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연구 이야기

주말만 되면 도지는 병

강형구 2023. 10. 15. 09:39

   내가 지금도 너무 감사하게 생각하는 일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내가 육군 장교로 군 복무를 할 때 홍천도서관 근처에서 살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대한민국 남자 중에 군대에 정말 가고 싶어 군 복무를 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나 또한 그랬다. 나는 철학, 특히 과학철학을 계속 공부하고 싶었지만, 성적이 좋지 않았고 집안 형편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런 내게 철학 공부는 사치처럼 여겨졌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해야 얻을 수 있는 일종의 안식이었다. 군 복무는 내게 고통스러운 의무였다. 그래서 나는 주말만 기다렸다. 주말에는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 홍천도서관에서 종일 시간을 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시절에 내 인생을 바꾼 기적이 일어났다. 예나 지금이나 내 블로그는 그다지 인기가 없는 편이지만, 그때도 나는 글쓰기를 좋아했기에 주말에 홍천도서관에서 책을 읽다가 떠오른 생각을 블로그에 글로 남겼다. 나는 그때 “예술의 기능”이라는 제목의 글을 써서 올렸는데, 그 글에 유일한 댓글을 달았던 사람이 지금의 나의 아내였다. 그 댓글에는 싸이월드 미니홈피가 링크되어 있었고, 나는 그 링크를 따라 아내의 미니홈피를 방문해서 방명록을 남겼다. 공교롭게도 그때 아내는 교환학생으로 서울에 와 대학원 선배님의 수업을 듣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전역을 몇 달 앞두고 휴가를 나와 학교에서 아내를 처음 만났다. 아직 그날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아마도 나는 그날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석사학위 취득 이후 눈물을 머금고 취직 준비를 해서 한 공공기관에 입사했다. 그때 너무 필사적으로 취직 준비를 했던 까닭에 일시적으로 시력이 떨어졌었다. 그러나 취직 후에도 과학철학을 잊을 수가 없었다. 일찍 퇴근하는 날이나 주말이 되면 어김없이 카페에 가서 책을 읽고 글을 썼다. 그때도 여전히 철학 공부는 내게 사치였고, 능력과 돈 모두 부족한 내가 쉽게 누릴 수 없는 귀한 것이었다. 주말만 되면 내게 도지는 병은 과학철학 병이었다. 그 병 때문에 주말마다 도서관에 가서 책을 번역했고 그렇게 내 첫 번째 번역서 [양자역학의 철학적 기초]가 세상에 나왔다. 사실 내가 이 책을 정말 잘 이해해서 번역한 게 아니었다. 나는 출판사에 라이헨바흐의 좀 더 쉬운 책을 번역하자고 추천했지만, 기어코 출판사가 다른 책이 아닌 이 책을 번역하자고 해서 번역한 것이다.

 

   그냥 과학철학을 공부하는 게 너무 좋았다. 그뿐이다. 그러나 나는 사회적 존재로서, 한 가정의 아들로서 내가 해야 하는 각종 의무를 외면할 수 없었다. 나는 IMF 금융 위기 이후 조금씩 무너져 가던 한 중산층 가정의 희망이었고, 한 여성이 사랑하고 믿는 남자였다. 그런 내게 세상의 현실은 냉정했다. 나는 이 세상의 질서 속에 편입되어 내가 해야 하는 일들을 해내어야만 했다. 그래야 매달 통장으로 월급이 들어왔고, 다른 사람들 앞에 부끄럽지 않게 내세울 수 있는 직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 깊숙한 곳에서 나는 언제나 철학을 향해 있었다. 고등학교를 자퇴한 후 부산 서면에 있는 부전도서관의 자료실에서 하루 종일 책을 읽으며 공책을 끼적이던 그때부터 나의 운명은 철학이었다.

 

   지금도 그렇다. 한 주 내내 직장에서의 각종 일들에 시달리다 한숨 돌릴 수 있는 주말이 오기만 하면 다시 내 고질병이 도지기 시작한다. 편안한 음악의 흐름에 의식을 맡기고 커피 한 잔을 입에 머금은 다음 책을 펴 놓고 멍하게 창밖을 바라보고 있으면, 다시 과학철학에 대한 열망이 조금씩 내 안에 흐르는 피에 녹아든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 또 잊어버리고 있었구나. 나는 철저히 과학철학에 진심이던 사람이 아니었던가. 이 세상 그 누구도 나를 알아주지 않았을 때부터 나는 그렇게 진심이지 않았는가. 책을 읽고 생각하며 느꼈던 그 희열을 잊어버리지 말자. 내가 누구인지 다시 기억하자. 삶의 현실이 내 깊은 곳의 본성을 지울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적절한 시기에 다시 찾아와 준 나의 고질병을 반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