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연구 이야기

잘하는 것이 아니라 버티는 것

강형구 2023. 10. 20. 05:26

   돌아보면 정말 그런 것 같다. 나는 잘 해왔다기보다는 끈질기게 버텨왔다. 뭐든 잘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나는 오직 몇 가지를 계속 붙들고 끈질기게 그것을 계속 해 왔다. 왜 나는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버티는 사람인 것인가? 마음에 안 든다. 그런데 마음에 안 들어도 그게 나다. 다시 말해, 나는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버티는 사람이다.

 

   공격과 수비로 따지면 나는 늘 수비하는 사람이다. 보수적인 관점에서 수비만 하니까 급격하고 혁신적인 변화를 이루지는 못한다. 때로는 과감하게 공격적인 태도를 갖고, 이전에 이루지 못했던 일들을 이루어야 한다. 요즘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나는 너무 보수적이고 소극적으로 철학을 하는 것이 아닌가? 좀 더 적극적으로 나의 모두를 걸고 실패의 위험을 충분히 끌어안으며 과감하고 공격적으로 철학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아내는 내게 종종 말한다. 그렇게 철학을 하고 싶으면 다른 것 다 그만두고 철학을 해. 그런데 나는 그렇게 하기가 너무나 힘들다. 왜냐하면 나는 나의 철학적 재능이 그다지 뛰어나지 않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이야기하면 다른 사람들은 답답해한다. 왜 나는 스스로 나의 가능성을 그렇게 제한하는 것인가? 정말 그곳에서 멈추어 만족할 것인가? 제대로 된 과학철학 연구자라면, 그저 학위를 받는 것을 넘어 세계가 인정할 수준의 뛰어난 연구 업적을 내놓아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나는 직장, 가정, 철학 중 그 어떤 것도 포기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이 셋을 위태위태하며 유지해 나간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가정을 돌보고, 그 모든 일들을 하면서도 계속 철학을 연구한다. 읽고, 생각하고, 쓰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이런 생활은 참으로 힘이 든다. 현재 내게는 내가 만들어 내는 철학적 산출물의 질적 수준에 관해 욕심을 가지는 것조차 일종의 사치로 여겨진다. 직장에 다니면서, 가정을 돌보면서 쓰는 논문에는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다. 물론 그 한계를 극복해야 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나다.

 

   그저 내가 믿는 것은, 이렇게 버티면서 계속 해 나가다 보면 조금씩 실력이 쌓여서 언젠가는 버티는 사람이 아니라 정말 잘하는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는 추측이다. 논문을 쓰는 것, 학술대회에 참석하는 것, 학회의 일에 참여하는 것 등을 계속 해 나가다 보면, 사람이 환경에 조금씩 본능적으로 적응하는 것처럼 나 역시 과학철학 연구자로서 적응하게 되어 제대로 된 연구자로서의 실력을 갖추게 될 것이라 믿는다. 물론 이렇게 버티면서 실력을 키워 나가는 과정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일정한 수준의 실력을 갖추게 될 것이라는 희망적인 생각은 힘이 들어도 계속 버티면서 철학적 활동을 해 나갈 수 있게 한다.

 

   현재 내가 생각하는 나의 가장 부족한 점은 영어로 된 학술 활동이다. 영어로 논문을 쓰고, 학술대회에서 영어로 발표도 하고, 영어 강의도 할 필요가 있는데, 아직 그럴 기회가 없었다. 어쩌면 그럴 기회가 몇 번 있었는데 내가 짐짓 두려움에 그 기회를 잡지 않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늘날 영어는 만국 공용어이며 영어를 통해서 한국을 넘어서 세계의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영어를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학술적인 활동에 참여하는 것은 학술적으로 제대로 된 인정을 받기 위해 필요하다.

 

   요즘 직장에서도 바쁘고 학술적으로도 이런저런 일들이 많다. 이 모든 일들을 다 해 나가는 과정이 참 빠듯하다. 그러나 어느 것 하나도 포기할 수 없다. 사면초가, 진퇴양난. 이런 상황 속에서 나에게 가능한 유일한 방법은 잘 버티는 것이다.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든 해 나가는 일이다. 쓰러지지 않고 끝내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아 계속하면, 언젠가는 탄탄한 실력을 갖춘 잘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을 가지고 버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