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연구 이야기

그냥 하다 보면 편하게 된다

강형구 2024. 2. 3. 11:30

 
   작년 2월 말에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난 뒤 주변 사람들이 나를 ‘강박사님’이라고 불러준다. 아직 약간 어색하기는 하지만 참 기분이 좋다. 내 명함에도 ‘이학박사, 과학사 및 과학철학 전공’이라고 적혀 있다. 내가 박사라니! 아직 잘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박사다! 학위증명서도 있다! 게다가 무려 과학사 및 과학철학 박사다! 오예!
 
   박사학위를 갖게 되니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에서 과학사와 과학철학 강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박사학위가 없으면 강의를 못 한단다. 박사학위를 갖게 되니 이따금 주변에서 강의 혹은 발표 의뢰를 해오기도 한다. 나는 이런 의뢰를 마다하는 법이 없다. 네, 좋은 기회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족하지만 열심히 준비하겠습니다! 그런데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해서 강의했지만 이후에 연락이 오지 않는 경우도 많다. 아, 내가 아직 많이 부족하구나.
 
   그런데 나는 스트레스는 별로 받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가 나 자신을 빨리 변화시키는 것이 어려움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루아침에 TED 강의나 세바시 강의에 나오는 유명 인물처럼 강의 혹은 발표를 잘할 수 있겠는가? 나는 잘생기지도 않았고, 말주변이 좋지도 않다. 그러니까 그냥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을 해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발표 혹은 강의를 할 수 있을 뿐 아닌가? 맞다. 이번에 부족해도 다음에는 이번보다 조금 더 능숙하게 하면 된다. 그렇게 계속 하면서 실력이 늘게 된다.
 
   나는 순발력은 뛰어나지 않지만, 지구력은 좀 있다. 학술대회에서 계속 발표하고, 계속 논문 쓰고, 계속 발표와 강의를 할 것이다. 그렇게 하다 보면 조금씩 사람들 사이에서 알려지고 신뢰를 얻게 되지 않겠는가. 물론 인기가 있고 유명한 사람은 못되겠지만, 이 영역에서 꾸준하고 착실하게 활동하는 사람이라고 인정받을 수 있지는 않겠는가. 아직 학위를 받은 지 1년도 채 되지 않았다. 앞으로 죽을 때까지 과학사 및 과학철학 전공 박사로서 살아야 한다. 정말 힘겹게 취득한 박사학위이고, 주변 선생님들의 도움을 너무 많이 받은 과분한 박사학위지만, 그래도 박사는 박사 아닌가! 그리고 박사라면 박사답게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박사라서 그런지 몰라도 책이나 논문을 보고 있지 않으면 양심의 가책이 느껴진다. 가끔 닌텐도 스위치를 가지고 열심히 게임을 하고 있다가도 ‘정말 내가 이러고 있어도 될까?’라는 의문이 든다. 인터넷을 하더라도 서점에서 책을 찾거나 논문 검색 사이트에서 전공 논문을 찾고 있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리고 나는 이런 공부의 일상화가 전혀 싫지 않다. 사실 이런 삶은 내게 꼭 맞다. 또 공부만 하고 있으면 뭔가 부족하다. 학생들이든 다른 연구자들이든 내가 가진 생각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다.
 
   나는 순수 토종 한국 박사다. 나는 이 점에 대해서도 전혀 부끄럽지 않다. 외국에서 학위를 받는 것이 좋긴 하겠지만, 나는 국내에서 학위를 받아도 그것이 외국 학위 못지않다고 생각한다. 또한 한글 논문만을 쓴 것에 대해서도 크게 부끄럽지 않은데, 왜냐하면 나는 어느 시점이 되면 내가 자연스럽게 계속 영어 논문을 쓸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시기가 와도 나는 영어 논문보다는 한글 논문을 더 중시할 것이다. 영어 논문 1편을 쓴다면, 최소한 한글 논문은 1편 이상 쓸 것이다. 결국 우리는 한국에서 학문을 하는 것이지 외국에서 학문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계속 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계속 학회에서 발표하고, 해외 학회 참여 기회가 있으면 지원하고, 영어 원고도 계속 쓰고, 강의와 발표도 계속 맡고, 부족한 부분은 계속 보완해 나간다. 그렇게 박사로서 박사답게 살다 보면 정말 박사다운 박사가 될 것이라 믿는다. 나는 시간이 자연스럽게 해결해 주기를 바라며, 나 자신을 억지스럽고 인위적으로 바꾸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