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연구 이야기

배리 데인튼, [시간과 공간] 요약 정리 01: 기초적 내용

강형구 2016. 3. 16. 06:26

 

1장 : Preliminaries (기초적 내용)

   이 장에서는 시간과 공간에 관련된 가장 중요한 형이상학적 주제들을 소개한다. 그리고 공간에 적용되지 않는 시간 고유의 문제들에 대해서도 소개한다.

    

1.1. 존재론 : 시간과 공간의 존재

    시간과 공간은 존재하는가? 시간과 공간은 별, 행성, 원자, 사람들처럼 독자적인 자격을 갖는 개체들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 물음에 쉽게 답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시간과 공간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시간과 공간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다. 뉴트리노, 역장 등과 같은 물리학적 개체들도 보이지 않지만 그 존재를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

  

   실체론(substantivalism)은 시간과 공간이 독자적으로 존재한다고 보는 입장이다. 관계론(relationism)은 시간과 공간이 독자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입장이다. 실체론자는 시공간이란 모든 장소와 시각에 퍼져 있는 연속적이고 보편적인 매개체(medium)와 같다고 본다. 마치 대양이 수중 생물들을 담고 있는 것과 유사하다. 관계론자는 사물들 사이에 시간과 공간적 관계들이 존재한다고 인지하더라도 시간과 공간의 독자적 개체성을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고 본다.

  

   실체론자가 맞다면 시공간은 우주에서 가장 큰 사물이다. 관계론자가 맞다면 우주는 좀 더 경제적인 구조를 갖게 된다.

 

1.2. 구조에 관한 물음들

    실체론과 관계론 중 어떤 입장을 취하더라도 시공간에 대한 구조적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시공간의 구조에 대한 다음과 같은 주장들을 살펴보자.

    ① 공간은 크기가 무한하고, 3차원이며, 유클리드적이고, 등방적이며, 연속적이다.

    ② 시간은 무한하며, 일차원적이고, 선형이며, 비등방적이며, 연속적이다.

    ③ 오직 하나의 시간과 공간만 있다.

    ④ 물질적인 사물의 존재 또는 부재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뜻에서, 시간과 공간은 절대적이다.

    위와 같은 주장들은 그럴 듯하지만 참인 것은 아니다. 공간을 비등방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고, 비유클리드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며, 시간은 선형이 아니라 분기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실체론-관계론 논쟁과 관련되는 시간과 공간의 구조적인 측면들을 다룰 것이다.

 

1.3. 물리학과 형이상학

    선험적 추론을 통해 수립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필연적 사실이 있을까 그렇지 않을까? 수학과 과학이 시간과 공간을 생각하는 새로운 방법을 철학에 제공한 것은 사실이지만, 수학과 과학만으로는 시공간에 대한 모든 물음들이 해결되지 않는다.

    공간이 무한하다는 것을 주장하는 형이상학적 논증과, 이에 반대하는 형이상학적 논증에 깔려 있는 전제들은 19세기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발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이렇듯 물리학과 형이상학은 어느 정도 상호의존적이다. 또한 과학 이론의 형이상학적 함축이 불명료한 경우가 잦다. 따라서 이에 대한 별도의 형이상학적 탐구가 필요하다.

    형이상학은 그 고유의 영역 및 탐구 방법을 갖는다. 물리학과 같은 과학의 영역을 벗어난 물음들이 있고 개념적인 주제들이 있다. 만약 자연법칙이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 우연적인 것이라면, 우리와는 다른 종류의 자연법칙을 갖고 있는 세계도 가능하다. 시공간적 성격을 띠려면 세계는 어떠해야 하나? 시간과 공간은 어떠한 형식을 띨 수 있나? 이런 물음들에 답하고자 시도하면서 다양한 개념들을 착안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지금 현재 가장 근본적이라고 여겨지는 물리학 이론들 역시 불완전하다. 따라서 현재의 물리학 이론들이 이와 같은 형이상학적 물음들에 대해 최종적인 답변을 제시해준다고 보기 어렵다.

 

1.4. 시간 : 거대한 분리

    공간에게는 적용되지 않지만 시간에게는 적용되는 주제가 있다. 그것은 시간이 1차원이며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과연 시간의 화살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시간의 화살은 열역학 제2법칙,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과는 다르다. 시간의 화살은 시간 안에 있는 사물들이 아니라 시간 그 자체에 속하는 것이다.

