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연구 이야기

직장인과 학술인의 중간에서

강형구 2023. 8. 5. 08:47

   이른바 ‘교육과정’을 마치고 나면, 실질적으로 한 사람을 정의하는 것은 실제로 그 사람이 사회 속에서 생존을 위해 무슨 일을 하여 그에 따른 대가를 받느냐이다. 석사학위를 마치고 내가 처음 취직했던 기관은 교육부 산하의 위탁집행형 준정부기관인 한국장학재단이었다. 이 기관은 국가장학금 사업, 학자금 대출 사업, 대학생 교육 기부 사업과 같은 공공적 특성이 강한 일들을, 교육부를 대신하여 수행하는 기관이었다. 나는 대학생 교육 기부 사업과 행정 부서에서의 기획 업무(기관 및 부서 평가)를 했다. 이런 일들은 사회적으로 볼 때 바람직했지만, 나의 전공인 과학사 및 과학철학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일들이었다.

 

   장학재단에서의 5년 6개월 근무 이후 이직해서 지금까지 재직하고 있는 국립대구과학관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의 기타 공공기관이다. 대전에 있는 국립중앙과학관은 정부에서 직접 운영하는 책임운영기관이다. 그러나 중앙과학관만으로는 전국에 있는 국민의 수요를 만족시킬 수 없어, 수도권(과천), 대구(대구․경북), 광주(전라), 부산(부산․경남)에 국립과학관을 추가로 건립했다. 현재 강원 지역에 추가로 국립과학관을 건립(국립원주과학관)하고 있다. 국립과학관은 학교에서 제공하기 어려운 과학 교육 및 체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건립된 기관으로서, 상설 및 특별전시, 과학 교육 프로그램, 과학 문화 행사 등의 서비스를 일반 국민에게 제공하는 기관이다.

 

   연구자의 관점에서 볼 때 대학은 단연 독보적인 기관이다. 왜냐하면 대학의 주된 기능은 다른 그 무엇이 아닌 고등 수준의 연구와 교육이기 때문이다. 대학 교수는 주로 연구하여 논문을 쓰고, 대학생들과 대학원생들을 교육하는 일을 한다. 물론 나는 대학 교수가 된 적이 없고 오직 간접적인 경험(지인들로부터의)만을 갖고 있긴 하지만, 급여나 사회적 지위를 고려하지 않더라도, 대학 교수는 연구에 전념하기에 최적화된 직장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평범한 직장은 대학과는 다르다. 우선 철저히 조직의 논리를 따른다. 과학관만 해도 과학관장, 본부장, 실장, 실원이라는 위계적 질서가 형성되어 있고, 과학관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기획재정부의 지침을 따라야 한다.

 

   과학관은 매년 정부로부터 예산을 받아야 하고, 매년 관람객들로부터 수익금을 얻어 그 예산의 일부로 활용해야 한다. 그런 까닭에 늘 상급자(과기부, 기재부)와 고객(국민)의 필요를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과학관의 개인 교육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나 또한 그렇다. 업무 자체가 나 자신의 고유한 연구를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어떻게 일반적인 학교 과학 교육과는 차별화되는 다양한 과학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해서 많은 고객의 필요를 충족시키고 이들을 만족시켜 다시 과학관을 찾게 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또한 이 업무는 당연히 나 혼자서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교육 실무를 담당하는 주무관들 및 여러 강사들과 함께한다.

 

   그런데 나는 이런 상황이 비교적 만족스러운데, 왜냐하면 나는 과학관을 찾는 이질적인 많은 사람(어른, 유아, 초중고등학생, 대학생 등등)을 보면서 현실 감각을 얻고, 조직 생활을 하면서 사회생활의 생생함과 역동성을 계속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나는 대학에서 강사로서 강의하며, 시립도서관에서도 기회가 있으면 강의한다. 그래서 나는 내가 직장인과 학술인의 사이, 일종의 경계 지대에 있는 것 같다. 당연히 이런 상황에 있는 것의 단점이 있다. 내 전공 분야를 깊이 연구할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럴수록 자투리 시간을 이용할 수밖에 없고, 이런 상황이 나를 더 부지런하게 만드는 것 같다. 전쟁 속에서 틈틈이 연구했다는 그 누군가(비트겐슈타인도 그러했던가)를 생각한다. 삶의 현장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면서 연구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다.

'과학철학 연구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때로는 맹목적으로  (0) 2023.09.07
아인슈타인을 연구하는 한 방법  (4) 2023.08.10
러닝메이트, 혹은 선의의 경쟁자  (0) 2023.06.28
학술대회 발표 준비  (2) 2023.05.28
Philosophy First  (2) 2023.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