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연구 이야기

배리 데인튼, [시간과 공간] 요약 정리 06: 역동적 시간

강형구 2016. 3. 21. 07:01

 

 

6: 역동적 시간

(Dynamic Time)

 

6.1. 성장하는 블록

    브로드(Broad)는 자신의 책과학적 사고(Scientific Thought)에서 시간에 대한 역동적 이론을 제시했다. 브로드에 따르면, 현재에서 생성(becoming)이 일어나면서 현재를 통해 존재의 총합이 점차적으로 증가한다. 과거는 현재만큼 실재하며, 존재하기를 중단하는 것은 없다. 이에 반해, 미래는 전혀 존재성을 가지지 않는다. 이 관점에 따르면 현재에 일어나는 사건이 명확한 현재성속성을 가지지는 않으며, 단지 가장 최근에 덧붙여진 실재의 조각일 뿐이다.

  

   그렇다면 얼마나 많은 실재의 조각이 덧붙여지고 있을까? 이 물음에 대해, 첫째, 각각의 조각들은 순간적인 것이라고 답할 수 있으며, 둘째, 각각의 조각들은 유한하지만 최소한의 지속이라고 답할 수 있다. 순간들의 합이 유한한 시간이 되기 힘들다고 생각하는 학자들은 두 번째 답을 선호한다. 이러한 성장하는 블록 모형은 시간에 대한 자연적 관점에 부합하고, 직관적이며, 시간의 내용 비대칭성 중 많은 것들을 잘 설명해준다.

  

   이 장에서 저자는 성장하는 블록 모형의 몇몇 판본들이 일관적임을 보여주고, 성장하는 블록 모형이 생각했던 것보다는 자연적 관점에 덜 부합된다는 사실 역시 보여주고자 한다.

 

6.2. 중복결정

    성장하는 블록 이론가는 내재적인 시제적 속성을 가정하지 않으므로 중복결정의 문제를 피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성장하는 블록 모형은 두 가지 종류의 판본을 취할 수 있다. 첫째, 과거, 현재, 미래는 비어 있으며 영원히 실재하지만, 사건이 일어남과 동시에 시간이 구체적인 사건들로 채워진다. 둘째, 시간의 순간들은 사건들, 사물들과 함께 생성된다. 과거, 현재의 순간들은 존재하나 미래의 순간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첫째 모형을 취하면 앞서 등장했던 중복결정의 문제에 빠지게 되므로, 둘째 모형을 취하는 것이 합당한 것으로 여겨진다.

  

   시간 t1t2가 있고, 각각의 시간에 대한 실재의 총합 S1S2가 있다. 그리고 사건 Et1에 일어났다고 가정해보자. 이 때 사건 E에 대한 다음의 2가지 진술이 가능하다고 생각된다. 첫째, t1의 사건 E에 속하는 실재의 총합은 S1로 구성된다. 둘째, t1의 사건 E에 속하는 실재의 총합은 S2로 구성된다. 하지만 이 두 진술들은 상호 비일관적이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이 물음에 대해 툴리(Tooley)는 다음과 같은 해답을 제시했다. 역동적 세계에서는 실제적(actual)-비실제적 구분이 불충분하다. 따라서 주어진 시간에서의 실제성 및 존재성 개념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이에 대응해 주어진 시간에서의 참됨 개념도 도입된다. 따라서 성장하는 세계에서 진리 개념은 시간에 따라 상대화된다. 실재가 성장하면서 진리의 총체 역시도 성장한다. 이러한 해답의 귀결은 다음과 같다. 첫째, 동일한 명제도 서로 다른 시간에 서로 다른 진리값을 갖는다. 둘째, 세 가지 진리값이 존재한다. , 거짓, 참도 거짓도 아님.

  

   다음으로 우주가 얼마나 빨리 성장하는지 물을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은 사물들사건들과 같이 생성된다고 보는 관점을 취하면 이 물음은 의미가 없어진다.

