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연구 이야기

배리 데인튼, [시간과 공간] 요약 정리 02: 시간의 비실재성에 대한 맥태거트의 견해

강형구 2016. 3. 17. 07:18

 

 

2: 시간의 비실재성에 대한 맥태거트의 견해

(Mctaggart on time's unreality)

 

2.1. 시간이 비실재적일 수 있는가?

     

   우리의 경험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세계가 어떠하다고 믿는 것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세계에 실제로 시간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세계에서 시간이 사라진다면 세계에는 아주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철학자 맥태거트는 세계가 우리에게 보이는 것과 같다고 인정하더라도 시간은 비실재적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2.2. 시간의 본질로서의 변화

     

   시간의 비실재성에 대한 맥태거트의 논증은 다음과 같다.

    (1) A-계열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2) A-계열은 형이상학적으로 비일관적이므로, 존재하지 않는다.

    (3) 따라서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선 위 논증의 (1)에 대해 살펴보자. (1)은 두 가지를 주장하고 있다. 첫째, 시간은 변화가 일어나며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차원이다. 둘째, 변화는 A-계열을 필요로 한다. 맥태거트에 따르면, 만약 A-계열 없이 B-계열만 존재한다면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맥태거트는 변화하는 A-사실들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시간 역시 존재하지 않고, 따라서 변화는 일어날 수 없음을 보이고자 한다. 그렇다면, 맥태거트가 A-계열이 실재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2.3. 맥태거트의 A-역설

     

   맥태거트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과거, 현재, 미래는 양립불가능한(incompatible) 속성들이다. 사건 E는 미래였다가 현재가 되고, 이후 과거가 되므로 세 개의 A-속성들을 갖게 된다. 하지만 세 개의 속성들은 서로 양립불가능하므로, 사건 EA-속성들을 갖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에 대한 A-이론가들의 반론은 다음과 같다. EA-속성들을 순차적으로 갖는 것이지 동시에 갖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사건 EA-속성들을 갖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

     

   이에 대해 맥태거트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위와 같은 A-이론가들의 답변은 악성 순환(vicious circle)을 포함한다. 다시 말해, A-이론가는 역설을 해결하기 위해서 다시 A-계열 자체를 끌어들이는 셈이다. 시간은 시간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설명될 수 없다. 그렇다면 시간은 원초적인 개념, 궁극적인 개념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맥태거트는 이런 답변 역시 악성 무한 퇴행을 도입하게 된다고 본다.

     

   맥태거트에 따르면 사건 E가 순차적으로 미래, 현재, 과거의 속성을 갖는다는 주장은 2(second)A-계열을 도입하게 되고, 이런 과정은 계속 반복된다. 우선 맥태거트는 A-진술들을 다음과 같이 재공식화한다.

 

    (A) E는 현재이고, 과거가 될 것이며, 미래였다.

  

    이를 맥태거트는 다음과 같이 재진술한다.

  

   (A') E는 현재 시간의 순간에 현재이며, 미래 시간의 순간에 과거이며, 과거 시간의 순간에는 미래였다.

  

   이를 좀 더 간결하게 진술하면 다음과 같다.

  

   (A'') E는 현재에 현재이고, 미래에 과거이며, 과거에 미래이다.

  

   이러한 재진술에서는 합성된 2차 수준의 시제 술어가 도입된다. 예를 들어, ‘현재1차 수준의 술어이지만 현재에 현재는 합성된 2차 수준의 술어이다. 문제는 2차 수준의 술어들이 총 9개라는 점이다. 그리고 모든 사건들은 이 9개의 술어들을 모두 갖게 된다.

 

순번

1차 수준

2차 수준

1

과거이다

과거에 과거이다

2

현재에 과거이다

3

미래에 과거이다

4

현재이다

과거에 현재이다

5

현재에 현재이다

6

미래에 현재이다

7

미래이다

과거에 미래이다

8

현재에 미래이다

9

미래에 미래이다

  

   문제는 이러한 2차 수준의 술어 9개들 중 일부는 서로 양립가능하지만 일부는 서로 양립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2, 5, 8은 서로 양립불가능하다. 따라서 1차 수준의 술어에서 보았던 것과 동일한 역설이 생긴다. A-이론가들은 2, 5, 8 술어들을 동시에 갖는 것이 아니라 순차적으로 갖는다고 주장할 것이며, 이는 동일한 방식으로 3차 수준의 술어들을 요구하게 된다. 3차 수준은 4차 수준의 술어를 요구하게 될 것이며, 결국 좀 더 복잡한 술어를 요구하며 무한 퇴행(infinite regress)이 이루어진다.

