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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사와 과학철학 강의 구상

나는 현재 경상국립대학교에서 [비판적 사고]와 [과학기술과 철학] 과목을 강의하고 있다. 이 두 과목은 대학 출판부에서 발간한 훌륭한 표준 교재를 갖고 있어 강의하기가 참 편리하다. 하지만 이 두 과목이 내가 생각하는 대학생들을 위한 [과학사] 및 [과학철학] 교양 강의와 완전하게 합치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나는 때때로 대학생 수준의 [과학사]와 [과학철학] 강의를 별도로 구상하곤 한다. [과학사]의 표준 교재로는 임경순․정원의 “과학사의 이해”(다산, 2014)를 들 수 있다. 이 표준 교재를 적절히 15주 정도 분배하여 수업한다면 무난할 것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한 교재로 데이비드 린드버그의 “서양 과학의 기원들”이 있으며, 피터 보울러 등이 쓴 “현대 과학의 풍경”이 있다. 우리나라의 과학사 전공자..

잘하는 것이 아니라 버티는 것

돌아보면 정말 그런 것 같다. 나는 잘 해왔다기보다는 끈질기게 버텨왔다. 뭐든 잘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나는 오직 몇 가지를 계속 붙들고 끈질기게 그것을 계속 해 왔다. 왜 나는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버티는 사람인 것인가? 마음에 안 든다. 그런데 마음에 안 들어도 그게 나다. 다시 말해, 나는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버티는 사람이다. 공격과 수비로 따지면 나는 늘 수비하는 사람이다. 보수적인 관점에서 수비만 하니까 급격하고 혁신적인 변화를 이루지는 못한다. 때로는 과감하게 공격적인 태도를 갖고, 이전에 이루지 못했던 일들을 이루어야 한다. 요즘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나는 너무 보수적이고 소극적으로 철학을 하는 것이 아닌가? 좀 더 적극적으로 나의 모두를 걸고 실패의 위험을 충분히 끌어안으며 과감하고..

주말만 되면 도지는 병

내가 지금도 너무 감사하게 생각하는 일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내가 육군 장교로 군 복무를 할 때 홍천도서관 근처에서 살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대한민국 남자 중에 군대에 정말 가고 싶어 군 복무를 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나 또한 그랬다. 나는 철학, 특히 과학철학을 계속 공부하고 싶었지만, 성적이 좋지 않았고 집안 형편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런 내게 철학 공부는 사치처럼 여겨졌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해야 얻을 수 있는 일종의 안식이었다. 군 복무는 내게 고통스러운 의무였다. 그래서 나는 주말만 기다렸다. 주말에는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 홍천도서관에서 종일 시간을 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시절에 내 인생을 바꾼 기적이 일어났다. 예나 지금이나 내 블로그는 그다지 인기가 없..

즐겁게 해 나가는 것

일이 바빠도 짜증을 내지 않고 즐겁게 해 나가는 요령을 익히는 것은 중요하면서도 쉽지 않다. 화내지 말고, 짜증 내지 말고, 약간만 더 수고하면 무난하게 풀리는 일들이 참 많다. 그 아주 짧은 순간을 지혜롭게 참아내면 이후 훨씬 더 긴 시간을 시달리지 않아도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나는 대학 졸업 이후 지금까지 제법 오랫동안 사회생활을 하고 있지만, 아직 이런 점에 있어서 퍽 미숙한 것 같다. 여전히 일을 하며 가끔씩 화를 내고 짜증을 낸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지금은 나의 상황이 많이 좋아졌다. 사실 나는 요즘 ‘더 바랄 게 없다’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아내와 함께 단란한 가정을 이루었고, 부모님과 장모님도 차를 운전하면 2시간 이내에 도착할 수 있는 곳에 살고 계셔 필요할 때면 부담 없이 찾아뵐 수..

일상 이야기 2023.10.12

예배, 차례, 관용

추석 전 성묘를 하지 못해서 어제(10월 7일) 오전에 경상북도 성주에 있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묘소에 다녀왔다. 묘소 바로 아래에는 예전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쓰시던, 이제는 큰아버지께서 관리하는 집이 있다. 그로부터 차를 타고 5분 정도 내려오면 아버지께서 마련하신 작은 농막이 있다. 나는 아버지 농막에 들러 마른 멸치 조금과 소주 한 병을 챙겨서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뵈러 갔다. 생전에 할아버지께서는 소주를 참 좋아하셨다. 할머니께서 술을 드시는 모습을 본 적은 없었다. 절을 하며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모습을 떠올렸다. 할아버지에게서는 선비의 느낌이 났지만, 술과 육회를 좋아하셨고 욱하는 성미도 있으셨다. 할머니께서는 늘 부지런히 일하셔서 등이 구부러져 있었지만, 다른 사람이 ..