 

 

6.3. 시제 없는 역동주의

    툴리(Tooley)는 시간에 대한 역동적 관점을 시간에 대한 비시제적 관점과 결합하는 것이 가능함을 보였다. 툴리에 따르면 세계는 비시제적 용어들로 충분히 기술되며, 시제적 개념은 비시제적 용어들로 완전히 분석된다. “현재또는 과거와 같은 시제적 개념을 사용하는 문장이 시제적 문장이며, 대부분의 경우 시제적 문장은 지표적(indexical)이다. 하지만 비지표적인 시제적 문장도 있다. “사건 E는 시간 t인 현재에 속한다.” 툴리에 따르면 이 문장은 다음 문장과 동치이다. “E는 사건들의 순간적 상태이고, 시간 t에 실제적이며, E보다 늦은 사건들의 상태는 시간 t에 실제적이지 않다.”

  

   툴리에 따르면, “E는 시간 t에 과거에 속한다는 것은, “사건 E는 시간 t보다 이르며, t는 사건들의 순간적인 상태이며, t는 시간 t에 실제적이며, t보다 늦은 사건들의 상태는 시간 t에 실제적이지 않다로 분석된다. 마찬가지로, “E는 시간 t에 미래에 속한다는 것은, “사건 E는 시간 t보다 늦으며, t는 사건들의 순간적인 상태이며, t보다 늦은 사건들의 상태는 시간 t에 실제적이지 않다로 분석된다.

  

   이를 기반으로 툴리는 지표적 문장을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시간 t*사건 E가 지금 일어난다고 말할 경우, 이는 Et*의 현재에 속할 경우에만 위 문장은 시간 t에 참이다. 사건 Et*의 과거에 속할 때, 시간 t에서 사건 E는 일어났다라는 문장이 참이다. 이렇듯 저자가 툴리의 입장을 소개하는 것은, 비시제적 관점이 시간의 역동적 관점과 결합될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6.4. 가늘어지는 나무

    툴리의 입장 이외에 또 다른 시간에 대한 역동적 모형이 있는데, 이는 맥콜(Storrs McCall)이 개발한 것이다. 우리는 미래가 다양한 가능성들로 구성되어 있으면서, 시간이 진행됨에 따라 이들 중 몇몇 가능성들만 현실화되고 나머지 가능성들은 제거된다고 생각한다. 이는 다음과 같은 나무 모형과 부합된다. 미래의 가능성들이 나무의 곁가지들처럼 펼쳐져 있다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실제화된 가능성 이외의 다른 가능성들은 나뭇가지가 쳐지는 것처럼 제거된다.

  

   성장하는 블록 우주는 이러한 가늘어지는 나무 우주와 양립가능하다. 맥콜의 우주 이론에서는 물리적으로 가능한 우주만을 이 우주에서의 가능성으로 허용하며, 제한된 양상 실재론을 옹호하는 맥콜은 가능성의 곁가지들 역시 나무의 줄기만큼 실재한다고 본다. 따라서 성장하는 블록 모형에서 실재의 총합은 점점 증가하지만, 맥콜의 모형에서는 실제화되지 않은 가능성들이 점점 감소하게 된다. 하지만 맥콜의 모형은 반직관적이며, 불필요하게 실재를 상정함으로써 오컴(Occam)의 면도날 기준에 어긋난다는 문제가 있다.

 

6.5. 블록이 어떻게 성장할 수 있는가?

    우주의 내용이 시간에 따라서 성장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점점 성장하는 세계와 점점 줄어드는 세계를 비교해보자. 두 세계 사이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S의 우주가 M 우주보다 작다. M의 우주가 L 우주보다 작다. 위 두 진술은 성장하는 세계와 줄어드는 세계 모두에 적용된다. 세계1을 점차 성장하는 세계라고 하고, 세계2를 점차 감소하는 세계라고 하자. 우리는 자연스럽게 세계1에서는 시간이 t1, t2, t3 순서로 흘러갈 것이라고 가정하고, 세계2에서는 t3, t2, t1 순서로 흘러갈 것이라고 가정한다. 그러나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에 대한 가정을 없애면 세계1과 세계2 사이의 차이는 없어진다.

  

   성장하거나 줄어드는 역동적인 우주에는 다음과 같은 객관적인 사실들이 적용된다. 첫째, 실재의 총합은 불변하지 않고, 각 시간마다의 실재 조각은 다른 시간의 실재 조각과 다르다. 둘째, t1에서의 실재 총합이 가장 작고, t3이 제일 크며, t2이 중간이다. 따라서, 우주가 점차적으로 줄어들고 있다고 기술하는 것은 우주가 점차적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기술하는 것만큼이나 정확하다.

