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연구 이야기

과학사와 과학철학 강의 구상

강형구 2023. 10. 23. 21:18

   나는 현재 경상국립대학교에서 [비판적 사고]와 [과학기술과 철학] 과목을 강의하고 있다. 이 두 과목은 대학 출판부에서 발간한 훌륭한 표준 교재를 갖고 있어 강의하기가 참 편리하다. 하지만 이 두 과목이 내가 생각하는 대학생들을 위한 [과학사] 및 [과학철학] 교양 강의와 완전하게 합치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나는 때때로 대학생 수준의 [과학사]와 [과학철학] 강의를 별도로 구상하곤 한다.

 

   [과학사]의 표준 교재로는 임경순․정원의 “과학사의 이해”(다산, 2014)를 들 수 있다. 이 표준 교재를 적절히 15주 정도 분배하여 수업한다면 무난할 것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한 교재로 데이비드 린드버그의 “서양 과학의 기원들”이 있으며, 피터 보울러 등이 쓴 “현대 과학의 풍경”이 있다. 우리나라의 과학사 전공자가 쓴 새로운 표준 교재가 등장한다면 좋겠지만, 아직은 “과학사의 이해”가 가장 무난하고 적절한 교재라고 생각된다. [과학사] 과목은 이해도 중요하지만, 암기하는 것도 중요하다. 기본적인 사실적 사항들은 정확하게 암기하고 있을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중간, 기말고사에 객관식 문항이 필요하다. 중간고사 25점, 기말고사 25점, 조별 발표 25점, 보고서 25점. 출석 점수는 반영하지 않으나, 다만 4회 이상 결석하면 Fail로 평가한다.

 

   [과학철학]의 표준 교재로는 피터 스미스의 “이론과 실재”(서광사, 2014)를 들 수 있다. 앨런 차머스와 제임스 래디먼이 쓴 책이 있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 보면 피터 스미스의 이 책이 제일 무난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차머스와 래디먼의 책은 보조 교재로 활용할 수 있다. 피터 스미스의 책에 대한 다른 좋은 대안으로 장하석 교수의 “과학, 철학을 만나다”(지식플러스, 2015)가 있다. 또한 장하석 교수의 “온도계의 철학”과 “물은 H2O인가?”가 번역되어 있으므로, 그의 책들은 한국에서 과학철학을 가르칠 수 있는 아주 좋은 선택지가 된다. 장하석 교수는 세계적인 수준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과학철학자이므로 학생들에게도 적절한 지적 자극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표준적인 수준의 과학사 및 과학철학을 “가르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기존에 나와 있는 표준적인 교재를 선택하여 이를 강의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의를 새로운 책 또는 새로운 논문을 쓰기 위한 자극으로 삼으려는 사람은 이 정도의 수준에서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그 사람은 수업을 계기로 자신만의 독특한 글을 쓰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이러한 야심을 갖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우선 다른 학자가 쓴 좋은 표준 교재를 지침으로 삼아 여러 해 동안 강의한 후, 이를 바탕으로 조금씩 자신만의 독창적인 강의와 저술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과학사 표준 교재, 과학철학 표준 교재에 대한 나의 기준은 다소 낡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왜냐하면 이 책들은 이미 2014년과 2015년 정도에 출판된 책들이라 거의 10년 가까이 세월이 흘렀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교적 최근에 출판된 과학사와 과학철학 서적들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 그러고 보면 최근에는 내가 이런 기본 서적들에 대한 독서와 학습을 비교적 게을리해 온 듯하며, 이는 스스로 반성할 만하다. 틈을 내어 도서관에 들러 새로운 책들을 빌려 읽고 나의 기초적인 실력을 계속 가다듬어야겠다.

 

   세상의 흐름에 밀려 이리저리 끌려다니다 보면 정말 중요한 것을 잊게 된다. 직장의 일, 학문의 최신 경향 등에 신경을 쓰다 보면 내가 가장 탄탄하게 갖추고 있어야 하는 기본을 잊어버린다. 본말이 전도되는 일, 중요한 것을 경시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가장 기본이 되는 책은 거듭 많이 읽어 낡고 닳아야 할 필요가 있다. 겉보기의 세련됨, 겉보기의 참신함은 피한다. 결국 기초 체력이 튼튼해야 다른 그 어떤 일도 거뜬히 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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