일상 이야기 2023.10.08

글 쓰는 시간

나는 과학철학자일까? 박사학위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물음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답하지 못할 것 같다. 왜냐하면 나는 지금껏 나름 고생을 해서 학위를 취득했지만, 나 자신이 확고한 과학철학자라고 이야기하기에는 아직 다소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과학철학 연구자’라는 명칭이 나에게는 더 편안하고 마음에 든다. 다만 나에게 제법 확실한 사실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내가 ‘글 쓰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 나는 강한 확신을 갖고 있다. 나라는 사람에게 글쓰기는 삶의 핵심적인 에너지원이다. 내가 글 쓰는 습관을 들인 것은 중학교 시절이었는데, 아주 우연한 계기에서였다. 내가 다녔던 중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매일 일기쓰기를 의무적으로 시켰다! 약간 특이한 학교이긴 했다. 교실 바닥이 마루..

일상 이야기 2023.10.05

물은 이기는 것이 아니라 다스리는 것

의외로 사람들은 물을 쉽게 혹은 우습게 본다. 대개 “나를 물로 보나?”라는 말은, 어떤 사람이 나를 쉽게 혹은 우습게 생각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때로 우리는 “물 흐르듯 살아라.”라는 말을 듣기도 하고, “물보다 무서운 것이 없다.”라는 조언을 듣기도 한다. 전반적으로 볼 때 나는 물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보다는 긍정적인 태도를 갖고 있다. 나는 평소에는 물처럼 있는 듯 없는 듯 살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꼭 필요한 만큼만 존재감을 드러내면서 해야 할 일을 해내는 것을 선호한다. 삶은 전체적으로 볼 때 물의 흐름과도 같은 것인지 모른다. 삶을 잘 살기 위해서는 물의 흐름을 거슬러서는 안 된다. 우선 물에서 살기 위해서는 물에서 뜨는 법을 배워야 한다. 내 마음대로 발버둥 친다고 해서 물에 뜰 수 있는..

일상 이야기 2023.10.01

아버지와의 목욕

추석이라 어제 오후 반차를 써서 대구에서 부모님이 계시는 부산으로 내려왔다. 차가 좀 막히긴 했지만, 저녁 6시 30분쯤 부모님 댁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짐을 풀고 온 가족이 저녁 식사를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요즘 한창 아시안 게임이 유행이라 다른 가족들은 열심히 텔레비전으로 각종 스포츠 경기들을 시청했고, 나는 며칠 전에 주문한 인공지능 관련 책을 틈틈이 읽었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는 오늘날을 살아가는 필수 소양이고, 특히 과학관에서 과학교육을 담당하는 중인 나로서도 꼭 익혀야 하는 지식이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니 아버지께서 목욕탕에 가자고 하셨다. 나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셋째 아이인 아들 태현이도 같이 데려가려 했으나, 오늘 아침에 아이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 것 같아서 그냥 ..

일상 이야기 2023.09.28

블로그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제 블로그에 쓰이는 대부분의 글들은 저의 독백과도 같은 글이지만, 이번 글은 특별히 블로그 독자 여러분을 위해 쓰고자 합니다. 우선 저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꾸준하게 방문해주시고 제 글을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평소 저는 그렇게 말이 많은 편이 아닙니다. 어쩌면 말로 표현을 잘 못하는 편이라 이렇게 글을 통해서라도 제 자신을 표현하려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글로 표현되는 저의 모습과 실제로 만났을 때의 저의 모습이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 저는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매우 사랑합니다. 예전부터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당연히 사랑한다고 해서 그것을 잘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학자 혹은 연구자로서의 저의 역..

일상 이야기 2023.09.23

차분한 나날들

다른 사람들은 나를 이상적인 혹은 비현실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내가 생각할 때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며 지극히 현실적인 의사 결정을 일관되게 해왔다. 내가 과학고등학교를 자퇴한 것은 내신 성적이 불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과학고등학교에서 교과과정 학습이 거의 끝나는 고등학교 2학년 여름에 자퇴했다. 자퇴 후 나는 응시 계열을 이과에서 문과로 바꿨는데, 왜냐하면 나의 경우 이과보다는 문과 계열 과목들에서 더 성적이 잘 나왔기 때문이다. 자퇴 후 나는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 대입 입시학원에 등록했다. 과학고를 자퇴했던 까닭에 나는 학원에서 다른 과학고 자퇴생들과 함께 일종의 특별대우를 받아 매달 8만 8천원만을 내고 학원에 다닐 수 있었다. 나는 대입 입시학원에 다닐 때도 학원에..

일상 이야기 2023.0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