  

   브로드(Broad)는 블록이 커지는 것을 늦은 것이라고 정의하므로 위의 논의가 적용되지 않는다. 하지만 왜 우리가 브로드의 정의(D1, 블록이 성장하는 방향이 시간의 방향임을 정의)를 선호해야 하는가? D1에서 블록이 증가하는 시간 방향을 블록 화살이라고 하자. 그리고 시간의 겉보기 방향을 세계 화살이라고 하자. ‘블록 화살세계 화살이 동일한 방향임을 보일 수 있을까? 과거는 흔적 증거를 남기는 데 비해 미래는 그렇지 못한다는 것이 근거가 될 수 있는가?

  

   만약 우리가 내용 대칭적인 골드(Gold) 우주에서 살고 있다고 가정해보면, 반대편 우주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세계 화살과 블록 화살이 반대 방향일 것이다. 시간의 겉보기 방향은 세계 화살을 결정짓는 내용 비대칭성에 의거하므로, 세계 화살과 블록 화살이 동일한 방향을 가리켜야 한다는 논리적인 보장은 없다.

  

   툴리가 발전시킨 성장하는 블록 이론에서는 성장하는 블록과 줄어드는 블록 사이의 구분 불가능성이 차단되는 것으로 보인다. 툴리의 논증 개요는 다음과 같다.

  

   ① 우리 세계의 사건들은 인과적으로 관계되어 있다.

   ② 인과적 관계는 내재적으로 비대칭적이다. 결과들은 원인들에 의존하지만 그 역은 아니다.

   ③ 이러한 비대칭성은 원인의 시간에 결과가 실재하지 않아야만 가능하다.

   ④ 원인은 결과보다 앞서서 일어난다.

   ⑤ 따라서, 우리의 우주는 성장하는 블록이다.

  

   툴리는 인과적 비대칭성을 통해 역동적 우주 중에서 성장하는 것과 줄어드는 것을 분리한다. 시간에 방향을 주는 것은 인과적 비대칭성이다.

  

   그러나 인과적 비대칭성을 받아들인다고 해서 반드시 블록 시간이 세계 시간과 동일한 방향을 가져야 할 필요는 없다. 모든 물리적 과정이 시간 가역적일 경우, 골드 우주에서는 어떤 우주에서 시간이 순행하고 역행하는지 구분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좀 더 사변적인 측면에서 볼 때, 블록이 양 방향에서 동시에 성장할 가능성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이 가능성을 선험적으로 배제할 수 있는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양 방향에서 동시에 줄어드는 블록 우주도 가능하다. 이런 우주들 중 어떤 하나를 특별히 선호해야 하는 근거는 없어 보인다.

 

 

6.6. 영원한 과거

    성장하는 블록 이론에 대한 다음과 같은 반론을 고려해보자. 과거의 사실들은 존재하기를 멈춘 것이다. 따라서 과거가 현재만큼 실재한다고 보기 어렵다. 이를 과거의 지위문제라고 한다. 만약 성장하는 블록 모형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실제로는 과거 속에서 갇혀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이는, 우리가 지금 이 순간이라는 특권적인 현재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현재는 점점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여기는 우리의 일반적인 생각과 상충하게 된다.

  

   우선, ‘현재란 지표적인(indexical)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현재에 살고 있다고 믿는다면 이 믿음이 틀릴 수는 없다는 점을 짚고 넘어가자. 이제 앞서 제기된 반론을 좀 더 상세하게 서술해보자. 성장하는 블록 이론가에 따르면, 가장 최근에 생성된 실재의 조각이 현재이기 때문에 현재라는 특권은 전이적(transitory)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가 이와 같은 의미에서의 현재에 속한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성장하는 블록 이론가는 다음과 같이 답변할 수 있다. 매 순간 실재의 총합은 늘어나고 있으며, 매 순간마다 등장하는 생각들에 실재의 총량에 대응하는 표지를 부여한다면, 최소한 그 생각들이 당시의 현재에 일어났다는 것을 보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실재의 증가에 대응하여 현재를 등록하는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위와 같이 답변한다고 하여도, 실재성의 측면에 있어 과거가 현재와 다를 바 없다는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과거와 미래 모두 비실재적이라고 바라보는, 시간에 대한 현재주의적 개념에 관심을 갖게 된다.

