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연구 이야기

21세기의 갈릴레오?

강형구 2023. 11. 16. 07:22

   이미 잘 알려져 있듯, 갈릴레오(1564-1642)가 최초로 망원경을 만들지는 않았다. 이미 갈릴레오보다 먼저 망원경을 만든 사람이 있었다. 그러면 왜 오늘날 우리는 망원경 하면 갈릴레오를 떠올릴까? 갈릴레오가 자신의 물리학적, 공학적 지식과 기술을 이용해서 망원경을 상당히 개량했기 때문일까? 아니다. 당시 다른 사람들이 대개 적군의 동태를 관찰하기 위해 혹은 내가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나 물건이 오는지 오지 않는지를 보기 위해 망원경을 활용했다면, 갈릴레오는 그런 망원경으로 밤하늘을 보았다. 그는 달, 금성, 태양, 목성을 보고 그런 천체들이 기존의 아리스토텔레스 세계관과는 들어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을 공부하고 있는 요즘, 나는 이와 같은 갈릴레오의 이야기가 21세기인 오늘날에도 들어맞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망원경은 인간의 눈과 유사하지만 멀리 있는 것을 본다는 점에서 눈보다 훨씬 더 강력한 능력을 보인다. 마찬가지다. 외부 세계로부터 정보를 얻고 그것을 정제하여 해석하고 처리한다는 점에서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은 인간과 유사하지만, 얻을 수 있는 데이터의 양과 속도 및 그 데이터의 처리 능력이라는 점에서 인간을 훨씬 더 앞선다. 망원경과 마찬가지로 인간에게 매우 강력한 인지적 도구가 생긴 셈이다.

 

   이런 인지적 도구를 어떤 분야에서 적용해서 어떤 결과를 얻을 것인지가 문제다. 아마도 많은 사람은, 이미 갈릴레오 시대의 많은 사람이 그러했던 것처럼,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을 이용해서 실리적인 이득을 얻으려고 궁리할 것이다. 주식 시장이 남긴 빅데이터를 좀 더 효과적으로 분석하고 학습하여 미래 주식 시장의 추이를 예측하여, 더 효율적인 주식 투자를 통해 더 많은 소득을 얻으려고 할 것이다. 혹은, 다수의 고객이 남긴 다종다양한 빅데이터를 잘 분석하여, 좀 더 효과적으로 마케팅을 함으로써 제품 판매 수익을 제고하려고 할 것이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은 인간들 사이에서의 경쟁에서 주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어떤 시대이든 갈릴레오와 같은 사람이 꼭 있다. 이런 사람은 철학적 혹은 인식적인 관심을 가지고,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이라는 21세기의 인류가 가지게 된 강력한 인지적 도구를 가지고 자신이 궁금해하는 문제에 대한 통찰을 얻으려고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이런 문제를 생각해 보자. 어쩌면 우리가 세계에 대해 갖고 있는 자연과학적 지식도, 사실은 오늘날의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이 보여주는 것과 같이 세계에 대한 다량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귀납적으로 추론해서 얻어지는 결과가 아닐까? 물론 인간은 기계보다 훨씬 더 제한적인 귀납적 추론 능력을 보이지만, 한 명의 인간이 아닌 다수의 인간이 집합적 공동체를 이룸으로써(일종의 연결망을 형성) 개별 인간이 갖고 있는 한계를 극복한 것이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그리고 오늘날의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기술이 인간의 생물학적 한계를 넘어 인간이 쉽게 수집하지 못하는 세계에 관한 다양하고 풍부한 데이터를 모을 수 있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렇게 수집된 데이터를 강력한 힘으로 분석해서 지금까지는 알려지지 않았던 세계의 특정한 측면을 발견해 낸다면, 그러한 발견이 인간의 자연과학적 지식에 큰 혁신을 일으킬 수 있지 않겠는가? 나는 정보통신기술, 각종 센서 기술의 발전을 통해 세계의 여러 측면에 관해 빅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게 된 지금의 현실이 일종의 신세계를 열 수도 있을 것으로 본다. 또한, 이렇게 수집된 빅데이터를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는 강력한 방식으로 처리할 수 있는 인공지능 기술이 이 새로운 세계를 탐구할 수 있는 주된 항해 도구가 될 것이라고 본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은 새로운 대륙과 새로운 우주를 발견한 것과 같다. 이 새로운 세계에서 어떤 물음을 갖고 무엇을 찾는지가 진정한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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