  

   이와 같은 무한 퇴행은 악성 순환이므로, A-계열은 내재적으로 역설적이며 실재하는 무엇인가에 대응할 수 없다는 것이 맥태거트의 주장이다. 맥태거트에 따르면, 실재하는 것은 사건들로 이루어진 영원한 블록인 C-계열이다. 이 블록의 내용에 순서는 있지만, 이 순서는 시간적인 것이 아니다.

 

2.4. 같은 장소에 이르는 다른 경로들

     

   맥태거트의 A-역설에 대해서는 찬반이 엇갈린다. 이를 진정한 역설이라고 보는 입장도 있고, 이 역설에 무엇인가 분명히 잘못이 있다고 보는 입장도 있다. 우선 맥태거트를 반박하려는 입장을 살펴보자. 맥태거트는 어떤 사건 E“E는 과거이고 현재이며 미래이다라고 주장한다. 스미스(Smith)는 이와 다른 방식으로 다음과 같이 공식화하자고 주장한다.

  

   (1) E는 과거가 될 것이며, 지금 현재이고, 미래였다. 또는,

   (2) E는 지금 과거고 현재였으며 미래였다. 또는,

   (3) E는 지금 미래고 현재가 될 것이며 과거가 될 것이다.

  

   이와 같은 공식화는 A-역설을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맥태거트의 논증에 결점이 있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 잘못되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시간에 대한 특정한 동역학적 관점에는 매우 심각한 문제가 있다. 맥태거트의 주된 공격 대상은 일시적(transitory) 시제 이론이다. 이는 움직이는 스포트라이트 모형으로 표현될 수 있다. 이 모형에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문제가 있다.

  

   첫째, 일시적 속성의 본성은 무엇인가?

  

   둘째, 현재라고 구분되는 속성이 일시적이라고 가정하는 것이 합당한가?

 

2.5. A-속성의 본성

     

   속성은 내재적(intrinsic) 속성과 관계적(relational) 속성으로 구분된다. 관계적 속성이란 하나 또는 더 많은 다른 사물들과 특정한 방식으로 관계를 맺음으로써 나타나는 속성이다. 내재적 속성이란 다른 사물들과의 관계에 상관없이 그 사물 자체에 관련된 속성이다.

  

   A-속성이 내재적이라는 입장은 다양한 형식을 가질 수 있다. 한 입장에 따르면, 오직 현재성만이 내재적인 A-속성이며 과거성과 미래성은 관계적으로 정의될 수 있다. 다른 입장에 따르면, 과거성, 현재성, 미래성 모두 내재적 속성이다. 이 이외에도 여러 입장을 가질 수 있다.

  

   맥태거트는 A-속성들이 내재적이라기보다는 관계적인 것이라고 암시했다. 그리고 이러한 맥태거트의 입장은 이해할 만한 것이다. 과거, 현재, 미래라는 것이 하나의 사물이 갖는 속성을 변경시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A-이론가는 A-속성들이 B-계열에 외재적인 어떤 것 X와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X와 관계 맺는다는 것이 사물 자체가 어떠하다는 것에 차이를 유발시키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따라서 A-이론가는 시간의 흐름이 사물에 특정 종류의 의미심장한 차이를 만든다고 주장하고 싶을 것이다.

  

   A-이론가는 A-속성들이 내재적인 것이라는 입장을 유지하기 위해, 현재의 움직임이 사물들이 갖고 있는 내재적인 속성들에 특정한(distinctive) 일시적 변화를 일으킨다고 주장한다. 이 변화는 현재만이 갖고 있는 고유한 특성이다. A-이론가에 따르면, 분명 우리는 사물들에 대한 구조적인 내재적 속성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들은 비구조적인 내재적 속성들에 대해서는 잘 모르며, 이러한 속성들이 현재가 되면서 변화를 겪게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계열 속성들을 내재적이라고 생각하면 여전히 문제가 남는다.