    시간은 흐른다. 미래는 현재가 될 것이고, 현재는 과거가 될 것이다. 과거인 것은 한때 현재였다. 이를 “시간적 진행”이라고 하며, 공간에는 이에 대응하는 것이 없다. 시간에 대한 “역동적 관점(dynamical view)”은 “시간적 진행”이 의식적 존재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실재의 객관적 측면이라고 보는 입장이다. 이 관점의 지지자들은 “현재”가 과거로부터 미래로 이동한다고 보거나, 오직 과거와 현재만 실재하며 미래는 실재하지 않는다고 보거나, 오직 현재만 실재한다고 보는 사람들로 나뉜다.

    반면에 “블록(block) 관점”, “4차원주의 관점”, “영원주의”는 시간의 모든 순간들이 동등하게 실재한다고 보는 관점이다. 이 관점에서 시간 속 순간들은 공간에서의 점들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처럼 동시에 존재한다. 물론 순간들 사이에 순서는 있다. 이 관점이 “블록 관점”이라 불리는 것은, 수정 고체의 블록 안에 플라스틱 형체들이 늘어서 있는 것과 유사하게 시간을 보기 때문이다. 실체론자는 이 블록 안에 3차원의 공간과 1차원의 시간 모두가 포함되어 있다고 본다. 관계론자는 이 블록 안에 별도의 매개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역동적 관점”과 “블록 관점”의 대립은 아주 유서 깊은 것으로, 이는 고대 그리스에서의 헤라클레이토스와 파르메니데스 사이의 대립과 유사하다. 일반 사람들은 “블록 관점”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실제 과학적 사실과는 상반되는 여러 가지의 일상적인 직관을 갖고 있다. 또한 우주는 인간의 선입견 또는 선호를 따를 필요가 없다. 따라서 “블록 관점”을 단순히 옳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곤란하다. 만약 “블록 관점”이 옳다면 우주의 영역은 큰 폭으로 확대될 것이다.

 

1.5. 2개의 관점

    철학자 맥태거트는 시간에 대한 역동적 관점과 비역동적 관점이라는 두 가지 사고 방식을 분명하게 구분하였다. 다음의 두 가지 표현을 비교해 보자. “폭탄은 지금으로부터 4일 후 터질 것이다.” “폭탄은 2015년 8월 8일에 터질 것이다.” 첫 번째 표현은 현재를 지칭함으로써 시간적 사건을 지시한다. 두 번째 표현은 현재를 전혀 지칭하지 않고서도 시간적 사건을 지시한다. 첫 번째 표현을 A-계열 표현이라 하고, 두 번째 표현을 B-계열 표현이라 한다.

    A-계열 속에서 사건들은 먼 과거, 과거, 현재, 가까운 미래, 먼 미래 순으로 흘러간다. 하지만 B-계열은 현재와 독립적인 사건들의 계열이다. A-계열에서의 시간이 시제가 있는 개념이라면 B-계열에서의 시간은 시제가 없는 개념이다. 이 두 개의 계열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하나의 단일한 시간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관점이라고 볼 수 있다. B-계열의 진술은 진리값이 변하지 않지만, A-계열의 진술은 “현재”가 계속 바뀌는 까닭에 그 진리값이 바뀐다.

 

1.6. 용어 정리

    ① 블록 관점 : 모든 시간과 사건들은 시간에 무관하게 공존하며 모두 동등하게 실재한다. 시간적 진행은 실재하지 않는다.

    ② 역동적 관점 : 시간적 진행은 실재하며, 시간은 공존하는 시간과 사건들의 총체가 아니다. 요약하면, 블록 관점은 틀렸다.

    ③ 시제 이론 : 시간의 본성에 대한 형이상학적으로 충분한 설명에서는 과거, 현재, 미래와 같은 A-개념들이 본질적이며 제거될 수 없는 역할을 한다.

    ④ 비시제 이론 : ‘동시적’, ‘~보다 이른’, ‘~보다 늦은’과 같은 B-개념들만으로도 시간에 대한 형이상학적으로 충분한 설명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