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연구 이야기

배리 데인튼, [시간과 공간] 요약 정리 04: 시간 내에서의 비대칭성

강형구 2016. 3. 19. 11:04

4: 시간 내에서의 비대칭성

(Asymmetries within time)

 

4.1. 시간의 방향

    시간에 대한 B-이론가들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시간은 흐르지 않지만, 시간의 내용상에서는 비대칭성이 발견된다. 그리고 이러한 비대칭성 때문에 우리는 시간적인 흐름이 있고 시간에 방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시간 그 자체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시간의 내용적 비대칭성이 시간에 방향성을 줄 수 있는지의 여부가 달라진다. 실체론자는 비대칭성과 시간 자체를 구분할 수 있다고 주장할 것이고, 관계론자는 비대칭성이 시간 그 자체라고 주장할 것이다. 또한, 시간의 내용이 비대칭적이지 않더라도 시간이 그 전체로서 비대칭적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시간의 한쪽 끝만 무한할 수 있으며, 양쪽 다 무한하더라도 한쪽만 분기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시간이 국소적으로는 비대칭적이지만 그 전체로 볼 때는 방향성을 갖고 있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지난 장에서는 시간의 심리학적 화살에 대한 B-이론가의 설명을 살펴보았다. 이번 장에서는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발견할 수 있는, 시간의 관측 가능한 내용 비대칭성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세계에서 의식적 존재들이 소멸한다고 하더라도 시간에 여전히 비대칭성들이 남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좋은 근거들이 있다. 의식적 행위자의 심리적 특성들에 의지하지 않는 차이가 이른 시간과 늦은 시간 사이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과연 이런 비대칭성에 대해서 B-이론가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4.2. 내용 비대칭성: 좀 더 상세한 설명(a fuller picture)

    ◎ 엔트로피 비대칭성: 열역학 제2법칙에 따르면 엔트로피는 시간에 따라 증가한다.

    ◎ 인과적 비대칭성: 몇몇 사건들은 다른 사건들의 원인이다. 대개 원인은 결과보다 일찍 일어난다.

    ◎ 갈래(fork) 비대칭성: 여럿의 늦은 사건들이 하나의 이른 사건과 상관되어 있다는 것은 흔한 사실인 반면, 그 역은 드물다.

    ◎ 설명적 비대칭성: 우리는 이전의 사건들을 참조하여 이후의 사건들을 설명하고자 한다.

    ◎ 지식 비대칭성: 우리는 과거에 대한 상세하고 믿을 만한 지식을 갖고 있으나, 미래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하다.

    ◎ 행동 비대칭성: 우리의 숙고(deliberation)는 미래를 향해 있지 과거를 향해 있는 것이 아니다.

    ◎ 경험 비대칭성: 우리는 시간이 미래의 방향으로 흐른다고 경험한다.

  

   위의 비대칭성들은 서로 연관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이들 중 어떤 것들은 다른 것들보다 더 근본적이다. 상호 연관성 및 근본성에 대하여 B-이론가들은 다양한 견해를 보이고 있다. B-이론가가 위와 같은 비대칭성들을 설명할 수 있다면 자신의 입장을 더 견고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B-이론가의 맞수인 A-이론가는 시간의 내용 비대칭성을 비교적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처지에 있다.

 

4.3. 엔트로피

    열역학 제2법칙, 즉 시간에 따라 엔트로피가 증가한다는 법칙이 시간의 방향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한다. 과연 열역학 제2법칙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엔트로피란 한 계에서 에너지가 무질서한 방식으로 공간에 퍼질 수 있는 것에 대한 측도이다. 또는, 엔트로피는 한 계가 얼마나 평형(equilibrium)에 가까웠는지에 대한 측도이다. 열역학 제2법칙에 따르면, 닫힌계에서의 에너지는 자꾸 퍼져나가고자 하며 계는 점점 평형에 가까워진다.

  

   마치 중력으로 위와 아래를 설명할 수 있는 것처럼, 엔트로피로 이르고 늦은 것을 설명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중력과 마찬가지로, 국소적인 엔트로피 비대칭성이 존재하지 않을 경우에는 과거와 미래가 구분 불가능하다고 볼 수도 있다(Sklar의 견해). 중력은 위와 아래에 관한 모든 유관한 사실들을 잘 설명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과연 엔트로피 역시 시간의 비대칭성에 관한 모든 사실들을 잘 설명하는가?