 

2.6. 중복결정(overdetermination) 문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주장들이 결합되었을 때 문제가 발생한다.

  

   (1) 모든 실제 사건들은 고정된 B-계열 위에서 영원한 위치를 갖는다.

  

   (2) A-속성들은 사건들의 내재적 속성들이다.

  

   (3) A-속성들은 일시적이다. 모든 사건은 미래, 현재, 과거 순으로 변한다.

  

   논의의 단순함을 위해, 오직 현재성이라는 내재적 속성만이 있다고 가정하자. 위의 세 주장들을 결합하면, 사건은 특정한 순간에 현재라는 내재적 속성을 갖고 있기도 하고 갖고 있지 않기도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이를 중복결정의 문제라고 한다.

  

첫 번째 대응 : 지속하는 시간들

     

   시간 역시 서로 다른 시간들에 양립불가능한 속성들을 가질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를 위해 시간에 추가적인 차원인 메타 시간을 도입한다. 이를 중복결정에 대한 2차원적 해답이라고 한다. 이 해답에서는 시간 및 시간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지속하는 개체들이라고 가정한다. 그러나 이 방법으로 하나의 문제를 해결했다고 하더라도 또 다른 문제들이 남는다. 우선 존재론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이는 또 하나의 실재 차원을 추가하는 부담이 된다.

  

   메타 시간을 도입하면 모든 순간은 영원히 현재를 갖게 되므로, 애초에 설명하고자 했던 현재의 내재적 특성인 흐름을 설명하지 못하게 된다. 이에 대해서 A-이론가는 메타 시간 자체가 시간적 차원이며 메타 현재는 움직인다고 답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메타 현재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메타-메타 시간을 도입해야 한다. 그리고 이는, 앞서 보았던 것과 유사한 무한 퇴행을 낳게 된다는 문제가 있다.

  

두 번째 응답 : 다른 세계들

     

   A-이론가의 입장에서는 추가적인 세계를 가정함으로써 중복결정 문제를 극복하려고 할 수 있다. 이는 실제 세계에서 현재성이라는 속성을 갖고 있는 어떤 것이 다른 가능 세계에서는 미래성과 과거성을 가질 수 있다는 뜻이다. 각각의 세계 모두 같은 사물들이 동일한 방식으로 조직되어 있으나, 오직 시제만이 다른 경우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세계들은 과거성 및 미래성으로 서로 질서지어질 수 있다. 이를 중복결정에 대한 비글로우(Bigelow)의 양상적 해결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이러한 가능 세계의 지위는 무엇인가? 양상 실재론에 따르면 모든 가능 세계들은 동등하게 실재한다. 양상 실제주의(actualism)에 따르면 오직 하나의 세계만 실제 세계이고 다른 세계들은 단순히 가능할 뿐이다. 양상 실재론의 입장을 취하면 이는 앞서 살펴본 2차원적 메타 시간과 구분 불가능하게 되며, 동일한 종류의 문제들에 직면한다. 이 입장 또한 시간의 역동적 성격을 설명하지 못한다. 양상 실제주의의 입장을 취하면 오직 하나의 시간만이 현재가 되며, 이는 극단적으로 이상한 입장이다.

 

2.7. 귀결들

     

   지금까지의 논의에 따르면, 내재적인 시제 속성들을 참조하는 시제 술어들을 사용하는 시제 이론은 포기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이 시간에 대한 모든 역동적 개념들을 버려야 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증가하는 블록 관점을 취할 수도 있고, 오직 현재만 존재한다고 보는 관점을 취할 수도 있다.

  

   맥태거트는 사건이 동일한 사건으로 남으면서도 A-속성들을 소유하거나 잃을 수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는 B-계열적인 입장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 그는 세계가 파르메니데스적이라는 입장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사건들을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했다가 점점 존재에서 멀어지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맥태거트는 선결 문제 전제의 오류를 범한 채로 자신의 논의를 전개했던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