 

6.7. 현재주의의 다양성

    현재주의는 현재가 아닌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이 입장은, 실재가 연속하는 현재로 구성된다는 주장과 결합하여 시간에 대한 역동적인 관점이 된다. 이 입장을 지지하는 비글로우(Bigelow)에 따르면, 시공간에 대한 4차원적 관점과 시간 여행에 관한 상상은 19세기의 산물이며, 그 이전까지 서양 세계에서는 현재주의적 시간관념이 지배적이었다. 가장 납득할 만한 판본의 현재주의는 우주 규모의 지금또는 동시성의 평면을 가정하는데, 이는 아인슈타인의 이론과 상충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현재주의는 이러한 상충이 실제로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점을 보일 필요가 있는 상황이다.

  

   현재주의에 관한 공통적인 형이상학적 문제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현재는 지속을 갖는가? 지속을 갖는다면 얼마나 갖는가? 이에 대한 그럴듯한 대답은 아마도 순간적이거나 매우 짧은 지속을 갖는다일 것이다. 둘째, 과거가 실재하지 않는다면 과거에 일어난 명확한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특히 우리가 참됨생성자 원리를 받아들일 경우, 과거 사실의 참됨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둘째 물음에 대해 현재주의자는 다음과 같이 대응할 수 있다. 우선, 그는 과거에 대한 참된 진술이 없다고 주장할 수 있겠는데, 이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대응이다. 다음으로, 과거 진술의 참됨생성자는 모두 현재에 존재한다는 과거에 대한 환원주의적 입장을 취할 수 있다. 하지만 환원주의적 입장을 취하면, 과거가 불변하지 않게 되고 과거의 상당부분이 사라진다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귀결들이 도출된다는 문제가 생긴다. 물론 전지전능한 관찰자가 추론할 수 있는 과거로 과거의 영역을 넓힐 수 있으나, 세계가 비결정적이거나 혼돈(chaos) 이론의 나비효과를 감안하면 여전히 이는 문제로 남게 된다.

  

   이제 다양한 형태의 현재주의를 조망해보면서 역동적 현재주의가 직면하는 문제들을 명료하게 파악해보자.

 

6.8. 유아론적 현재주의

    유아론적 현재주의는 오직 현재의 순간만이 존재한다는 입장이다. 유아론적 현재주의의 문제는 다음과 같다. 만약 오직 현재의 순간만이 존재한다면, 왜 우리는 과거를 가지는 것처럼 보이는가? 반면 과거가 있다고 전제하면 많은 현상들이 잘 설명되는데, 이를 최선의 설명으로부터의 논증(argument from best explanation)’이라고 한다. 빅뱅 이론과 자연선택 이론을 사용하면 복잡하고 조직화되어 있는 현재에 대한 설명이 가능하다. 따라서 유아론적 현재주의의 입장을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6.9. 다세계 현재주의

    다세계 현재주의란, 서로 시간적으로 관련되어 있지 않은 다수의 순간적인 현재들이 실재를 구성한다고 보는 입장이다. , 시간이 없는 순간적인 세계들의 복합체(ensemble)가 실재를 구성한다. 이 입장은 역동적인 세계관은 아니며, 블록 우주 관점과도 다르다. , 과거, 현재, 미래 모두 실재한다고 본다는 점에서 블록 이론과 유사하다. 이 이론에서는 서로 다른 현재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서로 다른 시간에 관한 진술들을 위한 잠재적인 참됨생성자가 존재한다. 블록 이론을 사용하여 비유하자면, 4차원 시공간 블록을 얇게 자른 뒤 잘린 조각들이 시간적 관계를 갖지 않게 섞으면 다세계 현재주의가 된다.

