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연구 이야기

아인슈타인을 연구하는 한 방법

강형구 2023. 8. 10. 08:49

   과학자, 특히 이론 물리학자였던 아인슈타인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아인슈타인 연구자’라고 할 만한 사람은 사실 별로 없다. ‘상대론 전문가’는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중앙대학교 물리학과의 강궁원 교수님이다. 만약 ‘아인슈타인 연구자’가 있다면, 아마 그 사람은 과학의 역사와 철학을 연구하는 사람일 것이다. 그 사람이 물리학 학위를 갖고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본질은 아니다. 아인슈타인 연구자는 과학의 역사와 철학을 연구하는 사람일 필요가 있다.

 

   아인슈타인을 연구해서 국내의 대학에 자리를 잡는 것은 힘든 일이다. 오히려 나는 과학관의 연구원이자 학예사인 내가 아인슈타인 연구를 그나마 마음 편하게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아인슈타인은 과학에서는 불멸의 인물이다. 과학교육에서는 늘 누군가가 아인슈타인에 관해 이야기한다. 나는 오래 전부터 아인슈타인에 관한 글들을 읽어 왔다. 내 박사학위 논문의 주인공이 아인슈타인은 아니지만, 아인슈타인은 내 논문에 등장하는 핵심 인물 중 하나다. 비록 과학관에서 전적으로 아인슈타인 연구에 몰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나, 매년 연구과제를 설정하여 아인슈타인을 틈틈이 연구할 수 있다.

 

   최근 나는 대구시립두류도서관에서의 아인슈타인 강의(총 12주)를 비교적 성공적으로 끝냈다. 상대성 이론에 대해서가 아닌, 인간 아인슈타인에 대한 강의였다. 물론 강의 내용에서 상대성 이론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핵심은 아니었다. 도서관 강의가 끝나자마자 나는 과학관에서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아인슈타인 강의(총 4주)를 개설했다. 매주 수요일 저녁 2시간씩 진행되는 무료 강의다. 처음 개설하는 강의라 수강생은 적었지만, 이것이 작은 시작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매년 아인슈타인과 관련된 주제를 선정하여 과학관 차원에서 연구하고, 강의하고, 국제과학관심포지엄(ISSM)에서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논문을 쓴다면, 국내 아인슈타인 연구의 한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히 나는 나를 참고로 한 다른 아인슈타인 연구자들의 등장을 환영하고 기대한다. 나처럼 과학관에서 일하는 분이 아인슈타인을 연구할 수도 있고, 대학에서 재직하시는 분이 아인슈타인을 연구할 수도 있다. 그저 나는 국립대구과학관에는 강형구라는 연구원이 아인슈타인을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있고, 아인슈타인과 관련해서는 그 사람에게 물어보면 된다는 평가를 받고 싶을 뿐이다. 나는 유일무이한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지만, 손꼽을 수 있는 몇몇 사람 중에 포함되고는 싶다. 국내에 [칸트 학회]가 있다면, 왜 [아인슈타인 학회]는 없나? [아인슈타인 학회]를 만들지 못할 이유가 있을까? 물론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고, 다만 과학사 및 과학철학 연구자로서 아인슈타인을 심도 있게 연구하고 싶을 뿐이다.

 

   굳이 다른 욕심을 부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러니까 예를 들어, 인공지능이나 메타버스 등과 같은 최신의 주제들에 관한 연구에 굳이 나까지 동참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나보다 훨씬 뛰어난 많은 분들이 그런 주제들을 연구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나는 머리가 그렇게 좋지는 않은 편이므로, 그냥 내가 좋아하고 가치 있는 주제를 일관되게 연구하는 길을 택하겠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최신 주제들에 관심이 없다는 것은 아니고, 기회가 되면 기꺼이 그 주제들에 대해서 배울 의사가 있다. 나만 나의 역량을 최신 주제들에 집중하지는 않겠다는 뜻이다.

 

   과학관 연구원이 아인슈타인을 연구한다는 생각은 그리 특이하거나 새로운 생각은 아니다. 그저 그런 일을 굳이 실천한 사람이 아직 없었을 뿐이다. 생각해보면 세상에는 충분히 생각할 수 있지만 그저 실천하지 않아서 아직 행해지지 않은 일들이 너무나 많다. 그것은 안타까운 현실일 수 있지만 어쩌면 오히려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