아래와 같이 두 가지 방식으로 제시될 수 있으며, 두 가지 설명 모두 옳은 결과를 제공하는 것처럼 보인다.

  

   ① 사례 성찰적 설명 : 그 어떤 사건 E에 대한 모든 A-명제에 대해, P의 사례는 다음의 경우에만 참이다. P는 현재가 E보다 매우 이르거나 느리다고 말하므로, 이 사례가 E보다 매우 이르거나 느릴 경우.

  

   ② 날짜 설명 : 그 어떤 사건 E에 대한 모든 A-명제에 대해, P의 사례는 시각 t에 다음에 의해 참이 된다. P는 현재가 E보다 매우 이르거나 느리다고 말하므로, 만약 tE보다 매우 이르거나 느릴 경우.

  

   그의 저작 Real Time에서 멜러는 사례 성찰적 설명을 더 선호하였으나, Real Time 에서 그는 날짜 설명을 더 선호한 바 있다.

 

3.4. 또 다른 A-역설

    B-이론가인 멜러는 A-문장들에 시제적인 참됨 생성자를 제공하려고 하면 역설적 상황에 빠지게 되므로, A-진술이 비시제적 참됨 생성자를 갖는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함을 보이고자 했다. 예를 들어, 한 달 전에 철수가 아닌 사람을 보고 착각하여 철수가 머리를 깎았다고 주장했다고 해보자. 이 주장을 C라고 하고, 분명 C는 잘못되었다. 그런데 한 달 후에 정말로 철수가 머리를 깎았다면 C의 진리값이 바뀌는가? 그렇지 않다. 그런데 시제적 진술이 시제적 참됨 생성자를 갖게 되면, 진술의 진리값이 계속 바뀌게 된다.

 

   월요일에 오늘은 화요일이다라고 주장했다고 해보자. 이 주장을 D라고 한다. D는 월요일에는 거짓이지만 화요일에는 참이 되므로, 진리값의 변화를 겪는다. 그러나 멜러에 따르면 이와 같은 진리값의 변동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 것으로 가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3.5. A-관점의 필요불가결성

    그렇지만 A-사실들이 실제로 없다고 해도 A-믿음들은 실천적인 중요성을 갖는다. 성공적인 행위는 참된 믿음을 필요로 하는데, 우리의 실질적인 행동에 지침을 줄 수 있는 것은 A-믿음이다. B-믿음은 시간에 무관하게 항상 참이므로 우리에게 지침을 제공할 수 없다. 우리가 적절한 시간에 행동하기 위해서는 시간에 따라서 끊임없이 갱신되는 A-믿음들을 가져야만 한다. 시간에 맞는 성공적인 행동을 위해서는 A-믿음들이 필수적인 역할을 차지하나, B-사실들은 A-믿음에 대한 참됨 생성자로서의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다.

 

3.6. 태도의 문제들

    일반적으로 우리는 이미 지난 과거의 사실들보다는 미래의 사실들에 대해서 더 큰 관심을 갖는다. 몇몇 A-이론가들은 이러한 태도의 비대칭성(asymmetry)B-이론에 대한 문제가 된다고 생각한다. 이에 대해서 B-이론가는 다음과 같이 대응할 수 있다. 시제적 사건의 중요성을 받아들이면서도, 이것이 유관한 비시제적 사건과 동일하다는 관점을 유지할 수 있다. 우리가 태도의 차이를 갖게 되는 것은, 사물들이 표상되는 방식에 따라 우리의 믿음과 태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대답은 문제를 모두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왜 우리는 과거와 미래에 대해 그와 같은 다른 태도들을 갖는 것일까? 피할 수 없는 미래의 고통에 대해 생각하는 경우를 예를 들 수 있듯, 우리가 미래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미래의 사건들을 더 중시하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만약 과거와 미래 사이에 존재론적 차이가 없다면, 미래에 대한 우리의 편향(bias)을 어떻게 정당화할 것인가?

  

   이는 진화론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 이는 자연선택에 의해서 심어진 비합리적인 본능에 의거하는 것이다. 자연선택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미래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자신의 생존 전망을 강화시키고자 하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미래에 대한 편향이 미래 그 자체에 대한 직접적인 것은 아님을 보여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세계 차원에서는 과거이라고 하더라도 개인 수준에서는 미래인 어떤 사건은 그 개인에게 큰 의의를 지닌다. 뿐만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경우(어머니), 고통이 어머니에게는 과거의 것이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나에게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 내가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관련될 경우, 해당 사건의 시점은 큰 의의를 갖지 않는다. 이를 자아-타자 비대칭성이라고 한다.

      

3.7. 변화에 대한 B-이론들

    사물들은 그것들이 가진 부분들과 관련하여 사건들과는 다르다고 생각된다. 사건의 경우, 공간적인 부분을 가지지만 시간적인 부분 역시 가지는 것으로 생각된다. 반면, 사물의 경우 시간적인 부분을 갖는다고는 생각되지 않고, 각각의 시간에 사물의 온전한 전체가 존재한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어제의 사물과 오늘의 사물은, 비록 질적으로는 다를 수 있다 하더라도 양적으로는 동일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변화와 공간적 변이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차이가 있다. 변화란 하나의 동일한 개체가 서로 다른 속성을 갖는 것이다. 반면 변이는 양적으로 구분되는 개체들이 서로 다른 속성들을 갖는 것이다. 멜러에 따르면, 변화에는 지속이 필요하고 지속은 인과성을 요구한다. 인과성의 차원은 시간이므로 시간과 공간은 구분된다. 멜러는 시간에 대한 기존의 도식을 인정하면서도 B-이론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다른 B-이론가들은 변화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취한다. 만약 B-이론을 받아들이면, 우리는 특정한 시간에 해당 사물의 온전한 전체를 바라보고 있다는 관점을 버려야 한다. 오직 시간적으로 연장된 사물의 일부분만을 바라보고 있는 셈이 된다. 이러한 관점을 취하면 변화와 공간적 변이 사이의 차이가 증발해버리게 된다.

 

3.8. 창발적 시간

    B-이론을 받아들여도 시간과 공간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인과성은 오직 시간 축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둘째, 상대성이론에서도 시간과 공간은 구분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자 중력 이론은 시간과 공간의 구분이 유지되지 못할 것이라는 입장을 취한다. 왜냐하면 이 이론에서는 시간이 아예 언급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이러한 입장이 옳다면, 이것의 형이상학적 귀결은 의미심장할 것이다.

  

   사건들의 비대칭적 패턴과 분포에 관한 객관적인 사실들에 기초할 때, 시간과 공간은 분명하게 구분된다. 따라서 시간은 환영적인 것이 아니라 실재하며, 변화 또한 마찬가지다. 만약 미래에 (양자 중력 이론에서와 같이) 시간이 우주의 근본적인 측면이 아니라고 밝혀진다면, 시간은 일종의 창발적(emergent) 현상이라고 이해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의 존재 그 자체는 유지될 것이다. 동물들은 창발적인 성격을 갖는 개체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동물들을 환영이라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