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연구 이야기

실천과 멀리 있지 않은 철학

강형구 2023. 10. 27. 06:57

   나는 최근 인공지능 및 빅데이터 관련 책들을 읽고 있다. 요즘은 많은 경우 과학철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인공지능의 철학, 빅데이터의 철학을 연구할 수 있는 능력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전반적인 대세를 거스르는 것은 쉽지 않으며 옳지도 않다고 본다. 대세는 세속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고, 대세에는 대세가 되게 된 상당히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 이런 대세를 따라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를 공부하며 나는 퍽 즐거움을 느낀다. 나는 한국방송통신대학교에서 출간한 책인 [인공지능], [빅데이터의 이해와 활용]을 재미있게 읽고 있다.

 

   철학이라는 학문만큼 다양한 방식으로 이해되고 실천되는 학문도 없을 것이다. 인공지능의 철학이란 무엇이고 빅데이터의 철학은 과연 무엇일까? 나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과학철학이란 과학 내에서는 단시간에 객관적으로 해결될 수 없는 각종 의문이나 생각들을 표현하고 고민할 수 있는 별도의 담론적 공간을 제공해 주는 역할을 한다. 이런 의문이나 생각은 실제로 과학을 하는 사람들 마음속에 계속해서 떠오르지만, 이런 의문과 생각을 과학적 실천 속에서 명시적으로 다루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눈앞의 과학적 실천에서는 문제를 풀거나 실제로 실험 혹은 시험을 해서 구체적인 결과를 얻고 의도한 바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과학적 실천을 하면서 우리에게 떠오르는 여러 의문 혹은 생각이 ‘부수적’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은 눈앞의 필요에 부응하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며, 좀 더 성찰적인 사유를 하면서 자신이 생존을 위해 열심히 하는 일의 ‘의미’를 찾고자 한다. 그러므로 늘 사람들은 어떤 것의 ‘철학’을 필요로 한다. 내가 지금 살아 있는 것은 맞다. 그런데 내 삶의 의미는 도대체 무엇인가? 마찬가지로, 오늘날 지능화된 데이터 수집 및 연산 기기들이 우리 생활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고 서로를 복잡하게 연결하며 다양한 종류의 데이터를 수집 및 활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지금의 상황이 대체 어떤 메시지와 의미를 우리에게 던지고 있는가? 요약하면, 우리는 대체 우리에게 인공지능과 빅데이터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러한 우리의 열망을 위해 철학이라는 담론이 있는 것이다.

 

   가끔 철학자들의 모임에 참여해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너무 전문적인 철학 이야기가 계속 나와서 어렵고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당연히 전문화가 나쁜 것은 아니다. 전문화를 통해 학문적 논의의 깊이를 더 깊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과연 철학이라는 학문에 그러한 전문화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의구심을 갖는다. 왜냐하면 적어도 나에게 철학이란 구체적인 실천과 크게 떨어지지 않은 활동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수학책을 읽으면서 수학 문제 풀이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여러 생각들이 들 수 있는데(과연 자연수가 세계에 존재할까? 등등), 내 생각에는 그런 생각들을 자유롭게 나누고 다시 생각해 보는 담론적 공간이 바로 수학 철학이다.

 

   나는 그렇게 철학이 실천과 아주 가깝게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떤 것의 철학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것에 대해서 알아보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의 철학을 하려면, 우선 인공지능이 무엇인지, 현재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어떤 문제에 직면해 있고 어떤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나는 한 분야의 철학을 하기 위해 대개 그 분야를 서술하는 표준적인 개론서부터 읽기 시작하며, 그런 개론서를 읽으면서 내가 자연스럽게 떠올리는 생각들과 의문들에 주목한다. 내 생각에 철학자는 해당 분야의 구체적인 문제를 풀어 해결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그렇게 그 분야를 탐구하며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생각들과 의문들을 성찰하고 공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주는 사람이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나는 실천과 아주 가까이 있는 철학을 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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