  

   그렇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엔트로피만으로는 인과, 설명, 지식, 심리적 화살 등과 같은 비대칭성들을 설명하기 어려운 것처럼 보인다. 또한, 열역학적 과정 역시 사실상 완전히 비가역적인 것은 아니다. 물리학자 볼츠만(Boltzmann)은 아무리 확률이 작다고 하더라도 엔트로피가 줄어들 가능성은 존재함을 인정했다. 우주 전체로 볼 때 엔트로피는 증가하고 있지만, 간헐적이고 가능성이 적은 소규모의 엔트로피 감소 사례들이 존재한다. 최근의 빅뱅 우주론자들도 이와 비슷한 입장을 갖고 있다.

  

   통계역학의 법칙들과 인과지식설명에 관한 비대칭성들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가? 열역학적 개념을 다양한 종류의 계들에 적용하는 것을 합법화하는 것은 어려우며, 원칙적으로 엔트로피 감소가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역행이 다른 종류의 비대칭성들에도 적용되리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엔트로피가 줄어든다고 해서 다른 종류의 비대칭성들이 이에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하기 어려운 사례가 있다. 예를 들어, 대서양의 일부 온도가 높아지고 일부 온도가 낮아진다고 해서 다른 종류의 질서들이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다른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자. 해변에서 발자국을 발견했을 경우, 우리는 이 계가 과거에 다른 계와 외부적인 상호작용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Reichenbach의 견해). 그러나 우리는 엔트로피 증가를 통해 시간의 방향을 설명하고자 하므로, ‘미래가 아닌 과거에 해당 계가 외부 계와 상호작용했다고 단순하게 가정해서는 안 된다. 요약하면, 엔트로피 증가와 우리가 일상적으로 시간의 방향과 연계하는 여러 비대칭성들 사이에 직접적인 또는 명백한 연결은 없어 보인다.

 

4.4. 인과성으로 설명하기(the causal route)

    해변에 있는 발자국을 일종의 결과라고 생각하면, 그 이전에 발자국을 발생시킨 원인이 있을 것이라 추측이 가능하다. 이렇듯 인과성에 호소함으로써 엔트로피 증가로는 설명하지 못했던 다양한 비대칭성들을 설명할 수 있다. 설명적 비대칭성의 경우, 일찍 일어난 사건으로 늦게 일어난 사건들을 설명하는데, 왜냐하면 일찍 일어나는 사건이 원인이기 때문이다. 기억, 행동 역시도 인과성으로 설명할 수 있다. E1E2를 일으키면 E2E1의 결과이므로 E1보다 늦게 일어난다. 또한 모든 사건들의 시간적 순서는 몇몇 사건들의 인과적 순서로부터 도출될 수 있다.

 

4.5. 인과성의 문제

    그러나 많은 B-이론가들은 시간의 내용적 비대칭성에 대한 인과적 설명이 유지될 수 없다고 본다. 우선, 만약 후방 인과(backward causation)가 가능할 경우 이는 인과적 설명의 문제가 될 것이 분명하다. 다음으로, 이르고 늦음의 구분에 호소하지 않고 원인과 결과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것이 쉽지 않다.

  

   인과성을 사소한 것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인과에 대한 흄(Hume)의 입장을 받아들여서는 안 되며 인과에 대한 실질적인 설명을 제시해야 한다. , 원인이 결과가 일어나게끔 만든다는 것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보이기란 쉽지 않다. 예를 들어, 물리학의 법칙은 시간 대칭적이기 때문에 충분히 원인이 결과가 될 수도 있다. 또한 시간의 선후관계 이외의 방법으로 원인과 결과를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다. 실제로, 인과적 비대칭성은 우리 사고의 양식이 실제에 투여하는 무엇인가로 보는 것이 적합할 것이다.

 

