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연구 이야기

내가 아닌 철학을 위해

강형구 2023. 11. 9. 19:43

   나는 자신을 낭만주의자라고 생각한다. 물론 나는 낭만주의를 일종의 환상이라고 생각하지만, 인간에게 환상 아닌 것이 존재하는지 의심스럽다. 고등학생 시절, 과학철학을 하고 싶다며 학교를 그만두고 시내에 있는 도서관들을 전전할 때부터 나는 과학철학에 대한 환상을 가진 낭만주의자였다. 비록 현실과 타협하여 시험을 잘 준비하기 위해 대입 입시학원에 등록했지만, 입시학원에 다닐 때도 나를 지켜준 것은 ‘과학철학’이라는 이상적인 목표였다. 그 이상적이고 낭만적인 목표가 지극히 평범한 능력을 갖춘 나를 계속하게 해 준 결정적인 동기였다. 대학 시절의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내가 대학에 입학하던 시절부터 졸업할 때까지 계속 ‘과학철학’을 이야기했음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 점에서 나는 변한 적이 없다.

 

   아내를 만나 아내와 나 사이에 소중한 아이들이 태어난 뒤, 내 삶은 나 자신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아내와 아이들을 위한 것으로 바뀌었다. 아내와 아이들에 대한 나의 환상과 낭만은, 아버지인 내가 이 세상 속에서 정당하게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로맨스가 되었다. 나 개인만을 생각하면 너무나 고통스럽고 슬픈 경험을 겪는다고 해도, 내가 아니라 아내와 아이들을 생각하면 그것은 충분히 참고 견딜 수 있는 경험으로 바뀌었다. 이것은 기묘하고도 신기한 경험이었다. 나는 아내 혹은 아이들과 결코 같아질 수 없고 나의 삶과 가족들의 삶은 가장 근본적인 수준에서 별개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아니라 가족들을 생각하면서 이 세상을 견디고 살아갈 힘을 얻었다. 이런 경험은 오직 부모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것은 그 개인을 진정으로 강하게 만들지 못한다는 것은 흥미로운 역설이자 지혜이다. 한 개인을 진정 강인하게 만드는 것은 개인적이 아니라 보편적이며, 그런 의미에서 환상적이고 낭만적인 성격을 갖는다. 과학철학에 대한 나의 낭만적인 환상이 지금껏 내 삶을 이끌어왔다. 내게 그런 환상이 없었다면 나는 과학철학책을 번역하지도, 과학철학 논문을 쓰지도 못했을 것이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철저히 개인적인 자세를 취할 때 나의 나약함과 무능력함을 자주 느꼈다. 그렇지만 분명 나에게도 진정 깊은 통찰이 찾아올 때가 간혹 있었고, 그런 통찰의 순간마다 나는 일종의 희열을 느끼며 그것을 나 개인이 아닌 과학철학을 위해서 공식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철학이 위기인 시대라고 한다. 흥미롭게도, 역사를 보면 철학이 위기 속에 있지 않았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서양 철학의 화신이라고 할 수 있는 소크라테스를 보라. 이미 그는 자신의 시대에 철학의 적대자들로부터 모함을 받아 육체적인 사형 선고를 감수하지 않았던가. 인류의 역사 속에서 철학은 늘 위기 속에 있었지만, 그 전통이 끊어진 적 또한 없었다. 철학은 갖은 변화와 진화를 겪으면서도 계속 살아남아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내가 생물학적으로 나 자신보다는 가족을 위해 살아가며 힘을 얻는 것처럼, 정신적으로 나는 내 개인이 아니라 철학 특히 과학철학을 위해서 살아가며 힘을 얻는다. 내 정신적 삶은 철학을 위해 복무하며, 나 개인은 철학을 위한 대리인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게 철학에 대한 나의 환상과 낭만은 내가 개인적인 것을 극복하며 계속 살아갈 힘을 제공한다.

 

   나는 나의 아내와 아이들에게 자상하고 친절한 아버지로, 그 무엇보다도 조건 없는 믿음과 사랑을 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마찬가지로, 나는 철학 특히 과학철학에 헌신적이었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나의 그런 환상과 낭만이 나를 철학의 역사 속의 한 장에 기록될 수 있게 해 줄 것이라 믿는다. 내가 나 자신이 아닌 철학을 위해 복무한다고 생각할 때, 나는 좀 더 강인하고 너그러운 사람이 될 수 있다. 나는 철학을 위해 나를 헌신하며, 철학이라는 이름의 아래에 모인 모든 사람에게 일종의 동지애를 갖는다. 철학에 대한 낭만적인 환상을 가진 이 지구상의 모든 사람은 나의 친구이자 동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