  

   다세계 현재주의에서 과거에 대한 진술은 다음의 조건들이 충족되면 참이다. 첫째, 해당 진술이 정확하게 기술하는 한 개 이상의 실재 조각을 실재가 포함한다. 둘째, 사건들이 발생했다고 알려진 시간은 최상의 대응방법으로 생성된 질서에 따라서 정렬된 실재 조각의 위치에 대응된다. 다세계 현재주의는 이와 같은 방식으로 과거 진술의 참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이 입장은 다음과 같은 반직관적인 측면을 갖고 있다. 이 관점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이 관련이 없는 서로 다른 많은 세계들에서 분산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실재가 서로 독립적인 다수의 실재 조각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가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은가?

  

   하지만 현대물리학의 최신 연구는 다세계 현재주의에 옹호적인 것처럼 보인다. 바버(Barbour)는 저서시간의 종말(1999)에서 실재는 복잡한 세계 조각들을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초적인 양자 법칙들은 다양하게 가능한 진화들 중 어떤 것이 현실화될 것인지를 구분하는 방법을 제시하지 않기 때문에, 양자역학의 다세계 해석을 옹호할 수 있다. 양자이론과 일반상대론을 통합하려는 최근의 시도 중 성공한 사례는 휠러-드윗 (Wheeler-DeWitt)’ 방정식인데, 이 방정식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우주 전체는 정상상태에 있는 거대한 분자와 같다.

  

   휠러-드윗 방정식에 따르면 우주에는 시간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시간에 따른 변화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우주는 무한한 수의 순간적인 3차원적 세계들로 구성되어 있다. 삼차원적 세계 절편들은 서로에 대해 시간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이르고 느린 것도 없다. 이 방정식과 관련된 정준 양자 중력 프로그램은 양자 중력에 관한 동시대의 접근들 중 유망한 접근이며, 다세계 현재주의는 이와 같은 물리 이론에 의해서 뒷받침된다고 볼 수 있다.

  

   우리의 세계는 시간적으로 관련이 없는 순간들의 광대한 복합체이고, 각각의 순간들은 물리적 사물들의 3차원적 형태(configuration)로 구성된다는 다세계 현재주의는, 심각하게 고려해 볼 만한 관점이다.

 

6.10. 역동적 현재주의

    비교적 가장 쉽게 수용할 수 있는 현재주의는 역동적 현재주의다. 역동적 현재주의에 따르면, 오직 현재만 실재하지만 현재는 연속적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이 입장은 다른 시간과 사건이 존재함을 수용할 수 있다. 역동적 현재주의에 관련된 많은 장애물들이 있고, 이러한 장애물들을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작업들이 이루어졌다.

  

   ◎ (다른 입장과) 구분되는 입장(doctrine)인가?

    역동적 현재주의가 연이은 현재들을 받아들임으로써 다른 입장들과의 차이가 흐려지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역동적 현재주의는 블록 이론가의 입장과 큰 차이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 사건이 발생하는 순간을 현재라고 명명하는 것은 블록 이론가 역시 받아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존재에 관한 제한적주장과 비제한적주장을 구분하면 두 입장 사이의 차이가 드러난다고 대응할 수 있다. “무엇이 존재하는가?”라고 물었을 때, 블록 이론가는 블록 우주의 과거, 현재, 미래를 포함하는 완전한 사건사물들의 목록(비제한적 주장)을 제시할 것이다. 반면, 역동적 현재주의자는 답변이 제시되는 시간 t에만 해당하는 사건사물들의 목록(제한적 주장)을 제시할 것이다.

  

   역동적 현재주의자는 존재 양화사를 2가지로 구분한다. 첫째, 일반적인 존재 양화사이며 이는 과거의 사실들에 대해서도 적용된다. 둘째, 기초적 존재 양화사이며 이는 현재 존재하는 사물들에만 한정된다. 역동적 현재주의자 입장에서는 존재 양화사가 구분되지만, 블록 이론가의 입장에서는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사물들이 동등하게 존재하기 때문에 존재 양화사가 구분되지 않는다. 요약하면, 현재주의자와 블록 이론가 사이에는 존재의 측면에서 입장 차이가 있다.