4.6. 시간의 역행

    우주에 충분한 양의 질량이 있다면 언젠가 우주는 팽창을 멈추고 다시 줄어들게 될 것이다. 이를 빅뱅-빅크런치 모형이라고 한다. ‘빅뱅-빅크런치 모형은 다시 둘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 모형에서는 엔트로피가 계속 증가하나, 둘째 모형에서는 엔트로피가 증가하다가 우주의 수축과 함께 다시 감소한다. 둘째 모형의 우주는 매우 대칭적이며, 이 우주를 물리학자 골드(Gold)의 이름을 따서 골드 우주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골드 우주에서는 시간이 역행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물리학의 근본 법칙들은 시간 가역적이므로 시간의 역행은 불가능하지 않다. 만약 시간의 방향에 대한 인과적 설명이 옳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골드 우주에서 우리와 반대편에 있는 우주에서는 우리와 반대 방향으로 시간이 흐른다고 생각할까? 그렇지는 않다. 우리가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반대편 우주에 있는 사람들은 결과라고 생각할 수 있으므로, 반대편 우주에서도 인과성에 따라 시간이 정상적으로 흐른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러한 사고 실험은 시간의 방향을 결정하는 비대칭성들이 인과적 화살과는 전적으로 독립적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인과적 화살과 세계의 화살이 동일한 방향을 가리킨다면, 이러한 일치가 우연이라고 믿기는 어렵다. 어쩌면 세계의 화살 또는 이것의 일부분이 인과적 화살을 결정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 인과성보다 더 근본적인 비대칭성을 제시하는 호위치(Horwich)의 입장을 살펴보자.

 

4.7. 근본적인 갈래들(forks)

    폴 호위치(Paul Horwich)시간의 비대칭성(1987)에서 지식 비대칭성이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음을 주장하고, 지식 비대칭성은 그 자체로 갈래 비대칭성의 산물이라고 보았다. 그렇다면 갈래 비대칭성이란 무엇인가? 서로 강한 상관을 가진 사건들에 연계된 이전 사건을 찾는 것은 정상적이지만, 그 역은 드물다는 것이다. 또는, 하나의 사건이 주어졌을 때, 그 사건에 대해 충분한 미래의 사건들의 수는 그 사건에 대해 충분한 과거의 사건들의 수보다 더 클 것이라는 것이다.

  

   호위치는 인과에 대한 우리의 믿음들을 다음과 같이 나열한다. 첫째, 원인은 결과를 설명한다. 둘째, 원인은 존재론적으로 결과보다 더 기초적이다. 셋째, 상관된 사건들은 인과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넷째, 원인은 결과를 일으키는 수단이다. 호위치는 이 믿음들이 지식 비대칭성과 연결되어 있음을 보였다. 지식 비대칭성은 설명의 시간적 정향에도 역할을 담당하며, 진정한 우연의 일치는 설명을 갖지 않는 사건들의 연언으로 구성된다고 볼 수 있다.

  

   호위치에게 지식 비대칭성은 매우 기본적인 비대칭성이지만, 그는 지식 비대칭성을 다시 갈래 비대칭성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그는 기록장치의 본성에 대한 추상적인 논의로부터 자신의 결론을 이끌어낸다. 그에 따르면 기록은 다음과 같은 특성들을 갖는다. 첫째, 고도로 구체적인 형태로 바뀌는 경향이 있는 거시적 계를 갖는다. 둘째, 그리고 이 형태는 다른 유형의 사건과 강한 상관관계를 갖는다. 셋째, 이 사건 유형은 문제의 형태보다 항상 이르게 발생한다. 여기서 셋째 특성은 갈래 비대칭성으로부터 비롯된다.

  

   호위치는 갈래 비대칭성의 연원(source)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초기 우주에는 질서와 무질서가 혼합되어 있다. 미시적 수준에는 무질서가 있으며, 이러한 무질서로 인해 거시적 수준에서는 부분적이고 제한적인 질서가 있다. 만약 강한 상관을 갖는 두 사건 XY가 있을 경우, 자연스럽게 그 이전에 두 사건과 관련된 단일한 사건 Z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미시적 수준의 무질서로부터 각각의 관련된 사건 X'Y'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역 갈래가 그토록 드문 것일까? 만약 우리가 시간의 역행 관점을 받아들이면, 무질서한 것처럼 보이는 현상에도 질서가 함축적으로(implicitly)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XY 이후 단일한 사건이 나올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시간의 역행 관점을 받아들일 경우, 이후의 다양한 사건들로도 이전의 사건들에 대해서 법칙적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관점을 받아들이면 시간이 역으로 진행하는 우주의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게 된다.

  

   호위치의 갈래 비대칭성을 설명한 저자의 의도는 다음과 같다. B-이론가의 입장에서 인과성으로 시간의 비대칭성들을 설명하지 못한다고 해도, 갈래 비대칭성과 같은 다른 대안이 있을 수 있다. 이에 대해, B-이론가들이 시간의 다양한 내용-비대칭성들에 대해 충분히 만족할 만한 설명을 내놓지 못했다고 비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좀 더 강한 설명력을 갖는 시간의 역동적(dynamic) 개념이 존재할까? 저자는 이 문제에 대한 논의를 책의 5장에서 다룰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