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연구 이야기

APPSA, PSA around the World 참여 후기

강형구 2023. 11. 13. 05:41

   나는 한국의 과학철학 연구자이다. 나는 2016년 8월에 박사과정을 수료한 후, 졸업해야겠다고 결심한 2020년부터 매년 여름 개최되는 한국과학철학회 연례 학술대회에서 매번 발표하고 있다. 나는 올해인 2023년 2월에 박사과정에서 졸업하면서, 한국의 과학철학 유지 및 발전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성실하게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런 차원에서 나는 한국과학철학회가 올해 회원들에게 소개한 두 개의 국제 학술대회인 2023년 APPSA(아시아태평양 과학철학회 학술대회, 2년에 한 번씩 이루어짐)와 2023년 PSA around the World(동아시아 지역에 초점을 맞춘 국제 과학철학회의 온라인 학술대회)에 참여하기로 신청했다.

 

   2023년 APPSA는 베트남 하노이에 있는 빈 대학(Vin University)에서 7월 말 무렵 실시되었다. 나는 올해 7월 초에 직장에 복직했기 때문에 7월 내내 새로운 직장 업무에 적응하느라 매우 바빴지만, 없는 시간을 쪼개서 열심히 학술대회 참여를 준비했다. 베트남 하노이에 도착해서 숙소를 잡은 후에도 발표 자료를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처음으로 하는 영어 발표라서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다. 역시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극심한 스트레스 속에서도 겨우겨우 발표를 마쳤다. 나의 부족한 발표를 인내심을 갖고 들어주신 모든 참가자에게 미안하면서도 감사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활동하는 과학철학자들을 만나서 참으로 반가운 자리였다.

 

   또한 나는 올해 11월 5일, 11월 11일, 11월 17일 즉 3일 동안 나누어서 진행되는 온라인 학술대회인 PSA around the World에도 참여 신청을 했다. 미국에 본거지를 둔 PSA(Philosophy of Science Association)에서 특별히 동아시아 지역 과학철학자들에게 초점을 맞추어 마련한 온라인 학술대회였다. 나의 발표는 11월 11일 저녁이었는데, 사실 이 발표의 경우에도 나로서는 신경이 많이 쓰였다. 무엇보다도, 이건 내가 뒤늦게 확인한 사실이지만, 내 발표 세션인 “아인슈타인”의 세션 좌장이 케임브리지 대학 석좌교수이신 장하석 교수라는 사실이 나를 더 긴장하게 했다. 그런데 이미 발표하겠다고 신청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가족들에게 민폐를 끼치며 퇴근하고 시간을 내어 틈틈이 대회를 준비했다.

 

   지난 토요일인 11월 11일, 오지 않기를 바라던 시간이 결국 왔다. 나는 저녁 8시쯤에 대략 20분 정도 발표했다. 그런데 그때 또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좌장인 장하석 교수, 나를 제외한 다른 2명의 발표자 모두 케임브리지 대학 소속이라는 사실이었다. 한 명은 철학과에 소속되어 물리학의 철학을 전공한 Brian Pitts라는 제법 저명한 학자였고, 다른 한 명은 박사과정에서 연구 중인 학자였다. 그래서 더 긴장되었다.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케임브리지 출신 연구자들과 함께 발표한다니. 동아시아를 초점에 맞춘 학술대회라면서 왜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오는가. 약간 사기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래도 열심히 발표했다.

 

   나는 발표를 17분 정도 하고, 질문을 2개 받았다. Pitts 교수와 박사과정생이 각각 1개씩 내게 질문을 했는데, 생각보다는 자연스럽게 답변했다. 놀라운 일이었다. 그리고 박사과정생과 Pitts 교수 둘 다 너무 발표 분량이 많아서 질문을 받지 못했는데, 이것 또한 나로서는 고무적인 일이었다. 왜냐하면 학술대회에서는 아무리 할 말이 많아도 발표 시간을 지킨 후 최소한 질문을 1개 정도는 받는 것이 기본적인 예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기본은 했다고 생각했다. 나는 Pitts 교수의 논문을 예전에 읽은 적이 있어 그분의 연구 방향성은 대략 알고 있었고, 박사과정생이 발표한 주제는 내가 이미 알고 있는 라이헨바흐의 [시간과 공간의 철학] 부록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래서 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PSA around the World에서는 지난 2023 APPSA에서 오프라인으로 보았던 많은 동아시아의 과학철학자들을 만날 수 있어 반가웠다. 비록 아직 영어 말하기가 서툴지만, 앞으로도 계속 참여하면서 다른 학자들과 교류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물론 준비 과정은 퍽 고통스럽지만, 그래도 이번에도 잘 버텨냈다고 자신에게 칭찬한다. 내가 자주 말해왔듯, 때로는 ‘잘하는’ 것보다는 ‘포기하지 않고 해 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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