  

   ◎ 과거의 문제

    현재주의자는 과거가 실재하지 않으면서도 과거에 대한 참이 존재하는 것을 설명할 필요가 있다. 현재주의자는 과거가 실재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에 과거에 대한 참됨생성자를 도입할 수 없다. 또한, 현재주의자는 인과성의 실재성과 자신의 입장을 양립가능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더 구체적인 문제에 직면한다. 현재의 사건사물을 인과적으로 유발한 과거의 사건사물의 실재성을 설명해야 하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현재주의자는 고유명사의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만약 과거가 실재하지 않는다면 소크라테스도 실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소크라테스라는 이름은 어떤 종류의 의미를 갖는 것일까? 이러한 과거에 관한 문제들에 대해 환원주의의 입장을 취할 수 있겠지만, 앞서 살펴본 것처럼 환원주의적 대응은 많은 문제점들을 갖고 있다.

  

   ◎ 루크레티우스적 선택지

    스토아철학자였던 루크레티우스는, 실재는 현재 존재하는 원자들과 진공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 현재 존재하는 사물들이 갖고 있는 특정한 종류의 속성이 과거에 대한 주장의 참됨생성자라는 것이다. 비글로우에 따르면, 현재 사물들의 속성들을 소유하는 것으로 과거 또는 미래 시제의 사물들을 표현할 수 있다. , 과거는 현재의 루크레티우스적 속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입장에 따르면, 인과는 현재에 참인 명제들 사이에 성립하는 것이지 이르고 늦은 사물들 또는 사건들 사이의 관계가 아니다. 또한 이 입장은 특정한 종류의 속성을 인정하는 방법을 사용하여 앞서 언급된 고유명사의 문제를 해결한다. 소크라테스라는 개체의 본질(속성)은 소크라테스라는 개체가 소멸하더라도 유지된다. 그렇기 때문에 개체인 소크라테스가 실재하지 않더라도 소크라테스라는 고유명사는 하나의 속성을 뜻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선택지에도 문제가 있다. 루크레티우스적 속성의 정체가 불분명하다. 속성이란 관계적이거나 내재적인데, 루크레티우스적 속성이 관계적인 것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이 속성을 내재적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우리의 세계와 같은 복제 세계 W1을 만들었다고 하자. W1은 과거가 없기 때문에 루크레티우스적 속성을 가지지 않는다. 하지만 실제로 두 세계 사이에는 별다른 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루크레티우스적 속성을 내재적인 속성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 대용적(ersatzer) 현재주의

    루크레티우스적인 선택지 이외의 대안이 있는데 이를 대용적 현재주의라 한다. 이 입장에서는 과거 시제의 진술들에 대한 참됨생성자를 이른바 대용적 B-계열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우선, 특정 순간에 세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완전하고 가장 상세하게 기술하는 명제를 완전한 순간적 상태(complete instantaneous state, CIS) 명제라고 하자. 이 명제는 추상적인 개체이다. 현재주의자는 시간이 CIS 명제들의 집합이라고 대응할 수 있다. CIS 명제들이 추상적 존재자들이기 때문에, 이 명제들은 숫자 또는 집합처럼 영구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

  

   CIS 명제들은 상호 간에 관계를 가질 수 있다. 그 중에서도 ‘E-관계‘~이전의관계라고 한다. 이 관계는 명제라는 추상적 개체들 사이에서의 관계이므로 비시간적이지만, 비대칭적비반사적추이적 성격을 갖는다. 현재주의자 입장에서 대용적 B-계열이란, CIS 명제들이 ‘E-관계에 의해서 질서지어진 집합이다. 대용적 B-계열을 지지하면 시제적 속성을 사용하지 않고서도 전과 후에 대해서 얘기할 수 있다. 과거와 미래의 시간과 사건들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현재주의자는 인과성 역시도 쉽게 다룰 수 있다. 특히, 인과성에 대한 규칙성 이론가들의 견해를 쉽게 수용할 수 있다.

  

   하지만 대용적 B-계열 입장은 다음과 같은 난점들이 부딪친다. 첫째, 과거의 개체에 대한 단항 지시를 블록 이론처럼 단순하고 견고한 방식으로 수용하지 못한다. 둘째, 인과는 존재를 산출하는 관계라는 널리 수용되는 관점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셋째, CIS 명제들은 대용적 B-계열에 포함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왜 하필 E-관계를 사용하는 대용적 B-계열을 받아들여야 하는가? 무엇이 그러한 선택을 하게 만드는가? 현재주의자는 이러한 물음에 대해 답변하기 어려울 것이다.

 

6.11. 혼합적 현재주의

    다세계 현재주의, 역동적 현재주의 외에 시간에 대한 현재주의적 모형을 발전시키고 있는 다른 방법이 있는데, 이를 혼합적 현재주의라 한다. 공존하지만 동시적이지는 않는 매우 짧은 두 개의 실재 조각 AB를 생각해보자. A는 시간 t1, B는 시간 t2에 속한다. t2에서는 AB가 공존하지만, t3에서는 BC가 공존하고, t4에서는 CD가 공존한다. ‘XY가 동시적으로 또는 연속적으로 공존하면 XY만큼이나 실재한다는 정의를 받아들이면, t2에는 B라는 사건만이 발생하지만, t2에서 ABC가 실재한다고 볼 수 있다.

  

   실재의 조각들이 그 자체로서 존재하지 않고, 현재가 유일하게 하나이지도 않은 까닭에 이 입장을 혼합적 현재주의라 부른다. 실재의 총합은 단일한 현재에 국한되지 않으며, 절대적 생성은 절대적 소멸과 대응한다. 이 입장에서는 2개의 잇따르는 실재 조각 A, B가 공존하므로 통시간적 관계(인과관계)에 대한 문제가 없어진다. 뿐만 아니라 이 입장은 변화의 개념 역시 쉽게 수용할 수 있다.

  

   이러한 혼합적 현재주의에 대해, 실제로 혼합적 현재주의는 일상적 시간과 직교하는 추가적인 시간적 차원을 도입해야 하며, 이는 자연히 맥태거트의 역설을 수반할 것이라는 반론이 가능하다. 혼합적 현재주의자는 이러한 반론이 선결문제 전제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대응할 수 있다. 혼합적 현재주의자의 입장에서 볼 때 실재의 총량은 시간에 따라 달라지므로, 별도의 메타 시간을 설정할 필요 없이 하나의 시간 차원만으로도 충분하다.

  

   과연 혼합적 현재주의에서 공존의 관계는 비전이적일까? 만약 전이적이라면 이 입장은 블록 이론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혼합적 현재주의자는 공존 관계가 대칭적이지만 전이적이지는 않다고 대응한다. , 사건들은 존재하기를 중단할 수 있으며 존재하게 될 수 있다. 혼합적 현재주의의 또 다른 문제는 과거의 지위가 모호해진다는 데 있다. 과거가 공존할 경우 과거는 실재적이지만, 공존하지 않게 되면 과거는 비실재적인 것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이 때 실재하는 과거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비실재적인 과거가 문제가 된다.

  

   여기서 혼합적 현재주의자는 다음과 같은 사실적 유전 원리를 도입한다. 시간 t에서 참인 것은 시간 t와 공존하는 다른 모든 시간에서도 참이라는 것이다. 이 원리를 받아들이면, t1에서 참인 것이 t3에서도 그 참됨을 유지할 수 있다. , 더 이상 실재하지 않는 시간과 사건들에 대한 참인 사실들이 있을 수 있게 된다. 과연 이러한 사실적 유전 원리가 참일까? 이 원리는 우리의 일상적인 상식으로 수용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복합적 현재주의에서 공존 관계가 대칭적이라는 것이 문제다. 이 입장에서는 공존 관계가 대칭적이므로 시간의 방향을 결정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겉보기에 시간이 갖고 있는 방향성을 별도로 설명해야 한다는 부담이 생긴다. 또한, “사실적 유전 원리는 과거 뿐만 아니라 미래에도 적용되므로, 미래의 진술들 역시 결정된 진리값을 갖는다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결론이 도출된다.

    

   이상과 같이 시간에 대한 블록 우주 모형에 대한 역동적인 대안들인 성장하는 블록 이론, 역동적 현재주의, 혼합적 현재주의 등을 살펴보았다. 만약 이 입장들이 형이상학적으로 이해가능하다면, 이들 중에서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형이상학 그 너머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의 논의한 바의 공통적인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시간의 역동적 모형은 전이적인 시제적 속성을 요구하지 않는다. 둘째, 시간의 역동성 여부는 시간의 방향성과는 구분되는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